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며 진화 중인 2021 F/W 남성 컬렉션 소식.
영화처럼
고퀄리티 영상을 선보이기 위한 브랜드의 노력은 계속된다. 먼저 #sevenT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공개된 토즈의 필름은 이탈리아 외곽 비제바노의 빌라에서 촬영됐다. Seven은 일주일의 7일을, T는 토즈 또는 시간, 그리고 삶과 스타일에서의 가능성과 확장을 의미한다고. 따뜻한 어스 톤의 의류가 자연과 교감하는 토즈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한다. 르메르는 제2의 피부로서 옷에 대한 탐험을 담았다. 사람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보여주는 움직임을 포착한 이미지는 비주얼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하이패션의 터치를 더한 스트리트 룩을 선보이는 어 콜드 월은 <Untitled>라는 패션 필름을 선보였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테크닉과 다양한 방식을 뒤섞어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역시는 역시
남성 컬렉션의 중추를 담당하는 패션 하우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쇼의 웅장함과 판타지를 이어간다. 다양한 예술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루이 비통은 1950년대 발표한 제임스 볼드윈의 에세이, ‘마을의 이방인’을 테마로 했다. 춤, 아이스 스케이팅, 시, 시노그래피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퍼포먼스가 추상적인 대리석 스테이지에서 펼쳐졌다. 아티스트 피터 도이그와의 협업으로 컬렉션을 완성한 디올의 킴 존스는 디지털 패션쇼의 배경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한다. 푸른 하늘과 스피커를 쌓은 사운드 시스템은 도이그의 회화에서 참조했다고. 종합 예술가이자 공연가로 알려진 노엘 필딩의 사이키델릭한 작품을 사용한 펜디는 하우스 로고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다채로운 컬러를 입혀 이번 시즌의 콘셉트인 우주적 분위기를 어필한다.
성벽을 뚫고
아주 넓은 V자 네크라인 형태의 GMBH 오프숄더 디테일은 코트와 모피 아우터에 적용되며 젠더리스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보여준다. 벌룬 실루엣의 소매를 명징하게 차용한 JW앤더슨의 드레스나 진주 귀고리와 네크리스에도 두려움이 없는 돌체&가바나도 마찬가지.
응원을 보내며
파리 스케줄 표에 항상 올라 있던 우영미와 준지도 이제는 룩북과 프레젠테이션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준지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담긴 피스들의 변주와 늘 컬렉션을 함께하는 크루이자 영감의 원천인 그들에게 헌정하는 ‘페르소나’를 주제로 한 룩을 완성했고, 디자이너 우영미는 서울에서 원격으로 파리 스튜디오의 프레젠테이션을 감독했다.
베트멍의 삼단권법
열어도 열어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스크롤을 한없이 내렸다) 룩은 165로 끝이 났다. 그리고 지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은 룩북의 이미지는 무지개가 퍼지는 지구로 갔다 천국이라는 배경으로 긍정의 신호를 남긴다. 뎀나의 베트멍 이야기가 다음 시즌엔 피지컬 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
초대합니다
사무실로 속속 도착한, 취향저격 인비테이션을 소개한다. 로에베의 ‘Show In A Box’ 책은 작가 조 브레이너드의 그래픽 작업과 아트워크, 만화, 인쇄물이 2백 페이지에 빼곡히 담겨 있다. 하드 카피가 사라지는 이 시대에 더 소중한 출판물이 아닐 수 없다. 발렌시아가는 가을 컬렉션 무대를 위해 가상의 게임 형태, ‘애프터 월드’를 만들었다. 전 세계 소수의 인원에게 VR을 보냈고, 루이 비통은 DIY 모형 비행기를 만들어 어린 시절의 설렘을 선사했다.
보는 재미
16세기 르네상스 건축물로 알려진 프랑스의 샹보르 성에서 ‘Teen Knight Poem’ 컬렉션을 선보인 셀린느. 에디가 표현하고자 했던 신낭만주의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공간이 있을까. 프랑스의 교육진흥위원회 관공서로 간 에르메스는 더 지적이고 우아한, 격식과 비격식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쇼 콘셉트에 가장 어울리는 공간에서 쇼를 펼쳤다. 이자벨 마랑 옴므는 젊고 쿨하며 에너제틱한 역동성을 위해 체육관과 탈의실을 택했다.
이 단어, 이 문장
영상 통화 화면을 쇼의 무대로 삼은 돌체&가바나는 ‘투게더’라는 타이틀로 쇼를 시작했으며, 이세이 미야케 옴므 플러스는 ‘네버 체인지, 에버 체인지’를, 펜디는 실비아 벤추리니가 음악에 참여한 ‘왓 이즈 노멀 투데이’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이유 있는 대담
라프 시몬스가 함께한 프라다의 첫 남성복 컬렉션이 공개됐다. 인류의 우애와 깊은 소통을 소망하는 ‘Possible Feelings’ 테마 아래 리나일론, 부클레 트위드, 핀스트라이프 울 슈트와 기하학적 패턴을 조합한 룩이 올랐다. 프라다와 여러 차례 협업한 렘 콜하스의 AMO가 마블, 레진, 플라스터와 인조 모피를 조합해 만든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무대도 눈길을 끌었다. 프라다 쇼가 끝나고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는 화상 통화를 통해 전 세계 예술 학도와 대담을 진행했는데, 쇼에 대한 질의 응답이 아닌 예술과 패션, 미래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가 주제였다. 그 어디서도 시도하지 않은, 이 시대를 명민하게 활용한 신선한 접근이 아닌가!
되돌아온 빅백
한동안 유효했던 클러치, 크로스백, 벨트백을 지나 다시금 커다란 빅 토트백이 등장했다.
우리들의 미래
톰 브라운은 이번 파리 컬렉션 기간에 남성복 대신 아동복을 론칭한다는 소식을 밝히고, 카스 버드가 제작한 영상을 공개했다. 클래식한 테일러링과 제작 방식은 톰 브라운과 동일하다. 어른 버전의 유니폼뿐만 아니라 4버튼 카디건, 옥스퍼드 셔츠 등을 입고 있는 어린이 모델을 보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