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메이크업 라인을 선보이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기대는 차고 넘쳤다.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대체로 실망하기 마련이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구찌 뷰티가 이뤄낸 가장 큰 성과는 거울을 보며 ‘나도 꽤 괜찮은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밀레니얼 베이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구찌에서 메이크업 라인을 론칭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차례차례 캠페인 비주얼이 공개됐을 때만 해도 나는 반신반의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포장만 예쁘면 어쩌지?’ 그러나 지난해 11월, 구찌 뷰티의 개성 넘치는 모델 중 한 명인 엘리아 소피아 코긴스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그녀와 함께 제품을 사용해본 뒤부터, 마음 놓고 이 브랜드를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구찌 뷰티는 이제 막 세 가지 립스틱을 세상에 내놓았을 뿐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다른 메이크업 브랜드의 경계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메이크업은 자신의 한 측면을 강조하거나 분명히 표현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매우 즉각적이고 오래된 방법이고, 가장 매혹적이죠.”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결점은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메이크업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거나 원하는 누군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가장 손쉽고 효과적이며 매력적인 수단, 립스틱을 출발점으로 삼은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 “립스틱은 핸드백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물건이죠.” 50~60년대의 올드 할리우드 글래머들, 이를테면 진 할로, 베티 데이비스, 그레타 가르보 등의 컬러명이 붙은 구찌 뷰티의 립스틱에선 바이올렛 향이 난다. 36가지 컬러로 크리미하게 발리는 동시에 강렬한 발색을 자랑하는 새틴 피니시의 ‘루즈 아 레브르 사탱’, 가볍고 반짝이는 포뮬러에 18가지 팝 컬러로 선보이는 ‘루즈 아 레브르 브왈’, 촉촉하고 편안하게 발리면서 투명하게 빛나는 입술을 연출해주는 4가지 컬러의 ‘봄므 아 레브르’까지. 서로 다른 3가지 포뮬러에 58가지 셰이드는 어느 누구든 자신에게 꼭 어울리는 컬러와 텍스처를 고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3가지 립스틱은 마치 오래된 보석 상자에서 꺼낸 것처럼 빈티지한데, 아르데코 패턴, 장미 꽃잎 프린트, 터키블루 컬러까지 파우치에 넣지 않곤 못 배기게 만든다.
구찌 뷰티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캠페인은 또 어떤가? “인간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현실에 가까운, 그러나 낯설게 느껴지는 묘사를 하고 싶었어요. 이 이미지들은 낯설지만 인간적이어서 아름답죠. 마틴 파(Martin Parr)가 촬영한 사진은 마치 총알과도 같아요. 군더더기 없이 직관적인 동시에, 사진 속 여성들이 아주 자유로운 방식으로 메이크업을 하고 있어 포용적이기도 하거든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이런 관점 덕분에 우리는 이제껏 뷰티 업계에서 보지 못한 신선한 비주얼,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캠페인은 요즘 패션&뷰티 업계의 화두인 다양성을 표방한 것이 아니라 다양성 그 자체를 보여준다. 대니 밀러, 메이 라프레스, 아초크 마작, 엘리아 소피아 코긴스, 이 네 모델은 사진 속에서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데, 그게 쿨하다는 건 이제 막 깨달은 느낌이다. 머리로만 알던 사실을 눈으로 처음 확인했달까? 립스틱 캠페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고르고 하얀 치아, 매끈하고 하얗게 빛나는 피부, 도톰하고 균형 잡힌 입술 따윈 없지만,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생기가 넘치고 즐거운 마음이 든다. 우리가 그 립스틱을 바르면 바로 저런 모습 중 하나일 테고 그게 멋진 것이다.
완벽해질 필요가 없다는 것, 이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이런 방식으로 패션 업계를 통째로 뒤흔든 미켈레 신드롬이 뷰티 업계에도 당도하고 있다. 우리를 안달 나게 할 만큼 예쁘고 기분 좋은 립스틱, 그다음은 무엇일까?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뷰티를 사랑하는 이들의 즐거움이 하나 더는 것만은 확실하다.
