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패션 디자이너의 활약과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기대되는 희망찬 한 해의 시작. 서울패션위크를 무대로, 런던과 파리, 상하이라는 세계로, 아티스트와의 프레젠테이션으로, 크루와의 협업으로 이어진 자유롭고 맹렬한 움직임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예감케 한다. 더블유는 출발선에 선 신인부터 10년 차를 훌쩍 넘긴 패션 디자이너까지 열두 디자이너의 공간을 찾았다. 수행에 가까운 노력과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 단단한 자신감으로 뚜벅뚜벅 발을 내딛는 그들에게서 넓고 멀리 나아가는 서울 패션의 현주소를 들었다.
Kijun
2020 S/S 프레젠테이션을 서울패션위크 오프쇼로 진행한 기준은 한남동의 라이프스타일 숍을 레트로 콘셉트의 영화 세트장으로 변신시켰다. 영화 <첨밀밀>에서 비롯한 컬렉션은 홍콩 드림을 꿈꾸던 영화 주인공들의 시대성을 반영한 요소로가득했다.
더블유와의 인터뷰 이후 이 년이 되어간다. 그 때는 슈퍼 루키로 이름을 올렸는데, 그사이 달라진 점이 있는가? 많은 게 바뀌었다. 힘들게 캡슐 컬렉션을 만들었는데 자본이 조금 여유가 생기니 쇼룸도 두 번이나 옮기고. 좀 더 재미있는 디자인이 나왔다.
이번 프레젠테이션 구상이 독특했다.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려달라. 영화 <첨밀밀>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 시대를 상징하 는 다양한 요소를 섞었다. 장만옥이 입은 웨이트리스 복장, 추억이 깃든 유니폼, 주인공을 엮어준 사랑의 심벌인 등려군의 모습을 한 옷을 구성했다. 홍콩 드림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시대상도 반영했는데, 성공의 상징으로 꼽히는 꽃가게와 부동산 등을 설정하고 보석과 장신구, 꽃, 과감한 실루엣, 폰트 등을 넣어 화려한 웨딩 문화와 판타지를 재현했다.
왜 첨밀밀이었나? 너무 좋아하는 영화고 언제고 꼭 해보고 싶었다. 영화를 수시로 다시 보면서 스토리와 배경, 장면의 복장 등을 복기하곤 한다. 단편적인 이미지를 만들기보다 스핀 오프 버전의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좋아해 그런 것 같다.
영화 세트장 같기도 한 복고적인 소품과 마네킹, 공간 구성이 독특했다. 컬렉션을 도와주는 비주얼 디렉터와 구상했는데, 우리가 영감을 얻은 이미지를 콘셉트에 맞게 세팅해보고 싶었다. 재밌게 표현하고자 했는데 다들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줬다.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공간을 찾는 것. 강남은 제외하고, 프레스와 지인들, 바이어가 오기에 편하고, 쇼룸과 가깝고, 공간이 어느 정도 넓어야 했다. 처음 후보였던 중식당도 여러 제약으로 무산됐다.
대표 아이템은 무엇인가? 맥도날드에서 영감 받은 드레스. 홍콩 드림의 상징인 맥도날드 유니폼에서 보이는 룩과 스커트를 믹스한 착장.
독특한 컬러 조합이 인상적인데, 자신만의 방식이 있나? 대표 색상을 정해놓고 변화를 준다. 최대한 다양한 컬러를 쓰고, 일부러 딱 맞아떨어지는 너무 예쁜 조합은 피한다. 그게 나중에 오히려 촌스러워 보이더라.
디자인 원칙이 있다면? 실루엣이 과하거나 너무 어렵다면 색을 평범하게 가고, 기본적인 아이템엔 튀는 색을 입히는 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옷은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어야 멋진 듯한 느낌을 준다.
첫 컬렉션은 과한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시즌을 거듭할 수록 정제된 느낌을 받는다.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시즌 선보인 꽃무늬 미니드레스나 팬츠, 가죽 아우터와 같은 아이템은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까.
주변 반응은 어떤가? 여유가 생기니까 착장도 늘어나고 입기 좋은 디자인도 포함시킬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첫 시즌에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과한 요소가 많기도 했다. 콘셉트와 디자인에 집중해보자고 생각했다.
기준의 옷을 쉽게 입는 방법을 조언해줄 수 있나? 의도적으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작업한 룩북이나 캠페인 이미지에 너무 빠져 있는 듯도 하다. 강한 몇 개의 아이템이 전반적인 룩을 지배하는 것 같기도 하고.. 프레젠테이션 때 와서 입어보면 ‘어 입을 만한데?’ 이러면서 좋아한다. 그렇다고 지금의 강한 브랜드 이미지가 싫다는 건 아니다. 의도한 거고, 크게 바꿀 생각 은 없다.
