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적 이동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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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한 형태, 육중한 무게, 막강한 속도를 가진 ‘탈 것’에 푹 빠진 패션.

사랑은 기묘하게도 자신과 전혀 다른 정반대의 이성에게 마음을 이끌리게 만든다. 패션 또한 마찬가지다. 몸을 타고 유연하게 흐르는 패션의 기질과는 정반대의 둔탁하고 묵직한 것에 늘 마음이 빼앗긴다. 그것은 한 때 가구였고, 건축물이었으며, 설치 미술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젠 그 사랑의 대상은 차나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비행기에 이르는 ‘이동 수단’이 됐다.

그 놀라운 러브 스토리의 시작은 버질 아블로다. 최근 그는 옷도, 신발도, 시계도, 가구도 아닌 비행기의 외관을 디자인했다. 하다 못해 비행기마저 디자인하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방식의 접근이라 벼락 같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버질 아블로가 직접 디자인에 뛰어든 이 비행기는 그의 친구인 음악가 드레이크의 전세기다. 지난 여름, 해외 투어 공연이 즐비한 드레이크를 위해 캐나다의 항공사인 카고젯이 드레이크에게 선물한 비행기를 버질 아블로가 완전하게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물론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버질 아블로는 ‘VIRGIL ENGINEERING’이라는 문구를 비행기의 날개에 아주 큼직하게 새겼고!

사실 버질 아블로는 이미 오프 화이트와 루이비통 남성복 컬렉션을 통해 ‘이동 수단’에 대한 지속적인 흥미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그가 철저하게 스트리트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예측 가능한 결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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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날렵하게 빠진 스포츠 카는 휘황한 금속 액세서리나 화려한 시계처럼 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의 명징한 상징이다. 팔라스와 스투시, 슈프림, 야드세일과 같이 현존하는 스트리트 브랜드들의 광고 캠페인 속에는 늘 자동차나 오토바이와 같은 잘 빠진 ‘이동 수단’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슈프림은 며칠 전 람보르기니와 협업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탈리아의 최고급 자동차와 뉴욕을 대변하는 스트리트 브랜드의 만남이라는 사실은 패션은 물론 차를 좋아하는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도 흥미진진한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흥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몇 달 전 혼다와도 협업을 진행했던 슈프림인지라 이번 협업은 전혀 낯설지 않았고, 다른 브랜드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본다. 무엇보다 비행기마저 디자인하는 판국에, 그 영역이 어디로 확장될 것인지 기대가 남달라진다.

프리랜스 에디터
김선영
사진
Instagram @virgilabloh @palaceskateboards @stussy @yardsale_xxx @supremenew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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