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외선 차단제, 믿고 써도 될까?

W

화장품 ‘성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지금, 자외선 차단제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눈부신 태양 빛은 분명 즐겨야 마땅한 존재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노화와 피부암이라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겐 쉽고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바로 자외선 차단제다. 말없이 시즌리스 필템의 자리를 지켜온 자외선 차단제가 오랜만에 화두에 올랐다. 매일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해온 제품 속 화학 성분이 그대로 몸에 흡수된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선크림 속 주요 화학 성분이 단 하루 만에 혈관에 과다하게 침투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문제가 된 성분은 ‘옥시벤존(Oxybenzone)’과 ‘아보벤존(Avobenzone)’, ‘옥토크릴렌(Octocrylene)’, ‘에캄슐 (Ecamsule)’ 4종. 사용 기간이 길어진 것과 비례해 혈액 속 성분 수치가 높아졌고 사용을 중지한 이후에도 최대 24시간 유 지됐다고 한다. 특히 ‘옥시벤존’의 혈관 침투량은 기준치의 50~100배였다. ‘옥시벤존’은 ‘유기자차’(화학적 자외선 차단제)에 주로 함유되는 UVB 차단 성분으로, 미국 환경 단체 EWG에 따르면 접촉성 피부염이나 호흡기 장애가 생길 위험이 있다. 또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감소를 일으켜 성인 남성의 호르몬 불균형이나 여성의 불임을 유발할 수 있다. 문득 하와이에서 산호초 보호를 위해 만든 ‘선크림 금지법’이 떠올랐다. 산호초가 서식하는 생태계를 망가트리는 ‘옥시벤존’과 ‘옥티 녹세이트(Octinoxate)’ 등 특정 성분을 함유한 자외선 차단제는 2021년부터 하와이 내 판매가 금지되며, 다른 지역에서 구매했다 하더라도 해변에서 사용할 수 없다. 특히 산호초 군락으로 유명한 팔라우에는 이미 ‘옥시벤존(벤조페논-3)’과 ‘옥티 녹세이트(에틸헥실메톡시신나메이트, 옥틸에톡시신나메이트)’, ‘옥토크릴렌’, ‘트리클로산(Triclosan)’이 든 선크림 사용이 불가능하다. 화장품의 특정 성분이 혈관 내로 흡수된다는 연구 결과는 새로울 게 없지만 그 성분이 자연에 해로워 금지된 성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편 올해 1월, FDA는 위에 언급했던 문제 성분이 혈관으로 흡수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게 반드시 인체에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라며 여전히 자외선 차단제를 쓸 것을 권고했다. 그렇다면 권장 수치는 애초에 왜 정해놓는 걸까? 그걸 떠나서 자외선 차단제, 믿고 써도 되는 걸까?

케미포비아 시대

우리나라 20~30대 여성 대부분이 화장품을 사기 전 성분의 안전성 여부를 알려주는 앱을 찾는다. 케미포비아가 만들어낸 씁쓸한 현상이다. 자외선 차단제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우선 FDA가 지적한 나머지 성분들도 살펴봐야겠다. 먼저 아보벤존은 국내에서 ‘부틸메톡시디벤 조일메탄’으로 표기되며 UVA와 일부 UVB를 차단한다. 대부분의 ‘유기자차’에 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흔하게 사용되는데, 역설적이게도 햇볕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활성산소를 생성해 오히려 노화를 촉진한다. 옥토크릴렌은 UVB를 차단한다. 광안정성이 뛰어나 자외선 차단제의 성분이나 외형, 상태의 변형을 막는다. 이 성분은 체내에 잔류하는 특성을 지녔는데, 과할 경우 세포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된 에캄슐은 로레알 그룹에서 특허를 낸 UVA 차단 성분으로 ‘멕소릴 SX’로도 표기한다. 아보벤존의 대체재로 여겨질 만큼 안전한 성분으로 분류되지만 이 역시 유해성 논쟁의 주요 성분으로 꼽혔다. 이 외에도 호모살레이트, 옥티살레이트 같은 자외선 차단 성분 역시 산호초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인체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졌다. 문제는 옥시 벤존이나 아보벤존 등 유기자차에 흔히 사용되는 위험성 높은 벤젠 계열 화학 물질이 SPF/ PA 지수가 높을수록 많이 함유된다는 것이다.