보통 디자이너는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한다고 하지 않나. 내가 여자라면 뭘 입고 싶은지 생각한다. 클래식을 즐기면서 위트도 있고, 세련되면서 촌스러운 느낌도 있고, 여성스럽지만 대담하고 그런 극단적인 걸 즐길 줄 아는. 이 옷을 입고 어디든 갈 수 있는, 못 갈 데가 없는 여자가 입는 옷.
다음 시즌 구상도 나왔나?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지만 지금 에이전시가 런던이다. 런던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여유가 되면 한국에서도 하고 싶고. 컬렉션 구성으로는 초심으로 돌아가 더 과감한 액세서리나 더 콘셉추얼한 작업을 해볼까도 싶다.
룩북 작업이 늘 인상적이다. 이번 시즌은 외국 같기도 하고, 동양적인 색채가 강하다. 한강 반포지구에서 찍은 건데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 친구가 소개해준 중국 모델, 포토그래퍼와 작업했다. 이번 시즌 콘셉트를 비주얼 작업에도 그대로 가져왔다.
이미지 작업의 시작은 어떻게 출발하는가? 컬렉션 디자인을 하기 전에 비주얼 작업을 먼저 구상하기도 한다. 요즘 흥미가 있는 관심사에서 출발하는데,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꽃이 관심사라면 꽃에 관련된 영화를 보고, 아트 서적을 보고, 스토리가 될 만한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식이다.
국내에서 기준의 옷은 어디서 살 수 있나? 아직까지 프리오더 시즌에만 주문을 받는다.
가격대는 어떻게 되나? 드레스는 60만원대 , 재킷 1백만원대 정도.
해외 문의가 많이 올 것 같은데, 온라인 판매 계획은 없나? 온라인을 통해선 국내 배송으로 굿즈만 판매하고 있다. 오프닝 세레모니와 같은 몇 군데 해외 셀렉트 숍에 들어가 있다.
그러고 보니 미니 백이 중고 장터에서 거래될 만큼 인기가 많다.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은 굿즈를 계속 개발하려고 한다. 키링이나 티셔츠, 모자 등등 콘텐츠를 담은 굿즈를 만드는 작업이 재밌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 스토리를 만들고 콘텐츠를 만드는 걸 좋아해 필름 영상 작업을 기획해보고 싶다. 아카이브 쌓고 싶으니 쇼도 하고 싶고… 곧 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계획은? 남자도 함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볼까.
Bourie
2020 S/S 컬렉션을 ‘인지 부조화 이론’의 콘셉트로 선보인 부리는 2014년부터 서울 컬렉션을 지키며 쇼를 진행했다. 패턴을 직접 뜨는 디자이너 브랜드로 정통 테일러드 기반을 꾸준히 이어간다.
쇼를 한참 준비 중인 와중에 뷰티 패션위크 화보로 더블유와 처음 만났다. 최근 뭐 하고 지냈나? 해외 주문 정리하고 마무리가 되니까 좀 낫긴 하다. F/W 준비 기간이 한 달이 짧아 바로 돌입해야 해서 여유가 아주 많지는 않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레코드와 협업도 바로 있어 패턴 뜨고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부리의 뜻이 무엇인가? 부유할 부(富)와 다스릴 리(理)의 조합어다.
그렇게 이름 지은 이유가 있나? 옷을 만드는 브랜드로서, 옷을 표현해내는 공기에 부족함 없이 부유하고, 옷을 다루는 방식이 풍부하고, 허튼 모양새 없는 브랜드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브랜드를 알리게 된 계기가 있나? GN쇼를 처음 시작할 때 배두나씨가 오면서 홍보 효과가 컸다. ‘아무도 모르는 브랜드에 배두나가 왔다고?’ 하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좋은 운이 이어졌다. 헤드 쇼룸이 뭔지, 해외 수출 상담회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움을 받았고, 해외 세일즈하는 방법, 필요한 자료, 컬렉션 구성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신 쇼룸 대표님도 운 좋게 만났다.
이번 2020 S/S 시즌에 대해 얘기해보자. ‘인지 부조화 이론’에서 출발했다. 내 안에 있는 두 개의 자아가 어느 때는 그 이상의 자아끼리 충돌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살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옷으로 표현했다.
무거운 개념으로 느껴지는데. 무겁지 않아서 콘셉트로 잡았다. 누구나 겪어왔고 겪는 개념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쇼의 반응은 어땠나. 더블유 디지털 에디터가 좋았던 쇼로 부리를 꼽았다. 음악도 그렇고 단상을 높게 올린 무대 연출까지 멋졌다고. 쇼를 통틀어 30분이라고 하면 그동안 650 명을 대접하는 시간이다. 옷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요소도 신경을 많이 쓰는데,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온전히 부리의 모든 요소를 다 보여주고 싶었다.
