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도 매혹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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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아파렐리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대니얼 로즈베리의 2019 F/W 쿠튀르 쇼.

스키아파렐리의 새로운 수장, 대니얼 로즈베리.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가 2019 F/W 쿠튀르 쇼 직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대니얼 로즈베리(Daniel Roseberry)를 임명했을 때 사람들은 이 말쑥한 외모의 뉴요커가 무엇을 보여줄지 기대와 의구심을 동시에 드러냈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대가족 사이에서 나고 자란 후, 톰 브라운 디자인팀에서 일하며 커리어의 대부분을 뉴욕에서 보낸 대니얼. 33세의 이 젊은 디자이너가 스키아파렐리와 손잡고 파리로 이사해 3개월 만에 선보인 첫 컬렉션은 오트 쿠튀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스키아파렐리 하우스에는 매혹적인 신세계를 선사했다. “나는 쿠튀르를 완전히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국적이고 낯선 것으로 생각했다. 낯선 것의 또 다른 측면을 알게 된다는 것은 언제나 황홀한 일이다. 마치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경험과 같다”고 말하는 그. 뉴요커의 명민한 모던함을 주입한 채, 파리지앵의 꿈을 꾸는 그의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여성의 낮과 밤, 그리고 꿈의 시간을 다루며 매혹적인 룩을 다채롭게 선보인 스키아파렐리의 압도적인 피날레 현장.

처음 스키아파렐리의 디렉터를 제안받았을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줄 수 있나? 파리와 뉴욕에서 델라 발레를 몇 번 만났는데, 그는 내게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비전을 이어갈 방법을 연구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12월 내내 이 제안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차이나타운의 한 스튜디오에서 장갑과 코트를 입고서 말이다. 이토록 내게 커다란 영감을 준 일이 없었다. 그 결과물이 1월 디에고에서 선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3월 나를 다시 파리로 불렀고 디렉터 자리를 제안했다.

스키아파렐리의 디렉터가 되고 나서 당신에게 온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파리에 산다는 것은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당신이 아직 어리다면 인생에서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33세에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큰 도전이다. 하지만 나는 도전의 순간을 사랑한다. 이렇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게 정말 행운이 아닌가. 그런데 파리는 뉴욕과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파리를 이해하기 위해 매일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고 있다. 9월에 프랑스어 수업을 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뉴요커로서, 파리를 베이스로 하이패션의 정수를 보여주는 오트 쿠튀르를 경험한 신선한 단상에 대해 듣고 싶다. 그리고 이번 쇼를 경험하고 나서 느낀 쿠튀르의 새로운 면모가 있다면?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그렇듯이, 내게도 쿠튀르에 대한 일종의 페티시가 있다. 나는 쿠튀르를 완전히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국적이고 낯선 것으로 생각했다. 낯선 것의 또 다른 측면을 알게 된다는 것은 굉장히 황홀한 일이다. 마치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경험과 같다. 몇 년간 마음을 빼앗겼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은 그 사람 옆에서 잠이 깨는 것이다. 정말 꿈만 같다. 나는 아틀리에 멤버들이 옛날 스타일로 일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접근 방식은 대단히 현대적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그들이 함께한다고 느꼈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 같았다. 나도 오랜 관행과 막힌 듯한 법칙을 깨부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쿠튀르에 다가갈 때마다 겸손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나로부터,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서 하는 일로부터 같은 기분을 느끼기를 바란다. 쿠튀르는 우리가 제공하는 판타지이며, 판타지의 행위 주체가 되고 있다는 지각과 자부심은 정말 마음에 든다.

쇼를 마치기 전의 감정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지금 쇼를 마치고 나서의 감회가 궁금하다. 쇼는 엄청난 해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마침내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금은 다음 쇼를 빨리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마치 아틀리에의 작업실을 엿보는 듯한 묘한 흥미를 더한 퍼포먼스. 대니얼이 직접 무대 한가운데에서 등장하는 모델들의 룩을 스케치했다.

마치 아틀리에의 작업실을 엿보는 듯한 묘한 흥미를 더한 퍼포먼스. 대니얼이 직접 무대 한가운데에서 등장하는 모델들의 룩을 스케치했다.

마치 아틀리에의 작업실을 엿보는 듯한 묘한 흥미를 더한 퍼포먼스. 대니얼이 직접 무대 한가운데에서 등장하는 모델들의 룩을 스케치했다.

