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아티스틱한 장인 정신이 잉태되는 곳.
매번 기대 이상의 방식과 흥미로운 주제로 마법 같은 하이패션을 선사하는 샤넬 쇼. 이러한 샤넬 쇼장이 환상 어린 무대라면, 공방은 실체를 담은 커튼 뒤의 세트가 아닐까. 샤넬의 아티스틱한 장인 정신이 잉태되는 그곳. 예술성을 갖춘 장인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지닌 채, 쿠튀르 하우스의 자존심을 이어가는 샤넬 공방의 심장부를 찾았다.
비 내리는 파리 시내에서 멀어져 1시간 남짓 차를 타고 달렸다. 차분한 한적함이 깔린 이곳, 샤넬의 대표적인 공방이 자리한 지역으로 공방이라는 다소 묵직한 이름에 비해 더없이 소박하고 일상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윽고 구두 공방 마사로(Massaro)의 이정표가 눈에 띄었고, 문이 열리자 동행한 아이린의 눈이 반짝였다. 벽에는 눈에 익숙한 칼 라거펠트의 슈즈 스케치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많은 장인들이 일에 열중한 채 손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우리를 안내한 곳엔 샤넬의 특별한 고객들이 맡긴 크기와 형태가 다양한 라스트들이 잔뜩 걸려 있었는데, 둘러보니 보니 레이디 가가나 퍼렐 윌리엄스의 이름도 보였다. 실루엣도 가지가지. 마사로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맞춤 구두를 만들어내는 곳답게 라스트 메이커가 자리하고, 그가 제작한 틀을 중심으로 슈즈 제작의 각 단계를 책임지는 장인들이 서로 분업하고 있다. 샤넬의 오트 쿠튀르와 공방 컬렉션의 슈즈부터 셀럽을 비롯한 샤넬 고객의 맞춤 슈즈, 나아가 정형외과용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슈즈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보통 마름질부터 마감 처리 과정까지 구두 한 켤레를 완성하는 데만 30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1894년 창립된 마사로 공방은 현재 레이몽 마사로가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구두 공예학교 출신인 레이몽 마사로가 만들어내는 구두는 무엇보다 대담성이 돋보였다. 1957년 그는 가브리엘 샤넬을 위한 투톤 슈즈를 탄생시켰는데, 당시 마드무아젤 샤넬은 유행하던 스틸레토 힐 대신 6cm 높이의 미디 힐을 파격적으로 제안했다. 그렇게 탄생한 오늘날의 클래식 아이콘인 투톤 슈즈는 베이지 레더 소재를 재단해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면서 앞부분만 블랙 새틴 소재로 처리해 발이 작아 보이는 효과까지 더했다. 물론 지금 이 공방에서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샤넬 고객을 위한 섬세한 리본 트위드 장식의 스니커즈 제작까지 이뤄진다. 어쨌든 그 일화를 기점으로 샤넬과 마사로 공방 간의 협업이 끈끈하게 이어졌고, 마침내 2002년 마사로 공방이 샤넬 공방에 합류했다.
깃털의 무한 도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이곳. 팔미르 코예트가 세운 깃털 장식 공방인 르마리에(Lemarié)는 1880년부터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 당시 파리에는 300명이 넘는 깃털 장식 공방이 있었는데, 르마리에 공방은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온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지난 파리-뉴욕 공방 쇼에 등장한 이집트에서 영감을 받은 강렬한 색감의 드레스 역시 르마리에 공방의 손길이 닿았다. 얼핏 보면 프린트처럼 보이는 의상은 모두 깃털로 만들어졌는데, 섬세한 깃털에 정교하게 페인팅을 해 하나하나 손으로 이어 붙인 드레스는 이번 공방 컬렉션의 마스터피스다. 그리고 또 하나, 르마리에 공방의 장기는 카멜리아 코르사주 장식이다. 1960년대에 가브리엘 샤넬이 그녀의 상징인 카멜리아를 구상할 때도 르마리에 공방의 힘을 빌렸다. 그 뒤로 카멜리아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꽃 코르사주를 오간자, 시폰, 튤, 가죽, 벨벳과 같은 섬세하고도 매력적인 소재를 이용해 하나의 아트피스처럼 만들어내고 있다. 이처럼 르마리에는 플라워 및 깃털 장식을 전문적으로 다루지만 의상에 들어가는 플리츠 장식에도 뛰어나다. 1996년 샤넬의 공방에 합류한 르마리에 공방의 뛰어난 장인 기술과 역동적인 에너지는 샤넬 컬렉션에 특별한 미학을 선사한다. 그리고 오늘날 샤넬의 새로운 수장인 버지니 비아르와의 최근 크루즈 쇼를 통해 그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청동과 수정, 그리고 유리 페이스트 소재 등을 아름다운 주얼리와 장식품으로 조형하는 주얼리 & 오브제 컬렉션으로 유명한 구쌍(Goossens). 구쌍 아틀리에는 2005년 샤넬 공방에 합류했다. 1953년 구쌍을 처음 만난 가브리엘 샤넬은 그리스 로마 시대뿐 아니라 고대 이집트 등 다채로운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주얼리를 재해석하는 그의 재능에 매료되었다고 전해진다.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덴두르 신전에서 펼쳐진 파리-뉴욕 공방 컬렉션 역시 구쌍 공방의 전통과 기술력을 빌렸다. 구쌍 장인들이 만들어낸 황금빛 주얼 장식들 덕에 그 이국적인 절정의 아름다움이 살아났으니까. 특히 풍뎅이 모티프의 틀에서 만들어진 장식을 백과 벨트, 커프와 슈즈 등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활용한 상상력은 탄성을 자아냈다. 구쌍은 가브리엘 샤넬을 위해 램프나 거울 등의 장식용 오브제를 만들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이를 입증하듯 공방 한켠에는 가브리엘이 좋아한 밀 이삭을 모티프로 한 장식도 눈에 띄었다. 오늘날에도 샤넬 하우스의 다양한 오브제를 제작하기 위해서 에나멜링 및 캐스팅 작업을 멈추지 않는 이곳은 구쌍 창립자의 아들인 패트릭 구쌍의 말처럼 ‘고전적인 기법을 판타지의 영역으로 바꾸어놓는 법’을 보여준다.
