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의 하루

W

혼자 떠드는 텔레비전을 끄고 거리로 나간다. 산책은 어쩌면 잠시 나를 다른 세계로 옮기는 일이라서. 도시의 퇴적층을 바라보며 세상의 비밀을 발견하는 일이라서. 네 명의 산책자가 사색, 몽상, 관찰 그 무엇으로도 바꿔 부를 수 있는 산책 일기를 보내왔다.

다섯 개의 필름, 혹은 산책

관악산 호압사 입구▶︎시흥동 동일중학교▶︎관악산 벽산타운 2단지▶︎망원한강공원

목적지 없이 걸으면 무엇이 떠오를까, 자주 서러워질 것만 같았다.

첫 번째 컷. 작고 유약했던 시절, 아빠는 나를 품에 안고 발톱을 잘라주었다. 또각또각 잘리는 하얀 덩이를 바라보며 내가 언제까지 그의 품에 안겨 있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불편한 자세였지만 그의 팔이 쉬이 풀리지 않기를 바랐다. 주일이 되면 그는 부산스러웠다. 창문을 열어 찬 바람이 들어오게 두고 노래를 크게 틀었다. 긴 투병으로 하느님을 더는 믿지 않았지만, 그에게 일요일은 여전히 특별한 것이었다. 나는 그가 어렵게 생을 찾았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부산스러운 그 얼굴이 얄밉기만 했다. 그는 아침을 먹고 뒷산에 가자고, 나는 더 자고 싶다고 유치하게 입씨름을 했다. 아빠가 말하는 산은 관악산,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본인이 수백 번도 넘게 오른 산이다. 가파른 고개를 넘으면 호압사라는 절이 나오고 정각마다 스님들은 댕댕 종을 친다. 종소리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정상과 가까워지는데 숨이 가쁠 정도로 산이 꽤 험하다. 관악산의 나무는 채도가 높은 초록이고 길이 험한 곳은 사람들의 손을 타 나무 촉감이 보드랍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빠는 푸르른 것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딸, 저건 고사리야. 저건 애기똥풀이야. 그렇게 산책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다. 아빠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일이었다.

두 번째 컷. 교복을 입을 땐 추위를 몰랐다. 조금만 더 걸으면 학교에 도착하는데도 지각하는 친구를 기다렸고 친구가 청소를 마칠 때까지 창문에 매달려 있었다. 덜 말린 머리카락이 셔츠 깃에 스치던 소리가 종종 떠오른다. 학교에서 집까지 금방이었는데 대화를 멈추고 싶지 않아 마의 구간,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에 걸린 게임 캐릭터처럼 동네를 서성였다. 담 하나를 앞에 두고 한 선 배 이야기를 했다. 우정에 금이 갈까 봐 서로 좋아하지 않은 척을 하면서. 교복이 갑갑했고 어서 이 동네를 떠나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른이 되는 건 수고로움을 잊는 일이었다. 그 선배는 용 그림을 등에 새기고 못난 이가 되었더라.

세 번째 컷. 산책은 여유가 깃든 영혼만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엄마가 떠난 뒤로 아빠는 나에게 걷자고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옆에서 보폭을 맞춰주는 게 아닌 이상 나는 혼자 걷는 것이 어려웠다. 목적지 없이 걸으면 무엇이 떠오를까, 자주 서러워질 것만 같았다. 아빠는 작은 방에서 벽을 보고 누워 있거나 가상세계에 빠져 있었다. 비극이란 당연한 것을 잊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네 번째 컷. “좀 걸을까요?” 그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 웃음이 터졌다. 참 나이가 든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풋풋한 나이인데 백운호수를 걷다가 맛없는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할 것만 같았다. 학교에 다니고 학점을 챙기고 졸업과 동시에 일을 시작했다.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숨 가쁘게 살았다. 다들 저마다 그렇게 걷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걷는다는 감각을 그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다시 찾아낼 수 있었다. 자주 누워 있는 나를 일으키기 위해서 그는 내 이름을 불렀다. 이곳저곳 내가 미처 가보지 못한 곳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한강인 날도 있었고 머나먼 타지인 날도 있었다.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호주 도리고 국립공원이다. 이름을 외우지 못해 계속 ‘도링고’라고 불렀다. 조금 더 유순해지는 그 발음이 좋았다. 나무를 좋아하는 나를 그곳에 데려가려고 그는 험악한 길을 운전했다. 고불고 불 길을 지나서야 그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연이 웅장하고 또 웅장해서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나무들은 몇 인치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컸다. 인간은 참 작아. 내가 공손해지는 경험을 했다. 건강한 나무들이 내 마음에 들어찼지만, 나는 이제 산책을 즐길 수 있지만, 더는 그와 걸을 수 없다. 중형 필름을 돌돌 굴리며 걷는, 사랑을 믿는 얼굴이다. 그때 사진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다.

