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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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로피아나의 3부작 다큐멘터리.

로로피아나의 캐시미어에는 어떤 비밀이 있기에 늘 ‘최고’와 ‘제일’이라는 수식어가 붙을까? <펭귄 : 위대한 모험>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뤽 자케 감독이 로로피아나의 3부작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 비밀을 푼다. 이는 마치 대대로 이어져온 떡볶이 맛집의 고추장 비법이 풀리는 순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첫 작품은 바로 <캐시미어- 비밀의 기원 (CashmereThe Origin  of a Secret)>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촘촘하게 기록하는, 픽션의 반대에 위치하는 필름이다. 패션업계에서는 보통 화려한 패션 신 뒤에 숨겨진 이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거나, 위대한 디자이너나 크리에이터들의 특별할 수 있는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다. 로로피아나와 뤽 자케 감독의 만남은 무엇보다 패션 다큐의 전례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는 감독이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생태학자라는 독특한 이력 덕분인데, 그는 이번 다큐멘터리 3부작을 자신의 기존 작품처럼 자연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했고, 로로피아나를 대표하는 섬유인 캐시미어, 비쿠냐, 더 기프트 오브 킹스 울, 이 세 가지 섬유의 기원을 찾아 몽골로, 아마존으로, 남극으로 떠났다.

<캐시미어- 비밀의 기원>은 황량한 사막과 매서운 바람이 부는 몽골의 고원 지대 오지의 목동들 모습으로 시작된다. 총 20명으로 구성된 촬영팀은 열흘씩 두 번에 걸쳐 내몽골과 외몽골의 작은 목초지에서 자라는 작고 튼튼한 품종인 ‘카프라 히르쿠스’ 염소를 키우는 목동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 모습을 담았다. 하얀 눈이 덮인 사막, 아찔한 바위산 등 극한의 환경 속에서 염소들은 험난한 지형을 누비며 살아간다. 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꽤나 복합적이다. 목동들의 지휘에 따라 돌산을 아슬아슬 뛰어다니고, 풀을 뜯고, 돌을 먹는 모습을 타임랩스 기능을 통해 담은 대목에서는 대자연을 누비는 염소들의 강인하고 경이로운 활력이 전해졌고, 또 그것을 오랜 시간 지켜보고 돌보는 사람에게선 불굴의 인내심이 드러났다. 세 살도 안 된 어린 아기가 아기 염소를 돌보는 모습, 목동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염소에게 먹이를 주고, 털을 빗기는 장면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아름답게 공명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뭉클하게 확인한다. 영상 말미에 세찬 바람과 눈보라, 비를 맞아가며 길러온 염소의 털이 최고의 캐시미어로 거듭나는 순간이 담기는데, 유목민이 아주 오랜 세월 지속해온 전통 방식으로 염소를 방목하여 기르고 털을 얻은 그 감동적인 순간을 비로소 목격하게 된다. 목동들은 생업을 위해 가축을 키우지만 그들의 애착은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산업화된 농업 환경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생활과 그로 인해 얻어지는, 사람과 동물 간의 신비한 교감 말이다.

영상을 보고 나면 야릇하면서 묵직하고, 고요한 파문이 마음에 인다. 이 영상을 통해 감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로로피아나는 이 필름을 통해 무엇을 느끼길 바랐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로로피아나의 최고의 캐시미어는 거친 대자연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동물과 사람이 만들어낸 기적의 산물임을 보여주고자 했을 터. 궁극의 럭셔리 브랜드가 오랜 시간을 투자해 연구하고 조사한 비밀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무척 흥미로웠다. 게다가 원초적 자연과 사람을 놀랍도록 절제해 담아내는 영상미로 이름 높은 명품 다큐멘터리 감독에 의뢰한 것까지, 로로피아나는 완벽한 협업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다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다큐멘터리 감독이 꿈이었던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쓰는 동안 필름을 정확히 5번을 돌려 봤다. 로로피아나라는 훌륭한 파트너를 만나 자연과 교감하며 예상치 못한 순간을 경험한 감독의 생생한 시선을 반드시 느껴보길 바란다. 영상은 12월 한 달 동안 사운즈 한남 5층 오르페오 프라이빗 상영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패션 에디터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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