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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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에 철저히 ‘타자의 영역’에서 웅크리고 있는 괴물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여성, 이민자, 성소수자, 장애인, 유색 인종이다. 여기 5점의 미술 작품, 혹은 기기묘묘한 괴물 탄생기를 소개한다.

1. 조던 울프슨
인간과 로봇의 음험한 경계

“엄마가 죽었어요. 아빠도 마찬가지죠. 저는 동성애자예요. 시인이 되고 싶어요. 이건 저의 집이에요.” 마녀를 떠올리게 하는 기괴한 마스크를 착용한 여성 로봇은 독백을 마친 후 레이디 가가의 ‘Applause’에 맞춰 느릿하게 몸을 움직인다. “나는 박수 갈채를 위해 살아 / 너희가 나를 향해 환호하고 소리치는 것을 위해 살지.” 전시장을 울릴 만큼 요란한 노랫소리가 한동안 이어진다. 근육, 피부 질감처럼 사람의 외관을 재현할 뿐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듯한 동작마저 구현하는 ‘애니매트로닉스’ 기술로 제작한 ‘(Female Figure)’는 2017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구토감을 유발할 정도로 폭력적이던 VR 영상 작품 ‘Real Violence’를 통해 단숨에 ‘문제적 예술가’로 호명된 조던 울프슨의 작품이다. 풍성한 금발 머리에 나체가 아슬아슬하게 엿보이는 원피스 차림의 로봇은 1992년 킴 베이싱어가 연기한 영화 <쿨 월드>의 관능적 스트리퍼 홀리 우드(Holli Would)와 오차 없이 닮았다. 2013년 울프가 할리우드로 스튜디오를 옮긴 후 특수 효과 제작사 ‘스펙털 모션’과 합작해 만든 ‘(Female Figure)’는 인간과 로봇의 음험한 경계에 있는 기괴한 형상을 통해 화려한 팝 컬처에 기반한 폭력과 섹슈얼리티, 남성 중심의 공동체에서 철저히 대상화되는 여성 문제를 고발한다.

과거 인터뷰에서 “청소년기부터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고 고백한 작가는 나아가 로봇 앞에 성인의 신장을 훌쩍 넘기는 전면 거울을 설치했다. 로봇은 “시인이 되고 싶어요”라고 읊조리며 단순한 무언가가 아닌 무언가가 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하지만, 차가운 쇠 막대가 로봇을 거울 앞으로 고정시키고 그럼으로써 로봇은 오로지 거울에 반사된 모습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로봇이 거울로 인해 대상화되는 동시에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작가는 로봇의 이마에 관람객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카메라를 내장했는데, 이로써 관람객이 로봇에 다가오면 로봇은 눈을 ‘부라리며’ 관람객을 응시한다. 전통적으로 예술은 일방향의 경험이었다. 다시 말해 관객이 작품 앞에 서서 이를 바라보고, 작품은 관찰당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로봇이 관람객을 또렷이 응시하는 순간 단순히 대상화되던 로봇이 관람객을 대상화하는 기묘한 역전이 일어난다. 더구나 차가운 로봇은 인간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이때 관람객은 이런 의문을 품게 되지 않을까?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괴물인가?’ 이로써 작품은 성의 고정된 기호에 반기를 드는 것에서 나아가 인간의 주체성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2. 오스카르 무리요
활활 타오르소서

