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서울에서, 집 구석에서 가능한 최선과 최상의 제안들.
미답(未踏)의 한국을 찾아 북적거리는 여행지가 아닌 곳을 찾아 떠난 이들에게 듣는다. 바다 건너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사실에 작게 안도하며, 국도 지도를 만지작거리게 하는 여행기.
아무도 모르라고
_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둘, 셋이 아니라 혼자서, 강원이나 경북 쪽 산으로 고개로 굽은 길을 달리다 잠깐 차 세우고 싶은 풍경을 만나는 일. 나의 여행이란 그런 이미지로부터 샘솟는다. “창문 열어봐 바깥 공기가 더 시원해.” 이런 말 한 번은 꼭 하게 되는 운전길이야말로 여행이라 여긴다. 10년 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를 지날 때가 생각난다. 왼쪽 창밖으로 갑자기 수수밭이 펼쳐지는데, 저건 분명 옥수수가 아니라 알알이 맑은 수수구나 싶었다. 앞으로 슬쩍 내리막인 도로가 나와 곧 마을이 나올 것임을 짐작했는데, 먼 산들로 둘러싸인 그곳은 무엇으로부터도 동떨어져 아늑해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수수밭으로 다가가며 “아 따뜻해” 중얼거리고 말았다. 어느새 에어컨에 길든 피부가 거기서 그만 온기를 느낀 것이다.
여기는 누구의 고향일까. 찻집이 있다면 들렀을 텐데, 방학이라 아무도 없는 분교 운동장이나 들어가보았다. 작은 연못이 있는데 중앙엔 조촐한 분수 시설도 해놓았다. 거기서 물이 나는 일은 벌써 오래전에 멈췄으련만, 몽글몽글 솟는 물처럼 뭔가는 거기서 새로워졌던가. 그리고 걸으니 개울에 닿았다. 낙동강으로 갈거니, 불영사 계곡으로 해서 동해로 갈 거니, 그 물을 나는 잠시 쓰다듬어보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곳이었다. 심지어 그때는 거기가 어딘지도 몰랐다. 따뜻하고 서늘했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일, 혼자서 그걸 원한다. – 장우철(작가)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시간들
_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태어난 이후 서른 여러 해가 지나기까지 서울에서만 지내왔다.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도, 서울에 대한 로망도 없었다. 여행의 로망은 늘 해외에 있었다. 일을 하면서 때로는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휴가라는 이름으로 가보고 싶은 나라들을 횡단했다. 그럴수록 가보고 싶은 곳이 더 생겼고, 그래서 더 여력을 키우기도 했던 지난 몇 년이었다. 아마 작년이었을 거다.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여행 이야기가 나왔고, 한 남자가 하는 이야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해외라는 단어를 말 그대로 해석하면 바다 바깥 아니냐고, 꼭 외국이 해외는 아니지 않냐는 말. 그러고 보니, 여태 다닌 해외 여행은 바다를 건너는 것보 다 하늘을 나는 것에 가까운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그 낯선, 울릉도로 가는 배 안이었다. 제주도도 있는데 왜 울릉도였을까. 그럴 때가 있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곳 말고, 모른다고 생각하는 곳, 이름은 알려져 있지만 쉽게 찾지는 않는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울릉도는 가는 길도 험했고, 도착하고도 쉽지 않았다. 뱃멀미 때문에 오른쪽 귀 뒤에 멀미약을 붙였지만 도동항에 도착해서도 떼지 않았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울릉도가 바다 위에 솟은 산처럼 느껴졌다. 경사진 곳과 수많은 계단을 걸으며 멀미를 진정시켰다. 해안가를 향해 걸어가자 하얀 테이블과 의자들이 보였다. 여긴 뭘까. 바 다가 땅을 오가는 소리를 들으며, 붉은 기운이 사라지려 하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주머니, 여긴 뭐 하는 곳이에요?”라고 물으니 횟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전에 끝났다고 아쉬워서 어쩌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는 말과 함께. 서둘러 미리 챙겨 온 와인을 꺼냈다. 불어오는 섬 바람이 서울에서의 생활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 이런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짐짓 생각했다. 내 안의 파도가 잠잠해지고 있었고, 나는 귀 뒤에 붙어 있던 멀미약을 뗐다. – 김진영(이라선 대표)
빛이 머문 자리
_경남 밀양시 교동 모례마을
2018년 가을 무렵이었을 거다. 평소 아끼던 가수 사뮈의 뮤직비디오 제작 제안을 받고 촬영지로 떠올린 곳은 밀양, 그곳에 자리할 비밀스러운 여인숙이었다. 1990년대 영화 속 배경일 것 같은 풍경을 가진 밀양과 사진 속 우연히 본 여인숙을 나는 꽤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여행도 촬영도, 계획되지 않는 우연을 나는 짐짓 좋아라 한다. 밀양으로 떠난 그날 날씨는 화창했지만 비가 내리면 어떨까, 조금은 기대하기도 했다. 해 질 무렵 밀양에 도착하고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듯 보이는 허름한 모텔을 숙소로 잡았다.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을 꿈꿨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인숙의 주인들은 낯선 타지인에게 경계를 품었고, 그보다 대부분의 여인숙이 사라진 상태였다. ‘마음은 언제나 여러 개가 있지’. 사뮈의 곡이다. 이 곡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왔으니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방구석에 자리 잡은 사뮈는 멋진 노란빛 조명이 아닌 하얀 형광 조명 아래 노란 장판에 앉아 노래를 했다. 적당히 마신 술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미스터리한 지방 모텔에서 듣는 음악이 주는 낭만 덕분이겠지.
