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미래주의가 섞인 조각 작품을 선보이는 예술가 왕게치 무투(Wangechi Mutu),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얼굴을 뒤바꾸다.
외계인들이 몰려와 서구 문명의 요람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내려앉았다. 착륙 날짜는 2019년 9월 9일. 높이 198cm에서 213cm를 오가는 4개의 청동 여인상은 아프리카 여왕의 모습인 동시에 사이보그의 형상으로, 100년이 넘게 비어 있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파사드에 새로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 4개의 조각품은 케냐 태생의 미술가 왕게치 무투(Wangechi Mutu)의 연작 ‘The Seated’다. 역사와 정치, 구원의 통렬한 내러티브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작품들은 유물 약탈과 더불어 유럽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축성된 유서 깊은 뮤지엄을 완전히 뒤집었다.
2018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취임한 호주 출신의 활기찬 박물관장 막스 홀라인(Max Hollein)은 이렇게 말했다. “왕게치 무트의 파사드 커미션 전시인 <새로운 것, 그것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는 동시대 미술을 불러들이는 동시에 예전보다 더 과감하고 쾌활하게 뮤지엄 소장품을 다루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물 파사드에 놓인 조각상은 건물의 수호신과 같은 성격을 지니는데, 이번에 선보이는 조각상들은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종류의 수호신의 모습일 겁니다.” 남성으로 뒤덮인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과거 역사를 감안하면 왕게치 무투를 선정한 데에는 ‘여성의 힘’이라는 이슈가 작동되기도 했다. 이번 파사드 프로젝트에 왕게치 무투를 제안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큐레이터 켈리 바움(Kelly Baum)에 따르면 왕게치 무투는 이번 프로젝트에 더없이 어울리는 작가였다. “무투는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떠오르는 다양한 미술사의 갈래를 다루는 귀한 작가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위해 작품을 공개하기 몇 달 전, 무투는 따뜻한 차와 함께 포도를 먹으며 브루클린 베드퍼드-스타이버선트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제작하고 있는 수호신상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그날 그리스 건축의 여인상 기둥에서 영감 받은 인물상을 스케치북에 반복해서 그리던 중이었다. 이 여인들은 다양한 고전 예술에 등장하는데, 어떤 이는 아크로폴리스의 신전 지붕을 떠받치고, 어떤 이는 아프리카 군주의 지휘봉이나 의자에서 발견된다. “이 여인들에게 어떻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생각하던 중이었죠. 물론 그들은 강력한 존재이기도 했어요. 왕을 떠받들고 서 있거나 군주의 지휘봉을 들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그들은 남자들이 만든 것 아래에서 영원히 애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죠. 그럼 그들을 거기에서 자유롭게 풀어주지, 뭐.” 무투가 만든 여인상 기둥은 무릎을 굽히거나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제 생각에 그들은 우리에게 뭔가 전하고 싶은 것이 있어 인간의 형태를 띠고 이곳에 당도했다고 봐요.” 워싱턴주 왈라왈라 카운티에 자리한 주물 제작소에서 만든 조각상들은 관람자에게 거울을 내밀고 있는 듯한 형상을 띤다. 이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멍청한 인간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전통과 미래의 매시업은 왕게치 무투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보이는 주제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 쿠퍼 유니언, 예일 대학교 미술 석사 과정을 밟는 동안, 작가는 아프리카 여성 인물상과 자연, 동물, 깃털, 비즈 소재, 수채화를 섞은 강렬하고 독창적인 회화로 이름을 알렸다. 작가가 다루는 대상의 신체는 패션 잡지와 포르노 잡지를 비롯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이국적 여행 사진을 모아 콜라주 기법으로 만든다. 이들은 서구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신체가 왜곡되고 상품화되는지에 대한 작가의 통렬한 시선을 보여준다. 여기에 맞춰, 작가가 묘사한 인물들은 작품 관람자들에게 반항적인 둔갑술과 같은 힘을 되돌려준다.