다섯 번째 컷. 5년을 함께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거처를 한강 주변으로 옮겼다. 한강 근처에 사는 사람인데 일년 동안 한강을 찾지 않았다. 친구들이 그 좋은 곳을 놔두고 뭐 하는 짓이냐고 했고 나는 허허실실 웃었다. 한강에 가는 길을 지난해 가을에 외웠다. 에게, 고작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작은 터널을 지나면 망원한강 공원이 나오고 인파를 헤치고 지나면 물비린내를 맡으며 아저씨들이 낚시하고 있다. 입질하는 물고기와 아저씨는 왈츠를 춘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 숨어서 과일을 먹거나 책을 읽었다. 유난히 화창하고 짧았던 가을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망원 한강을 걸었다.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끝으로, 혼자 걷는다. 홀로 응시하는 풍경이 좋고 사무쳐서. 시간아, 제가 참으로 늦었네요, 읊조리는 날도 있었다. – 황예지(사진가,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저자)

한강 생활자의 하루

망원초록길입구▶︎망원나들목▶︎성산대교 북단▶︎망원유수지

어떤 이견도 없이 순순히 바라보게 만드는 풍경, 한강에는 분명 그런 힘이 있다.

망원동으로 이사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에야 마음에 드는 산책로를 발견했다. 한강 바깥에서 시작해 한강을 걸은 뒤 다시 한강 바깥으로 나오는 코스다. 시작과 끝 지점이 하나 로 모인다는 점에서 나의 산책로는 지하철 2호선과 닮았다. 깜빡 졸다가 내릴 곳을 지나친대도 조금만 더 졸다 보면 목 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안정적인 타원형의 패턴 말이다.

산책의 시작은 ‘망원초록길입구’다. 망원동에서 한강공원 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입구 중 시작점에 더 어울리는 장소 다. 경사 진 초록길 입구를 오르면 강변북로가 가리고 있던 한강의 탁 트인 전경이 선물처럼 등장한다. ‘그래, 이게 진 짜 서울이지.’ 전망대 역할을 하는 나무데크 위에서 난생처음 한강을 본 사람처 럼 한껏 두리번거린다. 왼편으로는 여의도 빌딩의 황금빛 비늘이 반짝이고, 오 른쪽으로는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낮고 느린 짐승처럼 활강한다. 직선으로 구획한 길과 네모난 벽, 신호와 규칙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반듯한 도시를 뒤로 하고, 어떤 자연 속에 들어선 듯한 기분마저 든다. 어떤 이견도 없이 순순히 바 라보게 만드는 풍경, 한강에는 분명 그런 힘이 있다.

본격적인 산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근처 슈퍼에서 탱크보이 아이스크림을 산다. 급한 성격 탓에 조금만 방심하면 걷잡을 수 없이 걸음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이 건 행군이 아니라 산책이야. 내가 쥐고 있는 건 총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이라고.’ 그렇게 꽝꽝 언 아이스크림을 주무르며 의식적으로 걸음을 늦춘다.