테마를 옷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궁금하다. 이번 시즌 ‘Double Identity Dress’. ‘Triple Identity Dress’, ‘4– Identity Dress’라는 이름이 붙은 드레스 라인이 있다. 각기 다른 성격의 디테일과 패브릭이 부리의 시그너처 패턴 메이킹 과정을 통해 하나의 아이템 안에 담긴 드레스다. 그중 3개의 아이덴티티 드레스는, ‘바로 서 있기를 원하는 나’, ‘비틀어 서 있기를 원하는 나’, ‘몸을 접어 어깨만 보여주고 싶은 나’인데 각각의 아이덴티티가 블랙 컬러 안에서 레이스 원단, 자수 원단, 묵직한 폴리에스테르 원단을 사용하여 패턴화된 드레스로 결합해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반응이 제일 좋은 건 어떤 아이템인가? 코트 재킷은 고객이 항상 믿고 기대하는 부분이다. 중요한 세부 장식이 뭔지 알고 구매하는 것.
안감을 처리하는 방식도 그렇고, 세부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그냥 만드는 옷이 정말 하나도 없다. 그래서 공장에서 거절도 많이 당한다. 한 시즌만 하고 안 한다는 곳도 많다. 우리에겐 저렴한 옷도 있고 비싼 옷도 있지만 비싼 옷에는 비싼 이유가 있다. 우리는 옷을 파는 게 아니라 브랜드를 판다.
시즌마다 중요한 디테일을 변형해서 담는가? 형태를 유지하고 소재와 디테일을 바꿔가면서 선보이는 게 대표적으로 펭귄 재킷이다. 그리고 최근 팬츠 라인이 뜨고 있다. 팬츠가 어려운 게 디자이너 브랜드다 보니까 보통 눈에 띄는 아이템을 사지 팬츠 구매는 잘 안 한다. 와이드 팬츠와 배기 팬츠는 처음엔 정말 하나도 안 팔렸는데 다음 시즌에는 입질이 오고 세 번째는 구매를 하더라. 실루엣 움직이는 거 보면서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는 걸 느끼는 것 같다.
귀여운 형태나 위트를 좋아하는가? 처음에는 굉장히 진지한 옷만 만들었다. 그런 옷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오히려 가방 라인을 할 때 판매가 잘 되었는데 그때 찍은 영상을 보고 쇼룸 대표님께서 ‘네 안에 유머가 있어’라는 말을 해주셨다. 내세울 필요는 없는데 네 안에 그런 요소가 있다면 한 번쯤은 넣고, 그래야 브랜드가 그 안에서 숨을 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시즌 키티 컬렉션이 반응이 좋았다. 접근하기 쉬운 티셔츠부터 가격대 낮은 아이템을 선보여서 그런가? 심오하거나 어두운 부분이 있었는데 키티가 들어오면서 우리식대로 해석했다는 반응을 얻었다. 컬러와 프린트를 다양하게 써도 된다는 자신감도 더불어.
옷이 비싸다는 얘기가 많나? 우리가 한국 브랜드고, 유명 브랜드도 아니고 K팝 아이돌 브랜드도 아니지만 자신감이 있다. 패션 하우스의 같은 원단을 쓰는 옷보다 우리가 저렴하다. 싼 공장에서 대충 나오는 게 아니라 장인이 제작하고 있다. 옷을 어디 내놨을 때 부끄럽지 않은 이유다.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가? 패턴을 직접 뜬다. 아마 지금까지 몇천 개의 패턴이 나오지 않았을까. 옷을 하는 이유가 패턴이 재밌기도 해서다. 스케치를 보고 구현할 수 있는 모델리스트 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만든 디자인은 우리가 가장 잘 알지 않나. 그래서 일관성 있는 디자인이 나오는 것 같다. 테일러드 베이스를 계속해서 잘 가져가는 중이다.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 잘 아는가? 처음에 주목받기가 너무 어렵다. 인지도 없는 브랜드를 이 가격에 주고 사는 걸 납득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어느 지점까지 끌고 나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선배들이 버티는 값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시점이 온 것 같다.
그동안 판매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온라인은 리리스토어, 트렁크 쇼, 오프라인은 쇼룸에서.
고객들이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나? 처음에는 고객이 다섯 분 정도 있었는데, 다섯 분이 새로운 분을 소개하고 하면서 전체 고객의 90%가 됐다. 내부적으로 브랜드 충성도가 매우 높아서 유지가 가능했던 것 같다. 모든 옷이 있고 다 고를 수 있는 프리오더는 우리에게 가장 큰 행사다. 미리 내년 옷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소규모 부티크처럼 운영했다. 힘의 원천이 되는 것 같다.
타협하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이 있나? 입소문으로 알려진 것처럼 입소문으로 안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경계한다.
부리를 입는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 부리를 아는 여성, 때로는 남성.