Interview with Ellia Sophia Coggins
언뜻 젬마 워드와 릴리 콜을 연상시키지만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마스크. 이 현대적인 미국 소녀, 엘리아 소피아 코긴스는 자신의 모델 경력 첫해를 구찌와 함께 시작했다.
당대 가장 핫하다는 구찌 컬렉션의 모델이 되었어요.
엘리아 소피아 코긴스 제겐 굉장히 의미 있는 경험이에요. 멋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패션 역사에서 영향력 있고 중요한 순간의 일부가 되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런 놀라운 일은 처음이고 제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죠.
모델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4년 전, 제가 열일곱 살 때였죠.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받았는데 담당자가 굉장히 친절했고 합리적이었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한번 해보지 뭐’ 하며 도전하게 되었죠.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 여성들은 오는 2월 구찌 메이크업을 처음 만나요. 모델로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 메이크업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기 자신을 완전히 표현할 힘과 권리를 가졌고, 구찌 뷰티의 캠페인은 그런 미학을 지지하고 개인의 개성을 우선시하죠. 모두에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용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동안 많은 메이크업 광고를 봤지만, 이번 구찌 뷰티의 캠페인은 정말 특별했어요. 찡그린 입술, 치열이 고르지 않은 입까지 이례적인 비주얼이었죠. 촬영 시 어떤 디렉션을 받았나요? 그들은 우리가 최대한 그대로의 모습이길 바랐어요. “여러분이 예쁘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니까요!
엘리아의 얼굴은 매력이 넘쳐요. 본인이 모델을 하고 있으니까 스스로의 매력을 이젠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이 예쁘다는 사실을 언제 깨닫게 되었나요?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솔직히 나 자신에게 익숙해지는 데 18년이 걸렸는데, 구찌가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어요. 왜냐하면 구찌 덕에 제가 가진 매력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대로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특별히 계기가 있었나요? 구찌 쇼에 섰을 때요! 그때 제 머릿속에서 갑자기 그 사실이 분명해졌어요.
메이크업을 즐기는 편인가요? 평소엔 메이크업을 많이 하지 않는데, 놀러 나갈 땐 마스카라랑 립스틱을 조금 발라요. 립스틱을 립에 바른 뒤, 볼에도 조금 바르고요.
구찌 뷰티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은 뭐예요? ‘루즈 아 레브르 사탱’의 ‘오달리 레드’ 컬러요. 저는 레드 립스틱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메모아 향수도 즐겨 쓰죠. 누구나 뿌릴 수 있는 향기인데, 신기하게도 뿌리고 나면 모두에게 다른 향이 나더라고요.
오늘 입은 빈티지 슈트가 정말 잘 어울리네요. 저는 빈티지를 정말 좋아해요. 60년대나 70년대 패션을 즐기고 최근 옷은 거의 입지 않아요. 언제나, 늘 빈티지죠.
구찌 캠페인 촬영을 하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제일 짜릿한 순간은 카메라가 꺼진 후였어요. 모두 함께 세트장에서 즐겁게 놀았답니다.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정말 재미있었어요.
함께 촬영한 모델들과 많이 친해졌나 보군요. 대니(Dani)와 저는 굉장히 친해요. 메이(Mae)도 그렇지만, 대니와 저는 뉴욕에 살고 있어서 자주 봐요.
세 모델이 함께 한국에 와서 즐거울 것 같아요. 정말 좋아요!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고, 특히 음식은 믿기지 않을 만큼 맛있어요. 어젯밤 오리고기를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한국 스파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가기 전에 그럴 시간이 날지 모르겠네요.
이제 스물한 살이에요. 앞으로 뭘 하고 싶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뭔가 일어날 때 그에 따라 움직이고 싶어요. 왜냐면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싶지 않거든요, 근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 목표는 구찌와 일하는 것이었는데 이미 달성했잖아요. 이 사실이 굉장히 기뻐요.
와우, 꿈을 빠르게 이뤘네요. 네, 이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잘 생각해봐야죠.
- 뷰티 에디터
- 이현정
- 사진
- COURTESY OF GUCCI BEAU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