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 하에넬이 시상식에서 뛰쳐나간 이유.
2월 28일 프랑스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세자르 영화제가 열렸다. 영화와는 별개로 세계적인 논란거리가 된 이 시상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날의 감독상은 <장교와 스파이(An Officer and a Spy>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수상했다. 이게 도화선이 됐다. 사실 그는 수차례 아동 성범죄 혐의로 40년간 도피생활 중인 원로 감독이다. 시상식이 열린 파리 살플레옐 극장 앞은 영화제 전부터 시끌시끌했는데 그 이유는 폴란스키의 수상을 반대하는 시위 때문이었다. 로만 폴란스키 영화의 프랑스어 제목 <나는 고발한다>를 인용한 피켓도 등장했다. ‘나는 고발한다. 폴란스키와 세자르를’ 문구도 눈에 띈다. 강간하다는 뜻의 프랑스어 ‘Violer’에 폴란스키를 더한 ‘비올란스키(Violanski)’란 합성어까지 등장했다.
이 논란에 불을 지핀 사건이 하나 더 일어났다.세자르 시상식에서 폴란스키 감독이 감독상에 불리자 배우 아델 하에넬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 것. 객석에 앉은 일부 관계자들도 그녀를 따라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상황이었다. 사실 그녀는 그 자리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인 게 12살 때였는데 그때 감독이 자신을 더듬고 성적 학대한 사실을 폭로하며 ‘Me Too’를 외친 바 있다. 그와 비슷한 전적을 가진 폴란스키가 상까지 거머쥐 다니, 화가 날만하다.
로만 폴란스키는 이미 세자르상 시상식이 열리기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지난 1월 18일, 세자르상 측에서는 로만 폴란스키를 올해 세자르상 심사 위원장에 위촉한다고 발표한 것부터 시작이었다. 물론 그의 커리어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세자르상 감독상을 3번이나 수상했고 각본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하지만 발표 직후 그의 아동 성범죄 관련 이슈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현재까지 알려진 피해자만 12명. 이 중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미성년자며 술과 약물을 이용한 범죄가 알려지며 논란은 더욱 심해 졌다. 여러 단체에서 보이콧을 하겠다며 나섰고 그의 심사위원 사퇴에 관한 서명운동이 일어났다. 서명 숫자는 무려 5천4백만 건 이상이나 됐다. 결국 그는 심사 위원장을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폴란스키 감독에 대해 한 번 짚고 넘어가자. 그는 세계적인 거장 감독 중 하나로 우리에게는<피아니스트>, <차이나타운>, <대학살의 신>으로 유명하다. 그가 처음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유죄를 받은 건 1977년, LA에서였다. 당시 피해자의 나이는 겨우 13세. 술과 최면제를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이후에도 그의 범죄 행위는 계속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스키 감독이 버젓이 사회생활을 하고 영화 제작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한국이었으면 대국민 사죄를 하고 철창 안에 살거나 혹은 집행유예로 집에서 칩거하며 배달음식이나 시켜 먹었을 일이다. 첫 사건이 일어나고 폴란스키 감독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미국을 떴다. 그리고는 런던을 거쳐 프랑스 파리로 갔다. 그리고는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곧장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고 그 뒤로 계속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 2009년, 스위스 경찰에게 체포되었는데 프랑스와 미국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2011년 제작된 영화 <대학살의 신>의 배경은 미국이고 출연자 모두 미국인이지만 파리에서 촬영 & 편집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자르 시상식 보이콧, 게다가 밖에서는 시위가 한창이었지만 주최 측에서는 “후보자 선정에 있어서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폴란스키 역시 시상식에 불참했다. 사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유럽과 미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미국 아카데미는 2018년 미투 논란이 일어나자 성범죄 이력을 가진 폴란스키를 회원 명단에서 영구 제명했다. 유럽은 다르다. 죄와 영화는 별개라는 입장. 폴란스키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 등 꾸준히 상을 받고 있다. 베니스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예술의 역사는 범죄자로 가득하다”라며 그를 옹호했다. 과연 어느 쪽이 맞는 걸까. 세 번 곱씹어도 이건 아닌 듯하다.
- 프리랜스 에디터
- 박한빛누리
- 사진
- GettyimagesKorea, Instagram @adelehae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