동시대에 세계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디아스포라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오스카르 무리요를 빠트릴 수 없다. 작년 34세의 나이로 터너상을 받은 무리요는 1986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1997년 영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다. 전 세계를 유랑하며 목도한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회화,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는 무리요는 오랜 시간 ‘정착의 불가능성’에 천착해왔다. 지난 112일까지 터너 갤러리에서 진행한 전시 <Turner Prize 2019>에서 그는 낡은 교회 신도석에 블루칼라 노동자를 형상화한 실물 크기의 종이 인형 23개를 배치한 설치 작품 ‘Collective Conscience’를 통해 다소 기괴한 장면을 연출했다. 쇠 파이프로 가슴이 관통된 노동자들은 구원을 바라는 신도들처럼 일제히 한곳을 응시하지만 그들의 시야는 창문에 드리운 검은색 캔버스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히고 만다. 장애물 역할을 한 ‘Surge(Social Cataracts)’는 전시장이 위치한 마게이트의 밤바다 혹은 모네가 말년 백내장을 앓으며 완성한 ‘수련’의 형상과 흡사한데, 이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복잡성을 의미하는 사회적 맹상태(Social Blindness)를 은밀하게 암시하는 장치로도 읽힌다. 한편 관람객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 사람 형상의 독특한 피겨는 12월 한 달 동안 집 앞에 종이 인형(PapierMâché)을 앉혀두었다가 새해가 되면 액운을 쫓길 기원하며 이를 태우는 콜롬비아 풍습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무리요는 노동자를 형상화한 종이 인형의 가슴에 터널을 연상시키는 쇠 파이프를 꽂은 다음 석탄 모양의 점토로 가득 채우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콜롬비아의 액운 퇴치용 인형처럼 언제든 대체되고 소비될 수 있는 노동력의 이면을 암시했다. 관람을 마치고 전시장을 떠나기 전, 노동자 인형들의 뒤에 걸린 존 왓슨 니콜의 ‘Lochaber No More’(1883)도 주목할 것. 눈먼 산업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회화 작품은 18세기 대영제국이 양 목장을 짓기 위해 스코틀랜드 산악 지대의 원주민을 강제로 내쫓으며 단행한 ‘하일랜드 청소(Highland Clearances)’를 형상화했다.

3. 윌 베네딕트 & 스테펜 예르겐센
반인반수의 괴물이 사는 미래

작년 9월 아트선재센터에서 개막한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 인류의 현재를 고찰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전시장에는 다른 생명체와 결합하거나 몸의 일부가 분리된 신체와 같이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띤 작품이 가득 자리했는데, 생경한 포스트휴먼이 장악한 당시의 전시장을 편의대로 요약하자면 ‘기기묘묘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윌 베네딕트 & 스테펜 예르겐센의 설치 작업 ‘모든 출혈은 결국엔 멈춘다’는 전시장 한구석에 숨은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야만 등장한다. 이곳에 들어선 누구라도 관객을 맞이하는 기괴한 몰골의 반인반수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총 6부작으로 이뤄진 영상 작업 <더 레스토랑>의 주인공 ‘스네일리언’을 실물 크기로 제작한 마네킹이다. 달팽이 형상의 머리를 가진 스네일리언은 밤마다 식료품을 배달하는 직업에 종사한다. 등장인물이 요리와 관련한 영상을 찾아보고, 식료품 배달업자인 스네일리언에게 전화하는 스토리를 가진 일종의 초현실적 시트콤 <더 레스토랑>은 인간이 신체 기관의 에너지를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 결국 대사의 결과 발생하는 배설물이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기괴한 메시지를 전한다. 때문에 영상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주장하려고 할 때마다 배설물은 빈번히 되받아친다. “네가 과연 책임자인 것 같아?”라고. 그럼에도 영상은 단순히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종말론적 식분증에 휩싸일 것이라는 식의 비관주의로 빠지지만은 않는다. 우선 영상의 주요 캐릭터인 스네일리언은 그로테스크한 세계에서 유연하게 적응한 존재다. 이러한 스네일리언의 ‘유연성’으로 미뤄 보았을 때 이 세계가 제로섬 시스템은 아니라는 것, 식분증 혹은 광란과 함께 사는 낙관적 시나리오를 상상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4. 클라라 크리스탈로바
음울하고도 환상적인 베드타임 스토리

잔혹 동화의 한 페이지. 페로탱, 리만머핀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치른 체코 출신의 예술가 클라라 크리스탈로바의 조각이 환기시키는 이미지다. 몸통이 새로 변한 어린아이(‘Siren’)와 나뭇가지 모양의 눈물을 떨구는 소녀(‘The Rights of Spring’), 얼굴에서 화려한 날개를 가진 나비가 피어오르는 사람(‘And Still They Remain’) 등 크리스탈로바의 조각은 하나같이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선 기묘한 형상을 띤다. 요시모토 나라의 그림에서 스치는 훗훗한 동화적 분위기와 메리 셸리의 괴기 소설 <프랑켄슈타인> 사이를 오가는 크리스탈로바의 조각은 종종 ‘유년기에 꾼 지독한 악몽’에 비유되는데, 실제 작가는 신체·정신적 변화가 이뤄지는 경계적 시점인 유년기를 작품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변화의 소용돌이에 선 유년은 순수와 타락,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Darkness and Light’와 같이 뒤통수를 맞댄 두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작가는 이에 “어둠이 없으면 빛도 없고 공명도 없다. 나는 슬픔을 겪지 않고 행복을 상상하는 것이 어렵다”는 주석을 단다. 그렇기에 유년기 어린아이의 신장과 유사한 크기로 제작된 조각은 단순한 이분법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아득한 잠재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좀처럼 설명되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존재하는 미지의 영역을 말이다.

