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F/W 시즌, 쇼를 마친 페라가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폴 앤드류(Paul Andrew)는 현대 여성을 ‘메타모던 여성( Metamodern Women)’이라고 지칭했다. 그건 단 하나의 캐릭터나 특정 코드의 패션으로 정의할 수 없는 나와 당신, 우리의 다양성에 대한 매혹적인 이야기.
지난 2월, 밀라노에서 선보인 페라가모의 2020 F/W 컬렉션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쇼가 끝난 후 어떤 시간을 보냈나?
Paul Andrew 고맙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모든 것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쇼를 마친 얼마 동안은 평 소와 다를 바 없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컬렉션에 대해 바이어들과 대화를 나누고, 전 세계 페라가모 팀에 F/W 시즌 콘셉트를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코로나로 이탈리아 전체가 마비됐고, 페라가모 하우스에 속한 이들의 안전을 위해 스튜디오뿐 아니라 부티크와 공장까지 폐쇄했다. 나 역시 피렌체에 있는 나의 작은 아파트로 돌아가 자가격리의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온라인상으로 친구와 가족, 동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색할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을 즐겼다. 무엇보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고 싶은지, 스스로 묻고 반성하고 모색하는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이참에 요리도 배우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는 비즈니스를 재개했고, 살바토레 페라가모라는 이름 아래 앞으로 계속 밀고 나아갈 자신감과 결심을 다졌다.
F/W 시즌 쇼 노트에 적힌 ‘메타모던 여성(Metamodern Women)’에 대한 언급이 흥미롭다. 이번 시즌 컬렉션을 통해 페라가모 역사의 의미 있는 요소들뿐 아니라 강력한 여성상을 한데 모았다. 우선 오늘날 현대 여성이 구현하고 있는 많은 역할을 되새기고 싶었다. 20세기 초, 칼 융은 7가지의 전형적인 여성상을 주장했지만 21세기의 여성은 더 이상 그러한 범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녀들은 스스로 자신을 정의한다. 여성성은 유동적이고 본인이 그려가는 자유로운 영역이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날 내가 알고 있는 여성들이 어떻게 이러한 다양한 역할을 끊임없이 넘나드는지 떠올려보았다. 그 결과 오프라 윈프리와 비욘세부터 낸시 펠로시, 케이트 부시, 그리고 샤론 스톤에 이르기까지… 내가 존경하는 영향력 있는 여성들, 즉 다방면의 여성 영웅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지성과 용기, 아름다움을 F/W 컬렉션에 반영했다. 그 결과 이번 컬렉션에서 로맨스와 힘, 지혜, 다재다능함, 그리고 에너지가 다양한 방식으로 교차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특정 유형에 맞는다는 개념은 오늘날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점점 더 구식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오늘날 개인의 정체성은 하나에 고정되지 않는다. 변화무쌍한 다양한 특성과 성질의 결합이다. 우리가 입기로 선택한 옷의 정체성 역시 하나의 필터를 통해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마치 움직이는 만화경과 같은 다양한 이미지의 콜라주가 아닐까.
모델 이리나 샤크가 입은 테일러드 슈트는 코르셋 디테일과 결합해 대조적인 매력을 드러냈다. 이러한 디자인 의도 역시 당신이 건네고자 하는 메시지와 관련이 있겠다. 맞다. 메타모던 우먼의 콘셉트가 강렬하게 드러난 사례다. 융이 개념화한 여성의 프로토타입에서 보자면 여성성을 강요하는 상징적인 코르셋에 남성복의 슈트를 차용한 것 자체가 모순된 조합이지만 이를 통해 새롭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성은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으로 매일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 컬렉션이 여성에게 좀 더 해방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부여하는 매개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궁극적으로 컬렉션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나? 나의 메시지는 여성들이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취약성을 존중하며, 긍정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여성은 하루 종일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낸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나아가 눈앞에 실현된 나의 컬렉션을 보는 것은 여전히 나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며, 그 바톤을 이어가고 있음에 영광스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치유의 에너지를 안기는 감사와 열정의 메시지도 함께 담았다.
