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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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유와 무신사가 함께하는 신진 디자이너 발굴 프로젝트 ‘무신사 넥스트 제너레이션’. 20194월 캐스팅콜을 통해 총 523팀이 지원, 43.5:1의 경쟁률을 뚫고 TOP 11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지난 12월, 심사위원 평가와 온라인 투표를 통해 TOP 3가 결정되었다. TOP 1을 가리는 마지막 3차 미션을 앞두고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렘으로 가득한 이들을 만났다.

Moderate  모더레이트 디자이너 김하늘

TOP 3를 선정하는 2차 미션에서 1위를 차지한 디자이너 김하늘.

TOP 3를 선정하는 2차 미션에 1등으로 선정됐다. 기분이 어떤가? 전혀 예상 못한 결과라 기분이 2배로 좋았다. 온라인 투표 현황을 주기적으로 확인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득표여서 놀랐다. 감사하다.

모더레이트는 어떤 브랜드인가? 20대~40대를 타깃으로 오버 핏을 지향하는 여성복 브랜드다. 심플한 디자인, 좋은 소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이런 경쟁 프로젝트에선 화려한 결과물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백한 디자인의 모더레이트 옷이 큰 관심을 받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 역시 다른 팀의 옷이 화려해서 자신이 없었다. 온라인 투표 페이지에 댓글창이 있었는데, 거기 남겨진 댓글이 큰 힘이 되었다. ‘웨어러블한 디자인이라 쉽게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신사는 캐주얼한 옷만 파는 곳인 줄 알았는데, 모더레이트의 옷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라는 평이 있었다. 장문의 댓글을 보면서 너무 좋아서 핸드폰에 캡처해 간직해두었다.

언제 브랜드를 론칭했나? 201811일에 론칭했다. 밀란에서 마랑고니 졸업 후 한국에 들어와 1년간 브랜드 론칭을 위한 자금을 모았고, 지금의 모더레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경험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 중학교를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캐나다에서 다녔다. 그리고 대학교를 밀란에서 다닌 건데 무엇보다 밀란에서의 배움이 큰 도움이 되었다. 패션위크 기간에 붐비는 쇼장 앞을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큰 자극이 되었을 정도니까.

2차 미션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사실 2차 미션을 준비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눈에 띄려면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파격적인 것을 시도해야 하나 싶었는데, 결국엔 내가 잘하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보통 뉴트로라고 하면 화려한 복고풍을 많이 떠올리는데, 나는 과하지 않은 뉴트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80, 90년대 재즈 앨범 커버, 재즈의 장르 중 하나인 보컬리즈 가수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드레스, 트렌치코트 등을 만들었다.

왼쪽부터 | 모델 선혜영이 입은 옷과 슈즈는 모두 모더레이트, 김다영이 입은 옷은 모더레이트, 앵클부츠는 렉켄 제품.

2차 미션에 제출한 옷 중 앞뒤 길이가 다른 가죽 베스트는 기존의 모더레이트 옷들에 비해 과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죽 소재를 워낙 좋아한다. 그래서 다루기 어려운 소재지만 매 시즌 가죽으로 만든 피스를 1~2개씩은 만든다. 특히 이번 2차 미션에서 가죽으로 만든 옷은 꼭 하나 하고 싶었다. 1980~90년대에 유행한 몸에 딱 맞는 코르셋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고, 허리 라인을 강조하기 위해 앞뒤 길이를 다르게 했다. 허리끈은 원래 굵은 걸 하거나 가는 걸 하거나 둘 중 하나로 하려 했는데, 사 와서 둘러보니 둘 다 어울려 굵기가 다른 허리끈 두 개를 넣었다. 두 개를 같이 묶어도 되고, 하나는 묶고, 하나는 푸는 식으로 다양한 스타일링이 가능하다.

‘무신사 넥스트 제너레이션(이하 MNG)’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9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무신사 스튜디오 입주, 무신사 스토어 입점 등 여러 혜택이 주어졌다. 다른 부분에서 성장한 점도 있나? 무신사와 더블유가 함께하다 보니 브랜드 자체 홍보 효과도 큰 것 같다. MNG를 하면서 해외 바이어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다. 그래서 2020 가을/겨울 시즌부터는 해외 진출에 도전해보려고 지금 봄/여름 시즌과 함께 가을/겨울 시즌까지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MNG 자체도 큰 도전이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또 다른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딛게 됐다.

MNG TOP 1의 베네핏 중 하나가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다. 만약 TOP 1이 된다면 누구와 함께하고 싶나? 아직 특정 인물을 생각해두진 않았다. 다만 오버사이즈 스웨트셔츠, 후디 같은 아이템을 만들고 싶어서 힙합 뮤지션과 함께해보면 어떨까 싶다.

어떤 여자들이 모더레이트의 옷을 입었으면 좋겠나? 보통의 여자들이 모더레이트를 입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 회사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 내 옷을 입어주었으면 좋겠다.