SNS는 물론이고 패션계는 너무 시끄럽긴 하다. 반대로 굉장히 조용하게 브랜드를 끌어가고 있는 느낌인데. 너무 중요하다는 걸 브랜드 시작할 때부터 알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브랜드 인지도나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리라는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 가격대로 구매하기는 어렵다. 이 브랜드가 이런 옷을 만들고 믿고 주문해도 되겠다는 신뢰가 쌓였을 때 디지털을 활용해볼 예정이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 판매 영역을 벗어나 깊은 연구 과정을 통해 옷과 어우러지는 다양한 영역과 협업 작업을 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식재료 연구, 패브릭 연구, 건축 연구, 소리 연구, 식물 연구 등과 같은.
어떤 브랜드로 남기를 원하나? ‘부리(Bourie)스러운’ 브랜드로 남고 싶다.
Minjukim
2019년 12월 말부터 글로벌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공개되는 프로젝트로 2020 S/S 시즌 쇼를 포기하고 프레젠테이션으로 컬렉션을 선보인 민주킴. 멕시코의 색과 건축에서 영감을 얻은 실루엣과 패턴으로 성숙해진 컬렉션을 구성했다.
이번 프레젠테이션 반응이 어땠나. 많은 분이 찾아주셨고, 공간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충무로에 있는 카페 분카샤에서 진행했는데, 시간대 별로 나눠서 고객과 프레스를 초청해 커피와 술을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시즌 첫 컬렉션을 했는데 프레젠테이션으로 선보여 아쉬움은 없는지. 2019년 12월말부터 공개될 프로젝트 때문에 방식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비밀이다. 기대해달라.
옷뿐 아니라 주얼리 컬렉션도 눈에 띄었다. 드와떼와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옷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존재감 있는 액세서리가 필요했는데, 처음부터 디렉팅하기는 무리였다. 드와떼의 여성스럽고 섬세한 디자인을 더해 시너지를 내고 싶었다. 그 덕에 더 성숙하고 완성도 높은 컬렉션이 나온 것 같다.
이번 시즌 콘셉트를 알려달라. 멕시코어로 파란 집을 의미하는 ‘La Casa Azul’이 이번 시즌 타이틀이다. 멕시코 건축물의 아름다운 색과 건축이 영감의 시작이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낮에는 홈웨어를 입고 즐기는 티파티, 밤에는 파란 별장에서 벌이는 와인 파티의 장면을 상상했다. 그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을지 그려보며.
어떤 점에 중점을 뒀나? 우리의 강점은 자체 원단 개발에 있다. 프린트와 소재를 개발하고, 자카드를 많이 썼다. 성숙해졌다는 반응이 많은데, 오버사이즈에서 벗어나 허리를 잘록하게 만든 코르셋 형태나 몸의 실루엣을 강조해 여성미를 부각했다. 바이어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가시넝쿨, 심장, 손 등 프린트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전형적으로 예쁘지 않은,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프린트를 생각했다. 둔탁해지고, 커지고, 그 안에 재미를 담으려고 했다.
이번 컬렉션을 보고 입기 쉬운 옷이 많아졌다는 반응이 많더라. 앞서 얘기한 프로젝트 건으로 공개하지 못한 쇼피스들이 있다.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
이유를 몰랐을 때는 판매에 더 집중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다들 잘 모르지만 나는 늘 판매에 신경 쓴다(웃음).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은 옷이다. 유럽이나 다른 해외 시장에 나가면 더 과감한 옷도 많은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웨어러블’이라는 옷 이 색상부터 형태까지 무척 규격화된 느낌이다. 디자인이 평범한데 컬러만 좀 넣어도 그렇게 생각하더라.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 옷을 만들 때 대중성과 트렌드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입기 쉬운 옷들이 오히려 잘 안 팔린다. 꾸준히 구매하는 고객은 오히려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강하게 들어 있는 아이템을 많이 산다. 물론 옷은 생활 속에 들어가야 한다. 불편하면 입지 않으니까. 쇼피스와 실용성, 그리 고 그 중간 지점을 30:30:30 비율로 맞춘다.
당신이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하는가? 모든 디자이너가 그렇지 않을까. 언젠가 자꾸 왜 소녀스럽고 공주 같기도 한 이런 디자인이 나오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못 입어서 갖고 싶은 걸 만드나 싶고. 원하는 걸 만들고 싶을 뿐이다.
어떤 여자들이 민주킴을 입을까? 옷을 입으면 재밌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중독되는 것 같다고도 한다(웃음). 처음에는 검정에 형태감이 있는 디자인으로 시작했다면 다음엔 색을 더해보고, 그다음엔 프린트까지 더하는 식으로 시도해본다.
시즌마다 새롭게 나오는 일러스트와 그래픽 작업이 궁금했다. 홈페이지에서 보니 아카이브가 꽤 쌓였더라. 소재를 개발하고 프린트를 직접 만드는 것 외에 그림과 일러스트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공부한 시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술을 정말 좋아하는데 패션을 해야 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민했다. 당시 교수님이셨던 디자이너 월터 반 베이렌동크가 두 가지를 자연스럽게 섞는 방식에 대해 알려주셨다. 매 시즌 스트레스를 받지만 하고 나면 뿌듯하고. 이제 안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 생산 과정과 실현 단계에서의 커뮤니케이션.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하거나 쇼를 구상하는 건 힘들지만 즐거운 부분이다. 다만 심플한 디자인에도 항상 판타지 요소가 있으니까 그 부분을 구현해달라고 소통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최대한 가깝게 만들기 위한 시행착오가 잦달까.