런웨이에서 발등에 페라가모의 시그너처 보 장식이 달린 가죽 부츠가 눈길을 끌었다. 페라가모의 새로운 모던 클래식을 보여주는 듯한 ‘비바(Viva)’ 슈즈를 디자인한 계기는? 비바 슈즈는 페라가모 하우스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스타일 중 하나인 바라 구두를 현대화한 것이다. 사람들은 바라 모티프를 페라가모의 심벌이자 원형으로 보기 때문에 도전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모던한 콘셉트가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와 Z제너레이션에게 세련된 신발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그너처 보 장식을 원래 크기의 네 배로 확대했고, 가죽이든 스웨이드든 데님이든 같은 재료를 신발 전체에 적용했다. 앞코와 뒷굽의 형태는 오늘날의 감성에 맞게 조형성을 가미했다. 동시에 편안한 쿠션감과 내구성이 뛰어난 소재를 더했다.
페라가모의 아카이브에서 당신은 어떤 영감을 얻는가? 나는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아카이브에 접근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는 여성 슈즈에 독보적인 미학과 공학적인 요소를 동시에 부여하는 천재성을 지닌 디자이너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영감을 찾을 때 종종 아카이브를 살펴보며, 지난 시절의 역사적인 패턴을 차용해 브랜드의 현재를 재창조한다. 그것은 페라가모 유산의 지속적인 확장이자 축적이며, 옛것과 새로운 것의 만남을 통한 낯선 창조다.
런웨이에서 캐롤라인 머피나 이리나 샤크 같은 1990년대 슈퍼모델의 등장을 보는 것은 신선했다. 이번 컬렉션을 위해 모델 캐스팅에서 가장 염두에 둔 건 무엇이었나? 글쎄, 90년대 키드로서 전설적인 모델들을 캐스팅할 기회는 내게 다시 어린아이가 된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다양한 나이대의 모델을 캐스팅한 이유는 메타우먼이라는 맥락 안에서 페라가모가 지닌 ‘캐릭터들의 패치워크’ 철학을 반영하기 위함이다. 쇼를 살펴보면 아마 나이뿐 아니라 인종, 그리고 신체 유형 등에서 다양성을 제시하며 다채로운 캐스팅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다.
캐롤라인 머피가 입은 친환경적인 베지터블 태닝 가죽 드레스와 업사이클 가죽을 활용한 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당신의 관심을 반영하는 듯한데, 패션과 환경 사이의 이러한 흐름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패션이 지속 가능성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페라가모 역시 그러한 원칙 아래 단지 선언이 아닌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업사이클링 재료와 생태학적으로 검증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 숙제를 하룻밤 사이에 다 해결한 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제를 지속적이고 궁극적인 과제로 삼고 밀고 나가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결심한 이유는 패션 브랜드의 모든 이해관계가 지속 가능성에 달려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매우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은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된다. 앞으로 젊은 세대들은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의심하는 사치품을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제품이 환경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야말로 럭셔리의 미래적인 비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당신이 추구하는 패션의 궁극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보다 긍정적인 의도와 행동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흔들림 없이 전통을 보전하고 투명하고 성실하게 품질에 전념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지난 2020 S/S 컬렉션은 당신이 어린 시절 여름휴가지에서 가족과 찍은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 당신은 가족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패션의 영향을 받았나. 나는 영국 윈저 근처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영국 왕족의 가구 복원가로 일했다. 그 덕분에 아주 어린 나이에 사물의 장식과 목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체득했다. 10대 시절의 나는 패션계가 장식과 목적, 둘 다 지녀야만 성공의 중심에 선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특히 슈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학 졸업 후 알렉산더 맥퀸에서의 인턴십을 통해 뉴욕에서 일을 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여기 살바토레 페라가모에 안착하게 되었다.
패션을 통해 밀레니얼 세대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길 원하는가? 모든 분야에서 밀레니얼세대나 Z세대가 기성세대와 함께 문화의 리더로서 그들의 목소리를 찾도록 격려하는 일은 필수이다. 비록 그들이 태어난 10년만을 기준으로 누군가를 일반화하는 것은 다소 위험하게 느껴지지만. 나의 일은 페라가모가 추구해온 미학적 도전,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이 시간의 시험을 견뎌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생활에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 즉 지나가는 유행보다는 영원한 가치를 지닌 스타일을 통해 소통하는 컬렉션을 만들고 싶다.
당신이 디자이너로서 성취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글쎄, 그 누가 자신의 목표에 완벽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거라곤 지금 내 일을 잘하고,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며, 세상에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내는 것 뿐이다.
- 패션 에디터
- 박연경
- 포토그래퍼
- 신선혜
- 모델
- 이혜승
- 헤어
- 김귀애
- 메이크업
- 이숙경
- 사진
- COURTESY OF SALVATORE FERRAGA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