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을 채운 글만큼 그림 바라보는 재미를 안겨주는 아트북, 글의 정서를 대변하는 그림이 함께하는 산문집을 소개한다.
세상의 여자들은 샤넬을 좋아하는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로 나뉜다고 했던가. 샤넬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라면 <샤넬: 하나의 컬렉션이 탄생하기까지>(오부와)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말 그대로 가슴이 벅차게 뛸 것이다. 이 묵직한 아트북은 칼 라거펠트의 스케치 한 장이 마법 같은 패션쇼로 탄생하는 과정을 담는다. 그 과정은 뭉뚱그린 요약과는 차원이 달라서, 먼 길을 갈 때 사방팔방의 모든 요소를 하나씩 눈여겨보는 자의 시선처럼 꼼꼼하고 사려 깊다. 이 책은 쇼가 열리는 어느 하루, 캉봉 거리에 있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자수 공방, 깃털과 꽃과 플리츠를 만드는 공방, 가죽 공방 등등에서 펼쳐지 는 풍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특별한 점은 수많은 풍경과 과정을 글뿐 아니라 그림으로도 묘사한다는 것. 장 필리프 델롬(Jean–Philippe Delhomme)이 그린 상당한 양의 일러스트는 ‘한 브랜드의 모든 것’에 가까운 충실한 리포트를 자료 사진첩과는 분명 다른 감상을 자아내는 아트북으로 격상시킨다.
<혼자 보는 그림>(원더박스)은 그림 읽어주는 책이 아니라 그림을 사랑하는 여자의 산문집이다. 학고재, 갤러리 현대 등에서 10년 넘게 전시 기획 일을 한 큐레이터 김한들은 누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물으면 망설임 없이 ‘플라뇌르(Flâneur)’라고 답할 수 있다는 사람이다. 한가롭게 거니는 자, 그래서 주변을 살피며 몽상가적 기질을 발현하는 자의 삶에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생각들이 피어날 테니. ‘큐레이터로 사는 법’이나 ‘작품 감상법’ 등을 본격적으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은 피해 가길 권한다. 다만 일상의 고요한 순간, 안전한 마음 같은 것을 추구하는 김한들이 느끼고 바라보는 세상에는 ‘미술을 사랑하며 좋은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이 기본적 태도로 깔려 있다. 그렇게 저자가 특히 아끼는 네 명의 미술가, 전병구, 박광수, 팀 아이텔, 알렉스 카츠의 그림이 중간중간 쉼표와 느낌표처럼 흘러간다. 그 그림들의 느낌과 이 산문집이 지닌 온도가 거의 비슷하다.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박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