쇼가 끝나고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나? 글쎄,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볼 걸 하는 미련?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데 멈춰야 할 때, 원단을 많이 개발해서 다 대입해보고 싶을 때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 계획은 무엇인가? (한참 뜸을 들이다) 지금 하는 걸 또 하는 거. 이게 제일 힘들지 않나. 디자이너가 한 컬렉션을 더 한다는 건, 돈을 많이 번다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 상황을 꾸준히 운용한다는 자체가 목표다. 글로벌 디자이너가 되는 것과 같은 근사한 답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Lee y. Lee y.
프레젠테이션 형식을 통해 2020 S/S 컬렉션을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마요르카 휴양지에서 여름을 보내는 아름다운 여자를 상상했다는 그녀는 신사동에 쇼룸을 오픈하면서 새해에는 파리와 국내를 오가는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자신을 소개해달라. 한섬 시스템 디자인실에서 4년 정도 근무하고 다시 공부하고 싶어 파리로 갔다. 스튜디오 베르소를 졸업하고 더로우에서 인턴을 했다.
브랜드 이름은 어떻게 읽는가? ‘리리’라고 발음한다. 불어로 Y는 묵음이다.
왜 그렇게 이름 지었나? 평소에 먹물로 그림을 그리거나 터치하는 걸 좋아하는데, 붓으로 이름을 다양한 방식으로 써보다가 알파벳 Y를 소문자로 쓴 게 예쁘더라. 반복해서 완성했다.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는? 처음엔 한국에 와서 취업하려고 했다. 큐레이터 친구의 소개로 벨기에의 설치미술 작가와 갤러리를 빌려서 졸업 전시를 했다. 그 전시를 본 파리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와서 판매를 시작해보자고 했고, 2017 F/W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지금까지 몇 시즌째 선보였나? 이제 다섯 시즌째다. 2017년 10월부터니까. 처음에는 10피스만 만들어 캡슐 컬렉션으로 시작했다.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은? 재킷과 바지. 공을 많이 들여 만든다.
국내에서도 판매했나? 지인이나 주변 분을 위주로 프리오더만 진행하다 이번에 처음으로 프레스와 스타일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얼마 전 신사동에 쇼룸을 계약했는데, 오프라인 매장 역할을 하면서 고객에게 차와 술을 대접하는 만남의 장소다.
파리 생활은 접고 한국으로 들어오겠다는 의미인가? 국적 없이 사는 게 꿈이다. 생산을 서울에서 하니까 이곳에 거점을 두고 파리를 오갈 예정이다. 3~4개월씩 말이다.
프레젠테이션 공간이 특별해 보였다. 원단을 구입하는 사무실이다. 여기에 좋은 원단이 많은데, 옷을 보고 다른 원단으로 하고 싶은 분에게 현장에서 스와치를 꺼내 추천하기도 했다.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실루엣과 소재. 결국 소재가 좋거나 실루엣이 좋은 옷을 오래 입게 되더라. 맞춤 제작을 하는 원단으로 기성복을 선보인다.
소재는 어디서 구하는가? 덕데일이라는 영국의 원단 회사에 서 주로 받고, 대부분 해외 원단이다.
가격대는 어떻게 되는가? S/S 기준 드레스는 70만~80만원대. 재킷과 아우터는 1백20만원대 정도.
그동안 판매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파리 프레젠테이션 기간에 바이어들의 프리오더로 이루어졌다. 파리 에이전시 때문에 상하이 판매가 괜찮게 이뤄진다.
이번 시즌 테마는 무엇인가? 일단 작정하고 ‘여름’스럽게 만들고 싶었다. 스페인의 섬인 마요르카에서 저녁을 보내는 아름다운 여자를 상상했다. 휴양지이지만 격식 있는 차림을 한 우아한 여자를 표현하고자 특별한 위빙 원단을 활용했다. 요트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의 베스트와 벨트도 중요한 코드로 작용한다.
이번 시즌 키 룩은 무엇인가? 남성복에서 쓰는 봉제 방법인 개싱을 여성복에 적용해 만든 드레스. 실제로 접착 개싱이 실루엣을 살리는 역할을 했다. 직조가 잘 맞게 봉제되어 무척 마음에 든다.
소재가 독특하다. 트위드 같은 것이 니트 같기도 하고. 실제 다다미 만들 때 쓰는 소재로 원단을 만들었다.