쇼에서 보여준 흥미로운 퍼포먼스를 놓칠까봐, 눈도 제대로 깜박이지 못한 채 당신의 쇼를 지켜보았다. 쇼에 등장할 룩을 모두 외운 채 스케치를 그렇게 빨리 해내다니… 정말 놀라웠다. 이 퍼포먼스는 본인이 직접 기획한 것인가? 그리고 퍼포먼스를 통해 전하고픈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쇼 콘셉트는 12 월에 차이나타운의 스튜디오로 걸어가는 동안 떠올랐다. 사람들 눈앞에서 그림을 그린 다음, 콘셉트와 크리에이션의 가장 은밀한 순간으로 초대하고 싶었다. 한 달여 만에 차이나타운에서 방돔 광장으로 날아가는 것, 미국인으로서 파리에서 지내는 것, 여느 평범한 뉴요커가 아니라 텍사스 출신의 소년이 파리에서 경험한 것은 내게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바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최대한 친근하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실제 스튜디오의 아우트라인을 보여주고, 실제 내 옷을 입고, 내가 좋아하는 향을 피우고, 컬렉션을 디자인하면서 들은 음악을 틀었다.

이번 쇼를 준비하며 당신이 가장 염두에 둔 스키아파렐리 하우스 혹은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아카이브 이미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그녀의 재봉을 정말로 좋아했다. 사실 그녀가 한 모든 일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런 다음에는 그녀가 원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나 자신을 풀어주었다. 아카이브는 굉장히 풍부하기 때문에 아카이브를 재해석해서 전승해갈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이번 첫 번째 컬렉션에서는 레퍼런스를 충실히 옮겨놓기보다는 엘사의 정신에 대해 좀 더 말하고 싶었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데이웨어와 이브닝웨어를 아우르는 여성의 24시간을 다양하게 다뤘다. 컬렉션의 주제로 여자의 하루를 다룬 이유는?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여성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온종일 일하고 퇴근한 그녀들과 술자리나 저녁 식사를 함께할 때면, 그녀들은 여전히 직장에서 입은 옷차림이지만 머리를 뒤로 묶는다거나 립스틱을 새로 칠한다다. 또는 구두를 바꿔 신는다거나 이어링을 바꿔 착용하는데, 나는 이 작고 사소한 변화들을 사랑한다. 일에 치여 바쁜 하루를 보낸 후에도 유쾌한 저녁을 보낼 수 있는 그 유연함은 단순하게 파티 드레스와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모던한 느낌을 준다. 리얼리티가 없는 판타지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법이니까.

Day, Night, Dreamtime! 이 세 가지 컬렉션의 섹션 중에서 가장 마지막의 ‘드림타임’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 주제를 더한 이유가 있다면? 내게 스키아파렐리는 꿈이 가득한 집이다. 하지만 단순히 예뻐지고 아름다워지는 꿈만 일컫는 게 아니다. 잠이 들고 두뇌가 스스로 행동 하기 시작할 때 꾸는 꿈도 포함한다. 잠재의식이 표면으로 올라 오는 꿈속에서는 모든 것이 실제로 보여지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돌고래와 수영하고, 하와이의 석양이 보이는 매니큐어 등. 사실 이것들은 내 꿈에서 본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꿈의 세계를 탐구한다는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꿈속에는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스키아파렐리가 추구하는 것이며, 내게 지금 바로 필요한 것이다. 꿈은 계속되어야 한다.

오버다이 기법의 염색을 통해 신선한 컬러감의 패브릭을 시도했다.

초현실적인 네일 장식의 헤드피스와 주얼리.

매혹적인 컬러 팔레트 역시 무척 인상적이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컬러는 무엇인가? 그리고 컬러를 선택할 때 영감 받는 대상이 있다면? 나는 인테리어에서 컬러 영감을 받는다. 호텔 로비와 이탈리아의 고택 등에서 말이다. 이번 쇼에서 좋아하는 색상을 꼽자면 버건디, 밀리터리 그린, 사프란, 그리고 검은색 깃털로 이루어진 머스타드 오스트리치 드레스가 마음에 들었다.