작가의 작업실은 응접실이 있는 자택의 한 층을 차지하고 있다. 10여 년 전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작업실에는 입술과 다리 모양으로 종이를 오려 담은 뒤 신중하게 분류 라벨을 붙인 보관함이 가득 쌓여 있었다. 보관함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다양한 케냐산 찻잎과 커피, 흙을 담은 욕조가 놓여 있다. 작가가 3년 전에 삶의 방향을 통째로 뒤바꿨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국 비자와 영주권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 탓에 미국을 벗어나 여행할 수 없었다. 작가로서의 명예가 쌓이고 국제적인 전시에 초대받는 일이 무척 빈번한 시기였음에도 말이다. (현재 작가는 미국과 케냐 국적을 모두 지니고 있다.) 여행 제한에서 벗어난 뒤, 작가는 남편 마리오 라차로니(Mario Lazzaroni)와 어린 두 딸과 함께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작가가 살아가며 겪은 여러 기회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집은 우연히 주어졌다. 작가의 멘토이자 케냐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고생물학자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를 통해서였다. 그는 나이로비에서 매물로 나온 큰 부지를 알고 있었다. 이제 무투는 나이로비 공항과 가깝고 케냐 국립공원에 면한 나이로비 집과 브루클린의 작업실을 오가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앤컴퍼니에서 일한 무투의 남편 라차로니는 에스티 로더의 사하라 이남 지역 매니저를 맡고 있다. 그가 업무상 짧게 출장을 떠나는 일이 많은 반면, 무투는 종종 긴 출장을 떠나는 편이다. 작가는 두 대륙을 오가는 삶이 놀랍도록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케냐에 있을 때면 매일 브루클린의 작업실에 연락해 회의를 진행하고, 브루클린에 있을 때는 똑같이 케냐에 연락을 취한다.
큰 차고를 개조한 케냐 현지의 작업실에는 스프레이 도색과 조각 작업을 위한 텐트가 따로 있고,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은 대부분 기념비적 규모를 취하며, 자연계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작가는 매일 동물을 마주하며 산다. 동물과 새들은 작가가 오랜 시간 초상 작업에서 구사한 신화적이고 은유적인 언어의 일부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집에는 야생 멧돼지와 바위너구리가 있어요. 따오기와 회색관두루미, 흑고니도 있고요. 실제 눈에 보이는 생명체들이고, 작업에 곧바로 포함할 수 있는 것들이죠.” 흙먼지와 식물은 작가의 물감이 되었다. “붉은색 흙과 흑면토가 있고, 케냐의 수입원이라 할 수 있는 차와 커피가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놀랍도록 풍부한 색상 때문에 이 재료들을 쓰죠.” 케냐는 미국에 비해 종이 쓰레기 배출량이 상당히 적기 때문에, 왕게치의 콜라주 작업은 양이 줄어들었다. 물론 작가는 여전히 신문지를 잘게 썰어 마녀의 욕조를 연상시키는 통에 넣고 풀과 흙을 더해 함께 뒤섞는다. “질감이 끝내줘요. 독특한 질감 덕분인지 몰라도 안드로이드 같은 이색적인 결과물이 탄생하게 되었죠.”
여인상 기둥은 요즘 뉴욕에서 자주 보이는 왕게치 무투 작업의 일부에 불과하다. 흙과 비슷하고, 한편으로 안드로이드와도 같은 이 독특한 혼합물로 제작한 ‘파수꾼(Sentinels)’ 조각상 한 쌍이 2019년 9월 22일까지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에 머물렀다. 웅장하고 거대한, 이 기이하고 강렬한 혼종에는 발굽이 있거나 하이힐을 신은 다리가 있고 머리에는 마치 왕관처럼 나무 그루터기나 술 달린 장식품이 씌워져 있다. “그 시간들은 일종의 부드러움을 보여줘요. 메마르고 딱딱할지라도, 또한 대지와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말이죠.” 그녀가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탄생하지 못했을 작업이다.