꽃을 아플리케한 망사 톱은 제작하기 힘들지 않았나? 자수 원단은 텐션이 있고, 배색 원단은 빳빳한 것처럼 물성이 달라 봉제 하는 데 고민이 필요했다. 끝처리 부분이 많이 힘들었다.
소품 활용도 눈에 띈다. 디자이너가 제시하는 콘셉트를 풍부하게 표현하는 방법에는 액세서리와 소품이 중요하다. 실제로 이번 시즌 룩북 시안이 된 명화에서도 모자나 부채, 귀고리, 장갑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룩북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렘브란트처럼 빛을 잘 쓰는 명화에서 영감을 얻어 매번 작업을 함께하는 포토그래퍼, 프랑수아 키야크와 룩북에 대입시켰다. 매 시즌 바뀌는 룩북이지만 하나의 명화처럼 오래 남겨지면 좋을 것 같다는 소망에서다. 촬영 시안도 명화로만 구성했다. 소품도 시대상을 반영해 준비했고, 명화 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질감도 여러 번 수정을 거쳤다.
컬렉션의 출발은 보통 어떻게 시작되는가? 여행이나 영화. 여행하면서 모은 물건이나 액세서리, 패브릭 같은 것.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건? 좋은 소재를 볼 줄 아는 눈? 여성이 재킷을 입었을 때 멋진 무드를 낼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는? 드리스 반 노튼, 마르지엘라, 이브 생로랑, 피에르 가르뎅. 특히 아르누보식으로 꾸민 피에르 가르뎅의 파리 아틀리에는 먼 훗날 꿈꾸는 나의 쇼룸이기 도 하다.
서울 컬렉션 계획은 없나? 주변에서 추천을 많이 해줘서 고민 중이다. 하더라도 살롱쇼 형식으로 하고 싶은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준비하고 있는 흥미로운 일이 있나? 지인들 요청으로 남성복도 해볼까 생각 중이다. 아, 내가 암호나 추리에 관심이 많아 SNS를 통해 공개 이벤트도 열 계획이다. 퀴즈를 내서 정답 맞히면 선물도 주고 말이다. 반응이 없으려나.
Kimmy J
프레젠테이션과 쇼라는 형식과 시즌을 버리고 크루, 뮤지션, 아티스트와 협업으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기 시작한 제니킴. 2020 S/S 컬렉션은 뮤지션 ‘설’을 위한 ‘드라이플라워’ 캡슐 컬렉션을 비롯해 안무가 미나명과 만든 댄스 의상 등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오랜만이다. 더블유와는 크루 화보 촬영으로 만나고 거의 4년이 되어간다. 지난 시즌 쇼를 건너뛰었다. 대신 다양한 아티스트, 뱅앤올룹슨과 협업해 새로운 방식의 프라이빗 프레젠테이션으로 옷을 선보였다.
2020 S/S 서울패션위크 기간에도 쇼나 프레젠테이션 소식이 없었는데. 지금까지 해온 형식의 틀을 완전히 바꿔봤다. 컬래버레이션과 밴드, 춤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겠다. 먼저 ‘설 (Surl)’이라는 신인 밴드의 타이틀곡, ‘드라이플라워’ 발표 시기에 맞춰 ‘Dry Flower’라는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고,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미나명 안무가와 미나명 X 키미 제이 협업 컬렉션 ‘미나 캡슐’ 컬렉션 등 댄서 옷을 만드는 것으로 새로운 시즌을 전개했다. 액세서리 브랜드 오드 콜레트(ODDCOLLETE)와 지난 에어팟 케이스에 이은 두 번째 컬렉션도 준비했다.
유튜브를 통해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영상을 봤다. 언제부터 춤에 빠졌나? 대학생 때 댄스 동아리를 할 정도로 춤을 오래 했다. 브랜드를 하면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는데, 2019년에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에 등록했다.
삶의 변화가 있나? 에너지가 좋다. 확실히 심장을 바운스시키는 행동을 해야지 체력도 생기고 우울감도 없어지더라. 복잡한 일도 정리가 된다. 댄스를 시작하면서 없던 콘텐츠가 생겼는데,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관하는 K뷰티 디자이너 영상을 ‘워크 라이프 밸런스’ 영상 형식으로 제작해 딩고를 통해 선보였다.
그동안 컬렉션을 들여다보면 춤출 때 입을 만한 옷이 많긴 하더라. 맞다. 그래서 이번 시즌부터 키미제이의 콘셉트를 오쥐(Original Gang) 스타일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에서 만난 안무가 미나명 선생님이 완전 힙합 걸 스타일이다. 춤에 관한 컬렉션을 하고 싶다고 상의했는데, 흔쾌히 관심을 가져주셔서 시작할 수 있었다. 춤출 때 ‘이런 옷 입고 싶다’는 간단한 생각은 조거 팬츠, 윈드 브레이커, 고어텍스 팬츠, 브라톱 등으로 구현됐다.
