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성숙해져 가는 어느 장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장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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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금물이 메주를 만나 간장이라는 액체로 발효하듯, 천천히 성숙해져 가는 어느 장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장녀>가 세상에 나왔다.

“엄마를 보내고 오는 길목에서 바람결을 타고 온 메주 내음을 맡으며 나는 다시 집에서 장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본능적으로 솟구쳤다. 나는 왜 다시 장을 담그고 싶어졌을까?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어 나는 그저 엄마의 명복을 빌며 장을 담갔다.” 브랜드 컨설턴트이자 패션 칼럼니스트 황의건의 첫 소설 <장녀>에서 건져 올린 한 장면이다. 주인공 ‘사샘’은 어린 시절 세 자매를 버리고 떠난 엄마의 장례 화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연히 시골 장터에서 재래 메주를 발견한다. 불현듯 장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 사샘은 집으로 돌아와 빈 항아리에 메주, 소금물, 숯, 마른 고추를 넣고 장을 담근다. 소설은 세 자매의 맏딸, 즉 장녀(長女)이자 다른 한편으로 간장을 담그는 여인인 장녀(醬女)인 사샘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랑을 믿지 못한 채 결핍과 고독 속에서 세상을 외면하고 살아왔던 사샘은 어떻게 완성될지 모르는 장을 묵묵히 담그며 마치 장 꽃이 피어나듯, 장이 발효되어 익어가듯 세상과 다시 만난다. 그리고 사샘은 말한다. “그날 밤, 나는 내 영혼에도 저 성스러운 장 꽃들이 꼭 피어나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내 삶이 고독으로 갈기갈기 분해돼 결국 아무런 소용도 없이 허무하게 부패해버리는 대신에 사랑을 회피하지 않을 만큼 뜨거운 용기로 발효돼 다시 한번 이번 생을 살아보고자 하는 용기가 생길 수 있도록 말이다.” 어딘가 구수한 장의 발효취가 풍기는 것만 같은 페이지를 들추다가 끝내 책장을 덮게 되면, 오묘한 분홍빛 물감이 묻은 붓이 두껍게 지 나간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책 표지와 마주하게 된다. 회화 작가 신민주가 그린 작품을 책장에 담은 것이다. 장녀의 페르소나를 표현하기 위한 음원도 발매된다. 영화음악 감독 남수진이 작곡한 음원은 출판사 ‘예미북스’ 유튜브 채널에서 만날 수 있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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