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지난 시즌에 비해 비교적 잠잠했던, 그래서 더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던 4대 도시 패션위크. 뉴욕, 런던, 밀란, 파리로 떠난 더블유 에디터들이 직접 보고 겪은 4개 도시의 기록.
백스테이지 짝꿍
모델들이 바닥에 반쯤 드러누워 메이크업을 받고, 한 모델이 대여섯 대의 드라이기에 둘러싸이는 등 별난 광경이 펼쳐진 오프화이트의 백스테이지. 그중 가장 눈에 띈 건 하디드 자매가 아닐까.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벨라와 말괄량이 동생의 헝클어진 머리를 차분히 정리해주던 지지. 생김새부터 행동까지 어디 하나 닮은 데가 없는 것 같지만, 쇼가 시작되기 전까지 늘 붙어 다니고 같은 자세로 나란히 앉아 헤어 스타일링을 받는 모습은 영락없는 자매의 모습이었다.
너만 보여
파리 패션위크 마지막 날, 마지막 쇼! 살짝 지친 상태로 루이 비통 쇼장에 들어섰는데, 쇼 시작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로 세상 모든 ‘끼’를 다 가진 듯한 아티스트 ‘소피(Sophie)’ 때문. 그는 루이 비통 쇼를 위해 만든 ‘It’s ok to cry’ 노래에 맞추어 퍼포먼스를 보였는데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압도적인 자태에 눈이 멀어 솔직히 워킹하는 모델의 룩 몇 개를 못 보고 놓쳤다는 사실.
향을 입은 루브르
이번 출장에는 관광객이 없는 한적한 루브르 박물관을 거니는 호사를 누렸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적인 예술 작품을 향으로 표현한 불리 1803의 초대로 ‘밀로의 비너스’, ‘승리의 여신 니케’를 포함한 8점 중 일부를 눈앞에서 향을 맡으며 감상한 것. 그림에 취한 것인지 향에 취한 것인지 하루 종일 황홀한 기분으로 고단한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가실게요
바쁜 패션위크 일정을 쪼개서라도 유일하게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면 최근에 생긴 생로랑 카페였다. 파리 생 로랑 리브두아 매장 옆 한켠을 차지하는 이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 브랜드를 똑 닮은 새카만 종이컵에 시크하게 로고만 새겨진 패키지는 특별할 것도 없는데 그렇게 사진을 찍어댔다. 이게 바로 브랜드가 주는 힘이지 않을까? 리브두아 매장에는 생로랑의 굿즈도 한정 판매 중인데 텀블러, 연필, 포스트잇, 라이터부터 요가 레깅스, 콘돔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저렴한 가격에 혹해 쓸어 담다 보면 100유로를 훌쩍 넘기니 정신줄을 꼭 붙잡아야 한다.
취하지 않았어요
메종 마르지엘라 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클로징 모델 레온 데임(Leon Dame). 뾰족한 사이하이 부츠를 신고서 고개는 한쪽으로 꺾은 구부정한 자세,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위태로운 워킹으로 런웨이를 누볐다. 그의 몸짓은 마르지엘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와 무브먼트 디렉터 팻 보구슬로스키의 작품. 팻 보구슬로스키는 레온 데임에게 “젊은이만의 자유를 보여줘라. 사람들에게 최고의 에너지를 전하고, 네가 네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네가 되고 싶은 것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쇼 직후 인스타그램은 레온 데임의 영상으로 도배될 만큼 화제가 됐으니, 그의 메시지는 성공한 셈.
핫해 핫해
잘나가는 브랜드에는 특별한 운도 함께 따르는 걸까? 비 오는 축축한 파리 패션위크, 마린 세르는 실제 우산으로 인비테이션을 만들었다. 둘째 날 첫 쇼였던 마린 세르 쇼는 야외에서 진행됐는데 쇼 직전, 마침 비가 내렸다. 그럼에도 기분 좋게 쇼를 볼 수 있었던 건 센스 있는 인비테이션 덕분!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당한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다들 귀여운 우산 인비테이션을 쓰기 시작했다. 여전히 힙한 옷들과 함께 런웨이에 등장한 개 모델도 마린 세르 컬렉션을 빛내주기에 충분했다.
보라돌이 뚜비 나나 ‘톰’
톰 브라운이 초대한 비밀의 정원에는 다양한 직물로 만든 분수와 꽃들 사이로 여인들이 우아하게 거닐고 있었다. 평온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높은 계급(?)으로 보이는 모델이 등장하자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마리 앙투와네트>의 연출처럼 오페라 음악 위에 80년대 펑크가 덧씌워져 울려 퍼졌다. 룩과 대조되던 파격적인 사운드에 적응이 될 즈음, 한 모델이 유모차를 밀며 나타났고 이와 함께 흘러나온 익숙한 멜로디는 다름 아닌 <텔레토비> 주제가였다. 이 깜찍한 선곡은 이미 여러 차례 톰 브라운의 사운드트랙을 책임지고 있는 벤 브뤼니머의 센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발렌티노
이번 발렌티노 쇼를 보고 정했다. 평생 한 브랜드의 옷만 입으라면 발렌티노를 입겠다고! 컬렉션 초반 골드 주얼리, 골드 메이크업으로 포인트를 준 화이트 착장은 우아하고 과감했다. 쇼장을 물들인 네온 컬러에서 힌트를 얻었듯 화려하지만 간결한 네온 드레스 룩은 누가 파리의 ‘드레스 강자’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내 마음속 파리 베스트 쇼!
예약은 필수
샹젤리제 거리에 새롭게 오픈한 라파예트 갤러리, 거기에 오픈한 자크뮈스의 레스토랑. 성게를 뜻하는 이름인 ‘Oursin’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그답게 자연광이 비치는 내부와 고운 색감의 도자기까지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오픈 당일 방문했지만 이미 일주일 치 예약이 꽉 찬 상태. 아래층 그의 카페 ‘시트론’에서 브런치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지만, 누군가 파리에 간다면 무조건 이곳을 예약하고 지중해풍 음식에대신 도전해주길.
나인 룸
쇼와 쇼 사이, 촉박한 시간 속 짧게 머문 곳이지만 가장 강렬한 기억을 선사한 로저 비비에의 ‘호텔 비비에’! ‘비하인드’를 테마로 총 9개 룸에 각각 무희들의 백스테이지, 발레 교습을 받는 소녀들, 피팅 중인 톱스타와 디자이너, 치어리더 연습실 등 콘셉트에 맞추어 배우들이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물론 로저 비비에의 슈즈를 신고!
- 디지털 에디터
- 사공효은, 김다혜
- 패션 에디터
-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