가격대는 어떤가? 봄에나 나올 것 같은데 미나 컬렉션의 워크웨어는 10만원대, 드라이플라워 컬렉션은 10만원대부터 바이커 재킷은 90만원대까지 범위가 넓다.
컬렉션을 구상할 때와 다른 점이 있나? 2019 S/S 컬렉션 끝나고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관심사를 관찰하고 추려내 시즌마다 컬렉션을 전개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같은 맥락이다. 다만 아티스트와 뮤지션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어떤 점이 가장 좋은가? 제품만 나오는 게 아니라 영상 제작이나 스토리로 풀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 새로운 아티스트와 콘텐츠를 제작해서 선보이는 이보(EVAW)를 통해 라이브 클립과 인터뷰 등을 선보였다. 또 크루로 움직이니까 내 사람을 끌고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앞으로 희망적으로 보이는 내용이 많아 확신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부분도 넓어졌다.
오드 콜레트와의 협업 프로젝트도 소개해달라. 지난 시즌 에어팟 케이스를 은으로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두 번째 시리즈로 나이키 에어포스 1을 위한 링 형태의 슈 레이스를 만들었다.
쇼를 하지 않아 아쉬운 점이 있나?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서울 컬렉션에 관심이 점차 없어진다고 느꼈다. 어떤 디자이너가 큰 상을 받아도, 어디에 입점해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다. 쇼에 매달리는 게 의미가 있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내 나름 정성을 들여 준비한 부분이 그다지 어필하지 못할 때 노선을 좀 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손이 착착 붙고, 할 만한 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이랄까. 사실 5년 전쯤에는 서울컬렉션과 서울패션위크가 5대 패션위크로 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쇼를 할지 말지 고민한다는 생각이 없어야 할 것 같다.
회사가 힘들었던 시기는 없었나? 한참 홀세일 매출 상승세가 정체된 적이 있다. 원래 중국 쪽 사입 규모가 컸는데 콘텐츠를 국내 쪽으로도 돌린 이유다. 자사 온라인 몰을 강화하고 시그너처 프린트를 담은 패딩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홀치기나 날염 프린트, 짧은 길이, 타이트한 실루엣 등은 해외에서 더 반응이 좋을 것 같다. 뉴욕을 오가며 V파일즈도 거래를 해봤고, 테크 웨어를 하는 에러 NYC와도 색깔 맞는 브랜드끼리 재밌는 걸 해보자고 제안도 받았다. 이번 첫 시도인 캡슐 컬렉션이 조금 안정이 되면 다음부터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새해 계획을 알려달라. 주목을 끄는 콘텐츠를 계속 생산할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고 싶다. 유튜브도 패션 관련된 섭외가 들어오는데, 래퍼 나다와 만든 콘텐츠를 시작으로 유빈과도 함께할 방향에 대해서 얘기 중이다.
Munn
2020 S/S 런던 맨즈 패션위크에서 남성복을, 서울패션위크 기간에는 여성복을 선보인 한현민은 도전하고 싶은 개념을 정한 다음 컬렉션을 구상하며 다르게 생각 하기에 집중한다. 가방은 멀버리, 헤드피스는 신저, 신발은 율이에와의 협업으로 쇼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2016년 더블유에서 주목할 만한 신인 디자이너로 소개한 적이 있다. 올 상반기 런던 패션위크 컬렉션으로 만났고. 3년 사이 국내 디자이너 인터뷰로 아마 가장 많이 등장했을 것 같다. 항상 이슈가 있고, 쉼 없이 활동하는 듯하다. 협업이나 수상, 해외 진출 등 많은 매체에서 관심을 가지고 다뤄주셨다.
협업 컬렉션이 정말 많은 브랜드다. 이번 시즌엔 멀버리와 진행했는데, 어떻게 이루어졌나? 6월 런던 맨즈 컬렉션 때 멀버리의 CEO가 쇼에 참석했는데, 쇼를 좋게 보셨는지 협업 제의를 했다. 가방은 멀버리, 개화기 무드의 헤드피스는 신저, 신발은 율이에와 진행했다.
협업이 재미있는 지점은 무엇인가? 뮌은 원래 하고 싶었던 개념적인 것에 집중하고 진지한 옷을 만들려고 한다면 협업은 다른 방식의 접근을 구현해준다. 예를 들어 빈폴과 할 때는 귀엽게, 리사이클 브랜드 레코드와는 해체주의적으로 시니컬하게, 기아자동차와는 또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이 즐겁다.
이번 시즌에 여성복으로 90% 이상 컬렉션을 구상했다. 남성복에서 전환한 이유가 있나? 멋있는 이유는 아니고, 지난 6월 남성 시즌에 런던에서 쇼를 했는데 그때 많이 다뤄져서 서울에서 다시 쇼를 보여주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남성복 바이어들은 이미 6월에 바잉하고 예산이 없는 상태에서 오니까 판매도 신경 쓰였다. 여성복 바잉 시즌이 상대적으로 뒤라 기대해볼 만했다.