강렬한 네일 장식의 헤드피스와 주얼리 등이 독창적인 초현실 무드의 룩을 완성했다. 특히 룩 전반에 드러난 붉은색 네일 장식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상징적인 의미는? 변위에 대한 초현실적 개념이다. 무언가를 전혀 다른 곳에 옮겨놓으면 어떻게 될까. 손톱이 귀고리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의 브라톱에 무당벌레 무늬가 새겨질 수도 있다. 아크릴 네일을 찾는 과정은 무척 재미있었다. 엘사 역시 네일을 많이 이용했으므로, 엘사와의 연결 고리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피날레에선 매 룩이 서로 다른 개성을 자아내며 환상적인 스키아파렐리의 세계를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이번 컬렉션의 여러 룩을 완성하기 위한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내게 각각의 룩은 이야기 속 다양한 등장인물과 같다. 그래서 룩마다 어울리는 헤어와 메이크업 및 액세서리가 무엇일지 고민한다. 쿠튀르에 일종의 법칙 같은 건 없다. 나는 스키아파렐리가 헤어, 메이크업, 주얼리 게임에서 메인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다음 시즌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다.

SCHIAPARELLI

SCHIAPARELLI

SCHIAPARELLI

SCHIAPARELLI

SCHIAPARELLI

어떤 피스는 이전 쿠튀리에들이 보여준 클래식한 실루엣이 느껴졌고, 또 어떤 피스는 현란한 네온 컬러와 특별한 소재로 미래적인 무드도 느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체적인 룩들이 전혀 고루하지 않고 모던하게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전통과 동시대적 모던함을 적절히 버무려낸 당신이 지향 하는 모더니즘의 가치는 무엇인가? 로맨틱한 모더니즘이다. 나는 때로는 클래식 쿠튀르 느낌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쿠튀르 런웨이에서 으레 기대하는 것들을 재해석하고 싶었다. 스포츠 요소를 곁들인 이유다. 스포츠 브라톱, 탱크톱 라인, 올림픽 체조 선수들로 부터 착안한 팬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나 역시 한때 체조선수였다). 이 스포츠적인 요소를 좀 더 섹시하지만 올림픽스러운 방식으로 추구하고 싶었다. 새롭고 모던하면서도 간편한 느낌으로.

새로운 패브릭과 기법 역시 쿠튀르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장인 정신의 하나다. 당신이 새롭게 시도한 부분은 무엇인가? 좀 더 고전적인 패브릭을 편안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패브릭을 가져와 작은 단위로 오버다이 했다. 염색 컬러는 직물의 올 방향으로 나뉘었고, 그래서 우리는 문자 그대로 새로운 패브릭을 얻을 수 있었다. 또 인테리어 디자인의 원단 일부를 사용했는데 이 원단으로 작업하는 과정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올해 9월, 좀 더 혁신적인 패브릭과 프린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당신이 영감을 받은 잭 위튼(Jack Whitten)과 사라 루카스(Sarah Lucas)의 조각이 흥미롭다. 잭 위튼 조각품을 처음 봤을 때 내가 얼마나 매료되었는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날것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조각품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식은 정말 놀라웠다. 가공되지 않은 원시적인 느낌을 뒤섞어 소재가 가진 특성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아주 진귀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원재료의 자연스러움을 승격시키는 것, 바로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사라 루카스의 작품은 뉴욕의 뉴 뮤지엄에서 본 것이 전부지만 그 뒤로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의 에너지와 일종의 잔인한 비전! 그럼에도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관심’이 인상적이었다.

당신이 이번 오트 쿠튀르 쇼에 주입한 새로운 에너지가 특히 감동적이었는데, 이번 데뷔전에서 보여주고 싶은 궁극적인 꿈은 무엇이었나?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쿠튀르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먼저 나 자신을 소개한 후, 사람들을 잠에서 깨우고 싶었다. 왜냐하면 쇼가 71일 월요일 아침 10시에 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이애나 로스 의 ‘The Boss’를 선곡했다. 궁극적으로 이들이 새로움, 다시 말해 쿠튀르 쇼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와 동심을 느끼기를 원했다.

앞으로 ‘대니얼 로즈베리’가 이끌어가는, 당신의 독창적인 비전을 더한 스키아파렐리의 이상향은 무엇일까? 아마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비전을 구축하는 것은 한 번에 하루, 또는 한 시즌 동안만 가능하다. 내게 이 여정은 창조적 과정이며, 바로 그 창조의 순간을 100%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려는 일이다.

패션 에디터
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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