망원초록길에서 망원나들목까지 20분 정도의 길을 걷는다. 평소의 전투적인 걸음이라면 10분 안에 끝날 산책이었겠지만 내겐 잘 녹지도 않는 탱크보이가 있다. 한강을 옆에 두고 서울의 서쪽 방향으로 걷다 보면 멀리 분홍빛으로 물드 는 노을을 만날 수 있다. “저녁 하늘이 분홍색으로 물드는 건 곧 비가 올 징조래.” 언젠가 함께 산책하던 친구가 말했다. 그는 고대 원주민처럼 공기의 색과 냄새 로 날씨를 예언하곤 했는데, 내가 다음 날의 강수 확률을 묻자 검지에 침을 묻히 며 공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무슨 주문 같은 걸 외웠던가? 그는 몇 번 고개를 끄 덕이더니 확신의 찬 말투로 말했다. “확률은 반반.” 그렇듯 나에게 산책은 얼마 쯤은 바보 같고 또 얼마쯤은 시시해도 괜찮은 것이었다. 평소라면 정색했을 법 한 농담도 산책길 안에선 다 용서되는 거다.

어느덧 망원한강공원의 핫 플레이스 성산대교 북단에 닿는다. 홍제천을 달려온 자전거 여행자와 돗자리를 들고 소풍 나온 연인, 한강변을 달리던 러너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이곳에 멈춘다. 각자 마실 음료를 하나씩 사 들고 강으로 이어지는 둔덕에 그대로 눌러앉는다. 배를 들고나게 하기 위한 목적인지, 계단 턱이 없는 이곳은 자칫 음료병을 넘어뜨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굴러 한강으로 직행하는 구 조다. 그건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한강으로 빠져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조심스러운 걸음을 한다. 엉금엉금 걸어서라도 강 가까이에 가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간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던 ‘자연’에 대해 조금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나는 언제든 강변을 걸을 수 있는 사람 이므로 그곳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한강 생활자’의 자부심이랄까. 채비를 갖추고 ‘망원나들목’을 통과해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간다.

산책의 끝은 망원유수지다. 정확한 이름은 ‘망원유수지체육공원’. 사시사철 몸 이 근질거리는 주민들을 위한 장소다. 공원 내에는 망원동 주민과 동물을 전부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웅장한 ‘마포구민체육센터’ 건물이 함께 있다. 구민 모두 에게 개방된 장소지만 망원동 구석에 자리하고 있어 지역 주민이 아니면 찾아가 기에 수고스러운 위치다. 넓은 공간을 인근 주민만 사용하는 까닭에 마음껏 훌 라후프를 돌려도 뒷사람의 옆구리를 치지 않을 만큼 여유로운 공간감이 좋다.

운동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스탠드에 앉아 멍을 때리다 보면 이곳의 사람들 에게는 유수지의 원래 목적과 작동 원리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 들에겐 그저 빈 농구대가 있는지, 트랙을 거꾸로 달리는 괴짜는 없는지, 게이트 볼 구장에 마음에 드는 영감이 있는지 정도가 가장 큰 관심사일 것이다. 종종 운 동장 한편에선 초등학생들의 피구 경기가 열린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머리 통을 맞추고,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려 헛기침을 한다. 날려버리고 싶은 상사의 얼굴이 떠올라 엉덩이가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시점이다. ‘그래 오늘의 산책은 여기까지야.’ 나는 깊숙이 감춘 휴대폰을 꺼내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내일의 날씨는 어떨 거 같아?” 곧이어 도착한 친구의 답장. “한잔하기 딱 좋은 날씨지.” – 김건태(프리랜스 에디터)

대도시의 산책법

양화한강공원▶︎양화대교▶︎당산철교▶︎마리나 컨벤션센터

마침내 해가 지면 도시의 불빛이 검은 하늘을 수놓고, 나는 내가 그야말로 대도시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서울에 온 건 스무 살 때였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였는 데 실은 더는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 었다. 서울에 올라오는 날 엄마와 함께 명륜동의 방을 보러 다녔다. 전에 살던 집의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보증금을 구할 길이 없었고, 그 때문에 산자락에 위치한 오래된 하숙집의 반지하 방에 첫 터전을 잡았다. 그때 학교나 번화가에 나갔다 돌아올 때면 가파른 집에까지 오르는 게 일이었다. 당시 내게 걷는 것은 절망과 다르 지 않았다. 다음 해, 무사히 전세금을 돌려받고 난 후 간 신히 평지(?)에 있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제야 비로 소 나에게 산책은 생존이 아닌 여가와 쉼표의 의미를 갖 게 되었다.