우리는 잠깐의 잠을 청했고, 새벽을 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지만 모텔 창밖으로 어렴풋이 본 어둡고 짙은 푸른색 풍경은 목적지에 도착하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름다운 풍경이 끝나는 순간은 언제나 익숙하고 아쉽게 반복된다. 그렇게 아쉬운 순간은 아침의 빛을 보자 미련 없이 사라진다. 우리는 다시 부지런히 움직였고, 계속 빛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는 다시 사라져갔고 우리는 돌아가야 했다. 밀양의 완전한 하루를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 모두에게 보였다. ‘비밀스러운 햇빛’.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이곳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에게 밀양은 비밀스럽지 않았다. 그저 넓은 들판 속 덩그러니 놓인 의자, 수다쟁이 할머니들과의 대화, 그리고 따뜻한 빛이 있는 곳으로 오래도록 기억된다. – 이와(영상감독)
습기의 기억
_제주 서귀포시 산록남로
돌이키면, 시종 몽롱한 기분에 휩싸이다 나도 모르는 꿈 속을 걷다 온 기분이었다. 서귀포 산록남로를 정처 없이 헤매다 당도한 이름 모를 울창한 야자수 숲에서의 시간이 그랬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키가 큰 야자수 사이를 거닐 땐 남국의 어느 비밀스러운 장소에 발을 딛고 선 기분이 들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도시에서 거칠고 날카롭게 변한 머리를 적당히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시간들. 타지에서 느낀 낯선 공기와 냄새를 꾹꾹 눌러 담아 돌아오는 것이 과연 여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꾹 눌러 담은 후 도시로 돌아와선, 다시 몇 개월을 살아간다. – 조남인(낫배드 디렉터)
아무도 밟지 않은
_태안 의항리 안태배 해변
어려서부터 사람 많고, 복잡한 관광지는 싫었다. 언제나 목적지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고,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일 없는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충남 태안의 조용한 어촌마을에 당도한 건 5년 전의 일이다. 바이크를 타고 멀리까지 달리다, 마을 주민의 귀띔으로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빼어난 경치에 취해 여러 날을 머물렀다는 장소에 도착했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짧은 산책로를 지나, 중간에 만난 작은 산을 넘어가, 안태배 해변이라는 인적 드문 백사장을 마주했다. 무인도나 다름없는 백사장에 발을 딛는 순간엔, 영화 <비치>의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지상낙원을 발견했을 때 지은 표정이 내 얼굴에도 머물렀을 것이다.
문명과 단절된, 자연 그대로 오롯이 존재하는 장소에서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붉게 달아올라 수면으로 기울어지는 노을을 넋 놓고 바라봤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순순하고 깨끗했던 시절이 잠을 깨고 불쑥 튀어나오는 듯했다. 엄마 품에 안겨 칭얼거리던 때 묻지 않고 순수했던 시간들. 가끔은 그 어린 시절 원초적 기억의 조각을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들에겐 별 볼 일 없는 소박한 작은 해변에서, 아득한 기억을 떠올리며 한참을 바다에 머물렀다. – 이정규(사진가)
숨의 여행
_경기 수원 여우골숲길
“숲으로 가자.” 마스크를 고쳐 쓰며 친구가 말했다. 도시에서는 눈치가 보여 마음대로 숨을 쉴 수 없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서울역에서 가장 빠르게 떠날 수 있는 티켓을 끊었다. 목적지는 수원의 ‘여우골숲길’이었다. “운이 좋으면 여우를 볼 수도 있대.” 나의 말에 친구는 크게 환호했다. (왜지?) 우리는 기차를 타고 또 작은 버스를 타고 숲에 도착했다. 초여름의 숲은 고요했고, 걸음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가끔 바람이 불어오면 고릴라처럼 양팔을 들어 티셔츠 사이로 바람이 통하도록 했다. “다람쥐야.” 친구가 말했고, 나는 친구의 손가락을 따라 나뭇가지를 오르는 두 마리의 작은 짐승을 봤다.
우리는 빽빽한 나무 군집 안에서 더 깊은 숲을 바라봤다. 친구는 두꺼운 나무 기둥을 보며 꽃꽂이 수업이 떠오른다고 했다. 사람들은 꽃잎을 만지느라 화병 속에 감춰진 줄기를 잊곤 하는데, 꼭 거기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라고. 어떤 사연인지 묻지는 않았지만 그가 꽃잎 아래 줄기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자 조금 안심이 됐다. “마스크는 벗어도 돼.” 나는 친구의 마스크를 벗겨주었고, 그의 낮은 콧등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언젠가 숲이 아닌 곳에서도 마음껏 숨 쉴 날이 올까?” 친구가 물었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침 발밑으로 반쯤 죽은 매미를 옮기는 개미의 행렬이 이어졌다. 매미도 개미도 서로 필사적이었다. 아마도 매미는 그곳에서 생명을 다하고, 개미는 집으로 돌아가 매미를 나눠 먹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주변의 풍경이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뭇잎 사이로 빛이 산란하고, 젖은 땅에서는 버섯이 자라고, 죽은 자의 무덤 주위를 산 사람이 산책하는 풍경. 숲에선 모든 게 이상하고 또 자연스럽다.
다시, 우리는 어제처럼 숨 쉴 수 있을까? 친구의 물음에 섣불리 대답하는 대신 나는 겨울나무의 숲을 떠올리기로 했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는 명확함으로 언젠가 다시 만날 다음 계절에 대해서, 나무에 눈이 쌓이고 다시 흩어지는 그 자연스러운 시간에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했다. – 김건태(프리랜스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전여울
- 포토그래퍼
- 박종원, 장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