올해 계획이 있다면? 앞서 말한 해외 진출을 성공적으로 하는 것. 해외 편집숍에 입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선보일 기회도 모색할 예정이다. 지금은 온라인(무신사 스토어)에서만 판매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모더레이트의 옷을 직접 입어보고 만나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여유가 된다면 쇼룸을 꼭 열고 싶다.

Other-Worldly  아더월들리 디자이너 강예은, 강예지

2차 미션에서 2위를 차지한 디자이너 강예은, 강예지.

브랜드 아더월들리의 소개를 부탁한다.

강예지 브랜드명 그대로 ‘딴 세상의’, ‘비현실적인’이라는 뜻으로 20182월 론칭했다. 독특한 콘셉트, 위트 있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전개한다. 매 시즌, 다채로운 색감과 소재로 재미있는 스타일링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비현실적인 무드를 콘셉트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강예은 우리의 옷과 비주얼을 입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순간만큼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판타지를 주고 싶어서다. 그래서 소설이나 책, 음악에서 영감을 받을 때도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상상하곤 한다. 어느 날 막냇동생이 우리 둘이 만든 옷을 보고 ‘언니들 옷은 다른 세상 옷 같아’고 하더라. 이전의 옷들은 지금보다 더 아티스틱한 디자인이 많았다. 콘셉트는 유지하되 조금씩 조율해가고 있다.

무신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성장한 부분이 있나?

강예지 일을 진행할 때 전체적으로 속도감이 붙었다. 브랜드 자체적인 시즌 준비와 이번 프로젝트를 병행하다 보니 봄/여름 시즌과 가을/겨울 시즌을 동시에 기획해야 했다.

강예은 거의 1년 동안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라 매 순간 긴장감을 놓지 않고 일하다 보니 목표가 더욱 뚜렷해졌고, 여유를 가지고 작업하다 보니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였나?

강예지 준비하고 평가받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브랜드의 매력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컸고, 그게 중요했다. 2차 평가에서 두 착장 안에 모두 담으려니 압박감이 컸다. 새로우면서도 웨어러블한 디자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강예은 둘 다 예민한 편이라 압박감에 불면증이 생길 정도였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브랜드 초기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때는 막막한 마음만 가득했는데 지금은 설레는 마음도 크다.

디자이너 강예은, 강예지 그리고 아더 월들리의 제품을 착용한 모델 김다영, 현우석.

자매가 함께 일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강예지 서로 다른 취향을 잘 조화시켜서 보다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매 시즌 디자인을 고를 때마다 스스럼없이 비판하고, 그걸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건 가족이어서 가능한 게 아닐까.

강예은 24시간 붙어 있기 때문에 출퇴근의 개념 없이 수시로 같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좋은 점이다.

브랜드 운영에 있어 맡은 역할이 따로 있나?

강예은 디자인을 제외하고는 마케팅, 제작 등 모든 일을 함께하는 편이다. 디자인할 땐 서로 선호하는 스타일이 달라 하나의 콘셉트를 정하고, 각자 디자인한 후 결과물을 서로 보여주고 그 안에서 정리해 나간다. 이렇게 하니 더 다양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어서 좋다.

TOP 1에 선정되면 받게 되는 혜택 중 하나가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다. 어떤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싶나?

강예은 희망 사항이니 자유롭게 말하자면, 어릴 적부터 팬이었던 지드래곤과 해보고 싶다(웃음). 현아 역시 좋은 뮤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콘셉트든 카멜레온같이 소화해내는 모습이 늘 멋졌다.

강예지 BTS! 대학교 과제 할 때 BTS 노래를 들으면 밤샘도 거뜬했다.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

강예지 비주얼 디렉팅이다. 스토리가 있는 콘셉트를 만들고, 의상을 비롯해 비주얼에 관한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아더월들리를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넓은 분야로 나가는 꿈을 꾸고 있다.

강예은 단독 매장을 오픈하고 싶다. 최근까지 두타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했는데, 매장에서 고객을 직접 마주하며 듣는 의견이 많은 공부가 됐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사진으로 옷을 보여주는 것보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감성을 오롯이 담아낼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Nonmainstreamer  논메인스트리머 디자이너 이재승

2차 미션에서 3위를 차지한 디자이너 이재승.

