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가 휩쓸고 간 자리 – 파리

W

팬데믹 선언을 앞둔 비상한 상황에서 마무리된 2020 F/W 컬렉션. 현재로서는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몸으로 느낀 마지막 패션위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커지면서 그때의 현장감과 경험이 그립기만 하다. 뉴욕발로 시작한 중세 시대 장식과 런던의 브라렛 드레싱, 밀라노의 프린지 효과, 파리의 붉은 물결과 라텍스 룩의 위용까지. 4대 패션 도시에서 올 가을/ 겨울을 책임질 트렌드 12개를 채집했다.

파리 PARIS 2020.02.24 ~ 03.03

Saint Laurent

Balenciaga

Saint Laurent

Balmain

Off White

Rochas

쇼킹 라텍스

라텍스 소재를 디자인에 활용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번 시즌은 좀 더 대담하고 맘껏 활용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둘 만하다. 특히 생로랑 쇼에서 선보인 라텍스 룩의 잔상은 마지막 날까지 이어질 정도로 강렬했다. 박시한 슈트 재킷, 풍성한 퍼 재킷과 매치한 라텍스 레깅스, 글래머러스한 라텍스 드레스 등 핀 조명을 따라 등장한 각종 룩은 더없이 센슈얼하고 감각적이었다. 발맹이 선보인 전신이 빛나는 라텍스 룩은 쇼 3일 후 킴 카다시안이 착용해 화제가 되었다. 이 외에 오프화이트는 슬릿 장식의 푸른 라텍스 원피스를, 로샤스는 뷔스티에 형태의 슬립 라텍스 원피스를, 발렌시아가는 라텍스로 만든 망토 형태의 드레스를 무대에 올렸다. 인조적인 질감에 가려져 있지만, 라텍스는 사실 나무 수액에서 채취하는 유기농 물질이라고. 머지않아 데님 소재만큼 일상적 패션 소재가 되지 않을까.

Vivienne Westwood

Paco Rabanne

Alexander McQueen

Rochas

Marine Serre

Marine Serre

Paco Rabanne

Balmain

Ann Demeulemeester

중세 시대 코스튬 플레이

파리 패션위크, 꽤 인상 깊은 피날레 중 하나가 비비안 웨스트우드다. 특유의 펑크 스타일을 녹여낸 피날레는 벨라 하디드의 퍼포먼스였다. 하얀색 퍼프 소매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가슴은 쿨하게 드러낸 채 걸어 나온 그녀는 허리춤에 찬 칼을 뽑으며 쇼를 마무리했다. 가는 허리와 퍼프 달린 소매, 중세 시대의 예술 양식을 차용한 디자인은 파리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앤 드뮐미스터, 발맹, 로샤스의 룩 또한 중세 시대 코스튬을 떠올리게 했고, 파코 라반은 15세기의 성직자복과 갑옷을 연상시키는 룩으로 시선을 압도했다. 프랑스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일까. 파리 패션위크 런웨이를 통해 중세 시대의 낭만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Valentino

Altuzarra

Balenciaga

Balmain

Elie Saab

Givenchy

Hermes

Junya Watanabe

Kenzo

Koche

Saint Laurent

Alexander McQueen

붉은 물결

적색 경보가 파리의 런웨이를 덮쳤다. 1990년대 발렌티노 레드의 전성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붉은 물결이 무대를 압도했다. 특히 레트로 레드의 활약이 눈에 띄었는데, 무겁고 짙어졌으며, 농염해졌다. 피에르파올로 피촐리는 발렌티노의 상징인 채도 높은 빨강을 사용해 반짝이는 붉은 드레스를 완성했고, 사라 버튼은 알렉산더 맥퀸 특유의 슈트와 드레스에 레드라는 강렬한 색을 부여했다. 이 외에도 지방시, 에르메스, 겐조 등 파리 컬렉션 디자이너들은 저마다의 레드로 그들이 꿈꾸는 미래적 판타지에 힘을 불어넣었다.

패션 에디터
김민지
포토그래퍼
JAMES COCH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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