자외선 차단, 과욕은 금물

SPFUVB, PAUVA 차단 효과를 나타낸 다. 그리고 SPF 뒤의 숫자는 자외선 차단 효과가 유지되는 시간을 의미한다(효과의 크고 적음이 아니다!). WE 클리닉의 조애경 원장은 저서 <깐깐 닥터 조애경의 W 뷰티>에서 SPF 115~20분 정도 자외선을 차단하므로 이론상 SPF 153시간, SPF 306시간 정도 차단 효과가 지속된다고 설명한다. UVB 차단량은 SPF 1592%, SPF 3096% 차단해 큰 차 이가 없다. 한편 PA 뒤의 +는 UVA가 어느 정도 차단되는지를 보여준다. PA+는 아무것도 바르 지 않았을 때보다 2~4배, PA++는 4~8배 자외선을 차단한다.

그럼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조애경 원장은 봄과 여름에는 SPF 30/PA++, 가을과 겨울에는 SPF 15~20/PA+ 정도를 권장한다. 놀랍게도 최신 자외선 차단제는 기본이 SPF 50/PA+++인듯, 그 이하 지수의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숫자는 높게, +는 많이 붙어야 좋다고 믿으며 제품을 택한 우리 소비자의 탓이다. 불필요한 과욕이 피부 안전을 위협한 셈이다.

그럼 화학 성분을 피해 ‘무기자차’(물리적 자외선 차단제)를 쓰는 건 답이 될까? 무엇보다 여전히 대다수 무기자차는 유기자차보다 사용감이나 발림성이 확연히 떨어진다. 또 와인피부과 김홍석 원장은 무기자차라고 부작용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고 설명한다. “무기자차의 대표 성분 ‘티타늄 디옥사이드(Titanium Dioxide)’나 ‘징크옥사이드(Zinc Oxide)’ 등의 미네랄 필터가 들어간 제품은 피부 표면을 덮어 자외선을 반사시킵니다. 피부에 흡수되지는 않지만 제대로 씻어내지 않으면 미네랄 입자가 모공을 막아 트러블이 나기도 해요. 대부분 미미한 부작용이고, 유기자차에 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 더욱 다양하고 심해서 무기자차를 추천합니다. 다만 무조건 이분법으로 볼 문제는 아닙니다.” 실제로 징크옥사이드는 피부에 흡수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성분으로 분류되어 왔지만 피부 상피세포에 손상을 일으키는 세포 독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외선 차단제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했을 때의 이득이 그 폐해 보다 더 큰지에 대한 논쟁도 활발하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리타 슈티엔스는 <깐깐한 화장품 사용 설명서>를 통해 자외선 차단 성분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그럼에도 그녀를 비롯한 많은 피부과 전문의들은 여전히 자외선 차단제 사용을 강력하게 권한다. 햇볕은 피부암과 노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자외선 차단제가 피부암 발병 위험을 줄이며 피부 노화를 예방하는 최선의 대비책 중 하나다.

김홍석 원장은 “언급된 성분들은 주의하는 게 좋습니다. 다만 의학적으로 신체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보다 정확한 후속 연구가 필요해요. 그전까진 자외선 차단제로 피부를 보호해야 합니다. 불확실한 위험을 피하는 것보다 확실한 위험을 피하는 게 먼저니까요.” 봄볕이 내리쬐는 4월, 신제품 자외선 차단제 론칭이 줄을 잇는다. 자외선 차단제를 피할 수 없다면 이 기회에 내가 쓰는 자외선 차단제는 어떤 성분을 어떻게 잘 버무렸는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선 후속 연구가 발표될 때까지는 귀찮더라도 문제 성분은 일단 피해 가는 게 ‘보디 버든’을 줄이는 방법이 될 거다. 우리가 이렇게라도 따지고 들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테니 말이다.

프리랜스 에디터
김애림
포토그래퍼
박종원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