다니던 학교와 가깝다는 이후로 20대 내내 쭉 종로, 대 학로 쪽에 살았다. 종로에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거창 하지 않더라도 소소하게 걸을 만한 코스가 많은 동네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와룡공원과 삼청공원에 갈 수 있 고, 아래로 내려가면 창경궁과 창덕궁, 마로니에 공원과 낙산공원이 있었다.

작년 이맘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은 순 전히 일 때문이었다. 출판과 서점 행사, 방송 관련 일은 거진 다 서울 서북부에서 벌어진다. 전업 작가가 된 이 후로 아예 거처를 그쪽 근처로 옮기기로 계획했다. 마포 나 합정 부근에 거처를 얻는 것이 베스트였으나 치솟는 부동산 탓에 실패했고, 결국 강 건너에 간신히 정착하게 되었다. 이사를 오고 나서야 나는 내가 사는 집이 한강 에서 5분 거리임을 알게 되었다. 혼자 글을 쓰는 게 직 업인지라 하루 종일 홀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면벽 수행을 하는 것처럼 갑갑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다른 많은 작가들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그런 답답증이 들 때면 일단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고 밖으로 나선다.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강변에 도달해 있 다. 집에서 한강을 보고 걸었을 때 가장 먼저 닿게 되는 곳은 양화한강공원이다. 잔디장 너머로 축구장과 배구 장 같은 것들이 차례대로 설치되어 있고, 그럴듯한 복장 을 갖춰 입고 정신없이 뛰고 있는 러너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을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덧 양화대교 를 지나게 된다. 처음에 이곳에 들렀을 땐 이마트24였 던 한강공원의 매점들이 올해부터는 모두 미니스톱으로 바뀌었다. 요즘 매점 앞 테이블에는 내 키만 한 높이의, 비닐하우스 같은 투명 천막이 둘러져 있다. 사회적 거리 를 권장하기 위한 수단임은 알겠으나 천장이 뻥 뚫린 구 조인지라 감염 예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 겠다. 영화 <맨 인 블랙>에서 등장하는 우주선 중 하나 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하철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당산철교에 도달할 즈음 저녁이 된다. 해가 지려 할 무렵, 정장을 입고 걷는 사람 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젊은 부부 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여의 도 쪽으로 빨리 걸어간다. 마리나 컨벤션센터 주변에 도 착하면 저녁이 다 된다. 요트 선착장에 세워진 요트를 처음 봤을 때, 한강에서도 요트를 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자주 봐서 그런지 이제는 언젠가 반나절 쯤 요트를 빌려 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해가 잘 들고 바람이 부는 날 친구들과 요트를 타는 것도 좋을 것이 다. 이런 공상에 사로잡혀 있을 때쯤 노을이 지기 시작 한다. 해가 지려 할 때의 하늘의 색은 다채롭다. 다채롭 다는 표현이 빈약하게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색이다. 시 간에 따라, 또 날씨에 따라 하늘의 빛깔이 다른데 운이 좋으면 내가 좋아하는 연보랏빛 하늘을 볼 수도 있다. 해가 지기 전에 일찍 불을 켠 여의도의 빌딩들과 보랏빛 하늘이 어우러지는 광경을 보면 나는 묘한 감정에 사로 잡힌다. 마치 나가이 히로시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만 같은 쓸쓸하면서도 달뜬 기분. 그의 그림이 좋아서 내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의 표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마침내 해가 지면 도시의 불빛이 검은 하늘을 수놓고, 나는 내가 그야말로 대도시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 박상영(소설가)

