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아진 남성복 패션위크 현장. 2020 F/W 시즌 밀라노, 파리에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물론 깨알 같은 디테일을 조명했다.
태양과 펜디
일본 디자이너 언리얼에이지(Anrealage)와 협업해 태양광 자외선이 닿으면 색이 변하는 포토크로믹 아우터와 액세서리를 선보인 펜디. 유럽 패션 하우스 중에서는 첫 시도로 흰색 아우터가 노랗게 반짝이거나 새로운 FF 로고 패턴을 보여주었다.
올해는 타이를 매겠어요
가장 인상적인 스타일링을 꼽는다면 알릭스(Alyx) 쇼의 타이 부대. 점프슈트나 가죽 재킷에 매치한 흰 셔츠, 가죽 타이 조합이 그렇게 쿨할 수 없었다. 클로징을 장식한 벨라 하디드는 물론 피날레 인사를 나온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스의 타이로 다시 한번 방점을 찍었다.
태극기 휘날리며
갈수록 한국 셀레브리티의 참석이 중요해지는 패션위크. 디올에는 남주혁, 벨루티엔 세훈, 구찌엔 카이가 참석해 전 세계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르코르뷔지에가 질투한 디자이너
현재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중 가장 거대한 전시인 <샤를로트 페리앙 전>을 놓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없는 탓에 정말 급하게 둘러봐야 했지만, 20세기 가장 성공한 여성 가구 디자이너의 기념비적인 전시를 직접 봤다는 데 의의를.
안녕, 코헤이 그리고 마리노
파리 근교에서 이뤄진 남성복 화보 촬영. 톱모델 코헤이와의 촬영이 성사된 것도 기뻤지만,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로케이션. 조각가 마리노 디 티에나(Marino Di Teana)의 아카이브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작업실에서 흐릿한 시간의 흔적과 그것이 주는 고적한 아름다움을 화보에 담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에디의 기억
셀린 퍼퓸만을 소개하기 위해 생긴 파리 생토노레의 부티크에 가면 직원들이 친절하게 향을 설명해준다. “나이트클러빙은 15세부터 파리 클럽 키드로 자라온 에디가 그 시절의 시간을 추억하는 향이에요” “당 파리 앤 퍼레이드는 프랑스 신고전주의에서 영감을 얻은 순수한 향이죠. 그는 낮 시간대에 이 향을 즐겨 사용한대요”라는 식. 에디터가 선택한 향은 파충류라는 뜻의 ‘렙틸(Reptile)’. 에디가 이 향을 묘사한 바에 따르면, 위험하고 유약한 외모의, 액체형 남자?
축하해요, 폴 스미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폴 스미스. 자신의 아카이브 컬렉션을 배경으로 함박웃음과 함께 펄쩍펄쩍 뛰어나온 디자이너의 피날레 인사에 모든 프레스가 큰 환호를 보냈다.
트렁크의 변신
유독 여행용 가방에 디자이너들의 실험적 시도가 더해진 시즌. 루이 비통은 르네 마그리트의 구름을 연상시키는 로고를 더했고, 처음으로 세로형 가방을 선보였다. 여행의 정신을 기조로 삼는 브랜드다운 시도랄까. 벨루티에는 글로브트로터와 협업한 트래블 캡슐 컬렉션이 등장했는데, 브랜드의 상징적인 액세서리 슈즈를 위한 슈즈 트렁크, 슈 케어 케트가 포함됐다는 소식을 전했고, 구찌는 전복적인 성별 역할을 제안한 쇼 테마에 따라 ‘FAKE’라고 쓰인 강력한 메시지를 입히기도 했다.
무대의 힘
이번 시즌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진 세 곳의 쇼장. 구찌의 모래밭과 흔들리는 추, 프라다의 3차원 조각상이 자리한 경기장, 루이 비통의 초현실적인 거대 오브제.
무슈 자크뮈스의 춤 실력
이번 자크뮈스의 애프터파티는 그의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기도 했다. 스태프와 그의 친구들이 준비한 깜짝 케이크가 등장했는데, 그 정체는 바로 거대한 치퀴토 백 케이크. 무슈 자크뮈스는 케이크를 번쩍 들고 사진을 찍었고, 흥이 넘친 그는 엄청난 춤 실력을 발휘하기도.
걸크러시에 반해봐
남성 쇼에 참석한 여성 게스트의 옷차림이 훨씬 쿨하고 멋져 보인달까. 특히 과감한 크롭트 톱에 당당한 애티튜드까지 더한 루이 비통 프런트로의 벨라 하디드, 디올맨 슈트에 브라톱을 매치한 카라 델러빈의 걸크러시에 다시 한번 반했다.
발렌티노 콘서트
깜깜하게 불이 꺼지고, 흰 드레스를 입은 누군가가 지나갔다. 불이 켜진 무대에 FKA 트위그스가 서 있었다! 그녀는 쇼가 진행되는 동안 지난해 말 발표한 ‘Mary Magdalene’를 열창했고,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쇼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더해져 근사한 판타지가 완성됐다.
못하는 게 뭐예요?
마레 지구의 작은 갤러리 크레오(Kreo)에서 버질 아블로의 가구 전시가 열렸다. 원형 테이블, 콘솔, 의자, 꽃병 등 20가지로 구성되었는데, 거친 콘크리트 형태에 구멍과 틈새 사이로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 브루탈리즘과 오가닉한 요소를 접목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응원해
패션위크 현장에서 가장 반가운 건 런웨이에서 선전하는 풋풋한 한국 모델. 벨루티에선 이민석을, 프라다에선 소진호, 루이 비통에선 이승찬을 만났다.
놀랐지?
오프화이트 런웨이에 선 식케이를 백스테이지에서 만났다. 한국인으로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감을 전한 그는 준비하는 내내 리듬을 타며 멈추지 않는 흥과 끼를 드러냈다.
웰~~던!
파리 맨즈 컬렉션 스케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웰던 쇼. 권다미, 정혜진의 감각적인 디자인은 익히 알려진 터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누나 권다미에 힘을 보태기 위한 지드래곤의 참석 또한 화제였다. 쇼는 트렌디한 실루엣과 실험적인 레이어링이 눈길을 끌었고, 디자이너 듀오는 해외에서도 손꼽히는 헤어 스타일리스트 유진 솔르망, 사운드 디렉터 미셸 고베르 등과 일해 영광이었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이 노래
고백하건대, 이 두 곡으로 이번 파리를 영원히 기억할 듯하다. 낸시 시내트라의 투박한 중저음과 리 헤이즐우드의 몽환적인 목소리가 섞인 ‘Some Velvet Morning’이 흘러나온 라프 시몬스 쇼장은 의자도 없는 스탠딩 쇼로 모두가 맘껏 런웨이를 감상하도록 만들어졌다. 미국을 떠나온 그가 이제는 조금 쇼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준, 모두가 그를 응원한 쇼. 그리고 DJ 허니 디종이 음악을 감독한 디올맨 쇼. 워(Vår)의 ‘In Your Arms’ 도입부가 흘러나오자 흥분된 관객들의 공기가 전해졌고, 킴 존스의 감동을 줄 만큼 아름답고 우아한 디올맨과 겹쳐지며 이번 시즌 최고의 순간을 완성해주었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