사업가에서 학자로 경력을 바꾼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1972년 태어난 무투는 여형제 한 명, 남자 형제 두 사람과 함께 나이로비 외곽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 나이의 무투는 학교 친구의 아버지이자 이후 그녀의 삼촌과 같은 존재가 된 리처드 리키의 시선을 끌었다. 그가 무투의 어릴 적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유치원에 다니던 작은 소녀였을 때, 집에 자주 놀러 오던 범상치 않은 아이들 가운데 하나였어요. 그녀는 항상 리더였어요.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분명하게 알았던 거죠.” 그의 딸들은 다른 그 어떤 곳도 아닌 웨일스에 있는 진보적 국제 영재 학교 UWC 애틀랜틱 칼리지에 재학 중이었다. 리키는 무투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가 자신의 딸들과 함께 그곳에서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에 사는 아프리카인으로 겪은 경험은 왕게치가 자신의 역사를 더 깊이 파고들도록 밀어붙였고, 회화와 조각, 영상, 퍼포먼스, 설치를 막론하고 그녀의 모든 작업에 반영되었다. “이민자로서 제게는 설명하기 쉽지 않은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야 할 의무가 있었어요. ‘당신은 어디 출신인가?’ ‘어디서 자랐나?’ ‘말투는 왜 그런가?’ 아주 단순한 질문에 답하다 보니 내가 어디에서 온 건지 정말로 이해하고 싶다면 조국의 식민지 역사에 대해 말해야 하고, 그전에는 어땠는지 말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시케마 젠킨스 갤러리와 함께 시작해 글래드스톤 갤러리와 작업하며 예술가로서 명망을 쌓은 무투의 성공은 다른 작가들이 따라야 할 길을 보여준다. 작가, 사진가, 미술사가인 테주 콜(Teju Cole)은 무투가 취하는 자유로운 태도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그녀의 작업에는 항상 정교함이 존재하죠. 그녀는 국경과 경계를 무시했고, 공통적인 근거와 연결점을 찾고자 애썼어요.” 2014년 무투는 미우치아 프라다, 캐롤리나 헤레라, 스텔라 매카트니 등이 임산부와 태아 사이의 HIV 감염을 막기 위해 설립한 자선 이니셔티브 ‘Born Free’를 위해 패브릭 디자인을 함께 진행했다. 같은 해에는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 동성애를 범죄화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며 ‘Africa‘s Out!’ 이니셔티브를 설립했다. 아프리카의 정치 사회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성적 다양성이 축하해야 할 어떤 것이라고 제시하는 접근법을 취했다.
40대 나이에 미술계의 주요 작가가 된 왕게치 무투는 이제 작가 경력에서 야심 찬 전환점과 자신의 과제로 설정한 도전점을 돌아보고 이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점을 이해할 수 있다. “저는 항상 자연과 여성에게서 영감을 얻습니다. 이런 형상들을 변화시키고 모양을 바꾸는 거죠.” 무투는 그녀가 창조하는 여성들과 자신이 맺고 있는 내밀한 관계에 대해 말한다. “조각상은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해요. 여성으로 존재하며 느끼는 심리적 문제를 물성을 가진 무언가로 바꾸는 것이 바로 제가 해야 할 과업, 해야 할 일, 제가 거두는 승리의 일부겠죠.” 거대하고 복잡한 아이디어, 그것을 찬란하리만치 단순하게 만든 것이 바로 왕게치 무투의 작업이다.
- 피처 에디터
- 전여울
- 글
- EVE MACSWEENEY
- 포토그래퍼
- LATOYA RUBY FRAZIER
- 사진 출처
- 2. ‘SENTINEL I (DETAIL)’(2018). © WANGECHI MUTU/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3. ‘QUIET MOTOR MOUTH’(2015). © WANGECHI MUTU/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4. ‘THE SEATED III’(2019). BRONZE, 82.875 X 33.75IN. PHOTO: BRUCE SCHWARZ,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