언젠가 그림이 될

성북동▶︎명륜 4가 ‘독일 주택’▶︎성북천▶︎안암동 ‘커피 스토어’

여름에는 저물녘, 겨울에는 정오에 시작한다. 나머지 계절은 언제든 좋다. 산책 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은 기쁜 일이다. 사유와 절제로 꾹꾹 눌러담아 쓴 시 같 은 글을 써보고 싶지만 아직 삶에 대한 성찰이 충분하진 않은 것 같아 다음 기회 로 미뤄보자 다짐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방법들이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메시지를 위해 필요한 것만 남겨두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다양 하다. 각자의 삶과 태도, 재능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나는 주로 반복적이고 그 반복에 의해 날카로워지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세련되고 멋스러운 것을 동경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좀 더 이해해가 는 것 같다.

몇 년 전까지의 산책은 그냥 걷는 게 좋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도 있었 지만, 지금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걷는다. 풍경 감상과 운동은 덤이다. 시간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양한 산책로가 있지만 주로 성북동에서 출발한다. 성북 동에 처음 왔을 때 그냥 그 분위기가 좋았다. 하천과 성곽이 보이고, 다양한 연 령대의 사람들이 설렁설렁 동네를 걸어 다니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 런 풍경들은 여전히 내가 이 동네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리고 맛있는 커피와 빵 집, 식당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 그런 생동감을 느끼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혜화문을 지나 대학로까지 걸어간다. 적당한 번화가에 공원도 있어 거리 풍경과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아르코미술관과 예술극장이 있어서 종종 전시와 연극을 보기 위해 오지만, 무엇보다 가벼운 술이나 커피를 마시러 온다. ‘독일 주택’은 커피와 주류를 판매하는 곳이다.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공 간인데, 무엇보다 맛있는 맥주와 커피가 있다. 기분 좋은 공간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돌아가는 길이 행복해진다.

성북천은 삼선동에서 시작해 청계천으로 이어진다. 10년 전만 해도 죽은 하천 이었는데, 현재는 생태 하천으로 복원되었다. 30분 동안 산책하는 사람들, 하천 에 있는 철새와 수풀을 구경하다 보면 안암동에 이른다. 산책로 옆에 통유리로 된 카페 ‘커피 스토어’가 나온다. 단순하고 명확한 카페 이름처럼, ‘커피 스토어’ 를 구성하는 인테리어, 메뉴, 사람도 그러하다. 그 안에 반듯하게 재단된 구조물과 가구들, 아르떼미데 조명, USM 테이블 등을 보면 이곳이 얼마나 공들여 연출되었는지 알게 된다. 땀을 흘리며 혹은 추위에 떨며 카페에 도착하면 항상 메뉴판 제일 위에 있는 ‘푸어 오버’를 주문한다. 커피를 기다리며 내부를 관찰한 다. 그리고 항상 한결같이 커피를 내리고 있는 사장님의 모습을 본다. 매일매일 내리는 커피일 텐데, 매번 중간중간 테이스팅을 하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가끔 씩 새로 커피를 내린다. 공간과 함께 저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삶을 추구 하고 있을지를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커피가 내 손에 들려 있다. 깔끔한 커피, 목 넘김이 기분이 좋다. 내 삶도 내 작업도 이렇게 깔끔하고 명확했으면.

산책과 커피는 조금이나마 번잡한 일상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 둘을 즐 기는 동안 사람과 공간, 풍경을 보면서 상상한다. 저 철새는 어디 있다 지금 돌 아오는 걸까? 하천의 오리들은 어디서 자는 걸까? 춥지 않을까? 공사 중인 저 건물에는 어떤 것이 들어올까? 산책 중인 저 사람은 왜 저런 표정으로 걷는 걸 까? 무슨 고민이 있을까?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상상이 보편적일까? 작업을 한 다는 것은 질문에 대한 파편적인 답들이다.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하 나하나 답하다 보면 어느새 작업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 우정수(화가)

피처 에디터
전여울
사진
SHUTTERSTOCK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