5. 장파
여성이란 괴물

별안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다면 이런 감각일 것이다. 장파의 회화 연작 ‘LadyX’를 마주한 첫인상이다. 2015년 시작한 ‘LadyX’는 나무에 성욕을 느끼는 도착증인 ‘덴드로필리아’를 지닌 여성 ‘레이디 엑스’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회화 및 드로잉 작업이다. 레이디 엑스의 성장기는 나무가 피뢰침처럼 솟은 숲에서 시작한다. 나체의 레이디 엑스는 숲으로 향하며 나무, 동물, 동성, 심지어 유령과 성교하며 자신의 은밀한 성욕을 탐구한다. “여성의 고유한 섹슈얼리티가 과연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여성이 자신의 성욕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작업의 출발이었어요.” 남성 중심의 공동체에서 여성은 철저히 ‘타자’로 호명된다. 주체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이며, 이해되거나 설명되지 않은 채 쉽사리 ‘괴물’로 요약되는 존재들이다. 장파는 여성을 파괴적 힘을 가진 괴물로 형상화해 여성의 몸에 덧씌워진 부정성을 비판적으로 재고한다. 동시에 규범화된 여성성에 길들여지길 거부하며 여성을 ‘욕망하는 주체’로 나타내 여성성의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

사실 레이디 엑스의 성장기라는 내러티브보다 찌르듯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색채’가 그의 작업을 주목하게 된 계기였다. 폭발하는 듯한 관능적 색채가 한껏 과잉적으로 사용됐는데, 작가는 이에 대해 ‘불편한 긴장감’이라고 번역한다. “중성색인 보라색이 난색의 주황 계열과 만났을 때 보라색의 시각적 온도가 상대적으로 차갑게 대비되며 빚어지는 긴장감과 쾌감을 즐겨요. 제 작업에서 색채는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저는 색채의 정신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숭고의 체험으로 설명한 ‘색채 추상’ 역시 남성 중심의 감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색채는 전통적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비이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요. 저는 오히려 조화롭다고 여겨지지 않은, 다양한 감정이 들끓어 불편한 상태를 만들어 색채가 주는 감각을 극대화하고 싶었어요.” 여성 괴물이 전통적 가부장제를 위협하는 존재일지언정 작가는 여성 괴물을 ‘소재적’으로 다루거나 성을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을 경계하며 ‘여성적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을 탐색했다. “여성적 그로테스크는 새로운 여성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주체의 경계를 되묻고 넘나들 때 발생하는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주체가 되기 위해 누군가를 타자로 만들지 않는 동시에, 가부장제의 여성적 규범을 뒤흔들며 보편적 감각을 재설정하는 가능성을 지닌다고 봐요. 제 작업은 여성적 특성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젠더 편향적 시각 체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각 언어라 할 수 있어요.”

피처 에디터
전여울
사진 출처
1. JORDAN WOLFSON, (FEMALE FIGURE), 2014, INSTALLED IN JORDAN WOLFSON, DAVID ZWIRNER, NEW YORK, 2014. © JORDAN WOLFSON PHOTO BY JONATHAN SMITH. COURTESY THE ARTIST, DAVID ZWIRNER AND SADIE COLES HQ, LONDON. 2. OSCAR MURILLO, INSTALLATION VIEW OF COLLECTIVE CONSCIENCE, 2019, TURNER PRIZE 2019 AT TURNER CONTEMPORARY. PHOTOGRAPH BY STEPHEN WHITE. 3. WILL BENEDICT & STEFFEN JØRGENSEN, ‘ALL BLEEDING STOPS EVENTUALLY’, 3D PRINT, MANNEQUIN, AUDIO AND VIDEO LOOP, MIXED MATERIALS, 2019. 4. KLARA KRISTALOVA, ‘DARKNESS AND LIGHT’, 2011, GLAZED PORCELAIN, 16.93×11.81×9.06 INCHES / 43 X 30×23 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AND SEOUL. 5. JANGPA, ‘LADY-X NO.7’, 2015, OIL ON CANVAS, 72.7×5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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