‘디자이너를 위한 브랜드’라는 콘셉트가 독특하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친구들과 대학생 때 만든 ‘월플라워’라는 브랜드가 그 시작이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다 보니 주변에 디자인, 사진, 영상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우리를 위한 옷을 만들어보자’ 하며 무턱대고 시작했다. ‘월플라워’라는 이름은 사회 소수자를 다룬 영화 <월플라워>에서 따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외톨이, 소수’를 영국 구어체로 월플라워라고 한다. 주류와 비주류를 다룬 영화 내용도, 어감도 예뻐서 이름으로 정했다. 물론 브랜드는 1년 만에 끝나긴 했다(웃음). 하지만 그때 정리했던 개념과 메시지를 그대로 이어가고 싶었고, 보다 직관적인 ‘논메인스트리머’라는 단어를 브랜드명으로 했다.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허문다는 콘셉트도, 디자이너를 위한 옷이라는 콘셉트도 쉽진 않아 보인다. 디자이너들은 아주 까다로운 취향의 소유자들 아닌가. 애초에 주류와 비주류는 나뉘어 있지 않다. 조명을 누구에게 맞추느냐에 따라 주류가 비주류가 되고,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거니까. 브랜드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각자 고유한 취향을 가진 비주류가 곧 주류가 된다는 것이다. 모두의 취향을 충족시키기보다 내가 타깃으로 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일상에서 일할 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내 색깔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기 편한 옷을 만들다 보면 점차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셜 클럽을 운영한다고 들었다. 어떤 모임인가? ‘비주류 사교모임(Nonmainstreamer Social Club)’이라는 소셜 클럽이다. 20187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예술, 디자인을 비롯해 문화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 혹은 학생들이 모여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한다. 작년에는 뚝섬에 있는 서울 생각 마루에서 ‘청춘들의 가면’이라는 주제로 영상, 옷 등 각자 전공 분야를 살린 작품을 전시했다. 지금도 6가지 정도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일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소셜 클럽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하나? 사실 디자이너 브랜드는 기호 창업이다. 누군가 필요로 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만든 거다. 하지만 내 안에 내가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브랜드의 콘셉트가 ‘창작자들을 위한 옷’인 만큼 사람들과 부대끼고 체감해야 진짜 그들이 원하는 옷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많은 걸 얻는다. 작년 연말에 소셜 클럽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 모임에 함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논메인스트리머의 슈트를 착용한 모델 현우석과 선혜영 그리고 디자이너 이재승.

MNG TOP 3에 선정된 소감은 어떤가? 2020년의 시작을 많은 격려와 축복 속에서 시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걱정을 많이 하던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그게 가장 기뻤다. 사실 결과가 나온 뒤뿐만 아니라 투표 진행되는 동안에도 주변에서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았다. 온라인 투표 순위가 시작 첫날부터 계속 4위였다. 거래하는 업체 사장님들까지 ‘아직도 4위다. 어떡하냐’고 걱정해줄 정도였다. 순위가 바뀌지 않으니 나중에는 좀 체념하기도 했는데, 의외의 결과여서 기뻤다.

심사위원 평가에서 뒤집은 케이스다.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평을 얻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2차 심사위원 평가 때 들은 코멘트가 마음에 남을 정도로 큰 격려가 되었다. 모델 박성진 씨가 심사를 시작하기 전에 ‘소비자 입장에서 보겠다’고 한마디 남기고 옷을 보는데 처음엔 엄청 긴장이 되었다. 찬찬히 옷을 본 뒤 ‘이렇게 편하게 접할 수 있는 테일러링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이번 미션에서 만든 옷들이 세미 테일러링 옷들인데, 봉제 단계가 아닌 패턴을 뜰 때부터 테일러링을 잡고 시작했다. 피트나 실루엣에 신경을 많이 썼고, 입어보지 않고 행어에 걸어만 놨을 때도 입체감 있는 실루엣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부분을 정확히 캐치해줘서 감사했다.

MNG 2차 미션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뉴트로’라는 미션 콘셉트를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내 나름대로 뉴트로에 대한 해석을 워딩으로 정리했고, 브랜드 콘셉트와 연결 지었다. 1920년대와 1970년대를 모티프로 그 시대의 창작자들이 어떤 옷을 입었을지 고민했다. 지금처럼 스웨트셔츠 같은 옷이 거의 없었을 테니 정장을 입었을 거고, 그걸 현대 작업자들이 입는다면 어떤 식으로 입을까 상상했다. 소재 역시 신경을 많이 썼다. 촉감이 좋되 막 입고, 빨기 쉬운 소재를 썼다. 세탁기에 돌려도 형태가 잘 안 흐트러지는 소재다. 또 요즘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이슈가 큰 만큼 친환경적인 소재를 썼다. 하지만 친환경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고 싶진 않았다. 좋은 옷은 입어보고, 한 번만 빨아봐도 답이 나오니까. 착용자들이 직접 입어보고 그걸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여성복을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여자 모델에게도 당신의 옷을 입혀보니 마치 여성복으로 나온 슈트처럼 피트와 실루엣이 잘 어울리더라. 사실 여성복을 함께 하고 싶다. 지금 만든 남성복이 중성적인 느낌이라 사이즈만 좀 더 다양하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못하는 이유는 생산에 어려움이 있어서다.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이 만나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디지털 에디터
진정아
포토그래퍼
고원태
모델
김다영, 선혜영, 현우석
헤어
안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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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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