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패션의 등뼈에 해당하는 것은 결국 시간의 무게를 버텨낸 타임리스 아이콘이다. 패션 하우스의 근간을 만든 활주로 위로 디자이너들은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 보테가 베네타의 수장 대니얼 리가 런던 패션 어워드 네 개의 상(올해의 브랜드, 올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올해의 디자이너)을 휩쓸었는데, 어느 디자이너도 한 해 동안 그런 성공을 거둔 바 없는 전례 없는 기록이었다. 대니얼 리는 지금 패션계의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남자다.
그는 확실히 배짱이 있다. 가장 대담한 시도이자 시선을 끈 변화는 브랜드 전통인 인트레치아토(부드러운 가죽을 교차해 엮은)를 뼈대 삼아 선보인 변주다.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활용한 그의 핸드백과 슈즈는 검색엔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는데, 부드러운 가죽을 꼰 샌들은 작년 7월 한 달 동안만 검색량이 471%나 급증하면서 가장 많이 수배된 신발이었다. 안감 대신 가방 겉에서 볼 수 있는 기법이 백 내부에도 드러난 카세트 백은 꽤 사려 깊게 현대화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 그는 브랜드의 시작에 대해 “모든 더없이 부드러웠다. 거기서 엄청난 영감을 받았다.” 부드러움을 강조한 니트, 신축성을 적용한 시원함과 편안함을 강조하는 기성복은 스트리트 웨어 세대의 일원인 그가 능숙하고 빠르게 과거의 유산을 동시대적으로 변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런던에서 대대적인 신고식을 치른 버버리의 리카르도 티시 또한 부임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브랜드의 아카이브 탐색이었다. 영국적인 문화와 가치를 대변해온 버버리의 아주 직관적인 요소(트렌치코트, 베이지색 팔레트, 스카프, TB 로고, 새빌로 테일러링 등)는 티시의 세련된 유럽적 본능 아래 정렬되었다가도, 펑크 정신에 입각해 무자비하게 해체되기도 했다. 지금 티시가 버버리의 유산과 연결 지점이라고 말하는 기원이자 원천은 바로 빅토리아 시대다. 야구모자와 빅토리아 시대 보닛, 코르셋과 트렌치코트의 합병처럼. 해가 지지 않는 킹덤의 버버리를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임무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는 코로나 사태 이전, 쿠튀르 쇼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파리 오트 쿠튀르의 황금기를 이끈 쿠튀리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정신과 유산을 21세기적으로 해석해 펼쳐 보일 참이었다. 한편 여행의 정신을 핵심 DNA로 하는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빛나는 벨에포크 시대를 견인한 힘의 근원에 다가가 21세기적 번역에 몰두했다. 1800년대 후반, 건설과 기술의 발전은 엘리트들의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모노그램 트렁크를 든 무슈 비통과 그의 후손이 이끈 새로운 여행의 시대 말이다. 근원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미래적인 기술의 창의적 케미가 오늘날 디자이너들을 돋보이게 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경쟁적인 환경에서는 단순한 브랜드 운영자가 아닌 진정한 패션 리더들의 힘이 핵심이다. 디자이너들은 영리한 시간 여행을 통해 패션 산업을 움직이고 있다. 누군가가 주장한 시간은 단지 인식일 뿐이다. 2020년대 패션은 어디로 향할까? 그것은 거의 같을 것이고 완전히 다를 것이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지
- 포토그래퍼
- 박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