그래서 좀 성과가 있었나? 메일로도 연락이 오고, 바잉도 많이 이루어져서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있다.
이번 시즌 집중한 부분에 대해 들려달라. 옷에 한국적인 모티프를 주입하는 것. 한복 소재로 많이 사용하는 오간자나 자카드 실크를 접목했다. 한국 전통 매듭 방식으로 엮어 주사호스로 작업한 튜닉도 선보였다. 복주머니를 연상시키는 드레이핑은 6·25 때 피난민 사진, 짐, 새참이 나오는 농촌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
옷을 만드는 기법이 독특하고 복잡하기도 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이렇게 구현하는 방식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니트를 예로 들면 양털 말고 다른 거로 짤 수는 없을까, 실처럼 길고 텐션이 있다면 엮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한국 매듭과 노리개 등으로 발전시켜서 양식 보트넥 튜닉을 만들었다. 따뜻하고 복고스러운 매듭이 퓨처리즘적으로 구현된 게 흥미로웠다. 볼륨감 있는 패딩은 보통 구스다운, 솜 등으로 작업하는데, 충전재를 보이도록 패딩 점퍼를 만들어보다가 꽃 패딩도 나왔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디자인할 때 영감을 얻거나, 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나? 여성복은 더 자유롭게 하려고 한다. 소재를 다양하게 쓸 수 있으니까. 터프한 소재를 써도 멋있고. 하늘거리는 소재도 멋있고. 크게 입어도 멋있고 붙게 입어도 멋있는데 핏이 애매하면 엉성해 보인다. 입어서 예쁜 옷을 만들기보다는 남성복과 마찬가지로 개념적인 코드를 넣는다. 패턴과 봉제가 어렵다는 걸 아는 패션 전공자나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컬렉션을 구상할 때 트렌드와 대중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나? 도전하고 싶은 개념을 정해놓고 컬렉션을 구상한다. 안 팔려도 지금은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판타스틱한 쇼를 보여주면 다른 협업이 들어오고 그게 브랜드에 더 큰 자본과 기회가 된다. 조금 더 팔리는 옷을 만드는 거보다 내 디자인을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방식이 더 호응을 얻는 것 같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든다고 하는데, 당신도 그런가? 뮌은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하는 브랜드가 아니다. 개념적인 옷을 만든다. 30착장을 할 거라고 정해두고, 착장마다 패턴의 정석을 벗어나 다른 방식, 실험 정신을 넣어서 작업한다. 여성복도 같은 방식이다. 개념적인 걸 좋아해서 그거를 중시하고.
가방과 모자에 붙어 있는 라벨 ‘M082’는 무엇을 뜻하는가? 국가번호(+82)를 더해 서울을 베이스로 한 프로젝트 레이블이라는 의미다. 패션에 한정되지 않고 영상, 음악, 설치 미술 등 다양한 방식으로도 선보일 수 있고, 뮌과는 다르게 편하고 쉽게 입는 저지류와 액세서리 위주로 구성했다.
다음 시즌엔 어디서 쇼를 볼 수 있을까. 1월에 런던에서 남성 컬렉션을 할 계획이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서울에서 여성복으로 컬렉션을 한 번 더 하는 게 목표다. 글로벌한 브랜드로 발돋움하기 위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꽂혀 있는 것은? 넥타이. 사디(Sadi) 재학 시절 빈티지 넥타이로 작업해본 적이 있다. 넥타이를 옷에 조합하거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응용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재생 섬유를 활용한 리사이클 테마로 다음 시즌을 만들려고 한다.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고민인가? 몇 년 전부터 인터뷰할 때마다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받았다. 그때마다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처럼 석유로 만든 옷이라도 10년을 쭉 입을 수 있는 옷을 사는 게 환경 보호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그런 대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전개하는 팬츠와 재킷 등에 장식하는 셀비지는 원단의 정보를 표기하기도 하지만 제로 웨이스트와도 관련이 있다. 환경과 동물 애호는 전 세계적인 화두라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브랜드의 또 다른 이름인 ‘낯설게 하기’에 대한 설명이 듣고 싶다. ‘낯설게 하기’란 문학 사조의 하나다. 내 마음은 호수요와 같은. 이 표현을 패션에 가져오고 싶었다. 패턴을 뜨고, 서양 복식에서 배우는 봉제 방법 순서를 바꾸고 뒤집어보는 작업이 옷을 새롭고 다르게 보이게 한다. 패턴으로 얘기를 하면 2D 패턴과 서양 패턴을 섞어서 라펠을 한판으로 연결 되게 만들어보는 식이다. 소재를 개발해서 특이하게 써보려고 하고, 보지 못한 옷에 도전하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목표가 있다면. 곧 선보일 뉴에라와 칼 라거펠트와 진행 중인 협업을 잘 마무리하는 것. LVMH 어워드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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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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