자수 공방 르사주(Lesage)의 역사는 조금 더 긴 설명이 필요하다. 1924년 알베르와 마리-루이즈 르사주 부부가 자수 공방 미쇼네(Michonet)를 인수했다. 당시 미쇼네는 마들렌 비오네와 같은 당대 최고의 쿠튀리에들과 함께한 곳으로 유명했는데, 그 쿠튀리에들을 도우며 자수 작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다름 아닌 마리-루이즈 르사주였다. 여러 가지 색조를 적절히 배합해 완성하는 혁신적인 자수 기법과 섬세하게 음영을 드러내는 옴브레 기법의 창시자인 그녀는 이내 아방가르드한 자수 모티프로 유명해졌다. 이러한 르사주 공방이 보유한 7만5,000여 개에 달하는 자수 샘플이 있는 아카이브 룸에 들어서자 형언할 수 없는 강한 기운에 압도당했다. 검은 상자 안에 든 아카이브 자수 샘플을 꺼내 보여줄 때마다 탄성이 흘러나왔고, 그것들은 마치 신의 손으로 지어진 천상의 직물 같았다. 하지만 이내 공방에서 열중한 채 빠른 손놀림으로 트위드 실을 하나하나 조합해 직조하고 스팽글을 아주 얇은 천에 꿰고 있는 장인들을 보자 기나긴 시간 인고의 노력으로 창조한 지상의 아름다움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화재 등의 비상사태에도 견고한 요새처럼 지켜질 수 있는 특수 장치를 더한 공간이라는 이야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르사주만의 독창적인 유산은 오늘날 세계 최대의 쿠튀르 자수 장식 컬렉션인 동시에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니까. 1949년 프랑수아 르사주가 부친 알베르의 뒤를 이어 스무 살의 나이로 공방을 이어받았고, 그는 1990년대에 공방의 활동 영역을 다각화하기 위해 직물 공방을 설립했다. 1983년 칼 라거펠트가 샤넬에 입성하며 샤넬과 르사주 공방의 본격적인 협업이 시작되었다. 1998년에는 샤넬 하우스의 레디투웨어 컬렉션에 맞춰 샤넬의 상징적인 트위드 소재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2002년에 샤넬의 공방에 합류한 이후 2008년부터 오늘날까지 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위한 새로운 트위드 소재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시폰 리본을 비롯해 다양한 실을 정교하게 조합해 탄생한 특별한 트위드가 그 결과물이다. 숙련된 손놀림과 독창적인 기술을 보유한 르사주 장인들이 만들어낸 정교한 자수들! 그 매혹적인 장식은 공방 컬렉션의 다채로운 의상과 액세서리에 화려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얼핏 생각하는 자수의 기본 소재를 뛰어넘는 것도 이곳의 특징. 지금까지 르사주 공방이 만들어낸 자수 장식에 사용된 펜던트와 라인스톤, 리본, 비즈, 무지갯빛 크리스털의 무게만 해도 무려 75톤에 달한다고 하니 말이다. 매년 레디투웨어와 공방 컬렉션, 오트 쿠튀르와 크루즈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컬렉션의 든든한 조력자로 활약 중이다.
샤넬이 공방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돈독한 유대관계와 파트너십을 위한 인수 과정을 거치지만 공방의 역사와 개성, 뿌리를 존중한다. 샤넬뿐 아니라 다른 하이패션 쿠튀르 메종들이 이 공방들과 교류하는 것을 유지하고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수업도 제공하는 것. 특히 르사주 공방은 특별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기술의 완성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1992년에 자수 학교를 세웠다. 이곳에서 아마추어 혹은 전문가를 불문하고 수많은 자수 애호가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것. 이처럼 공방을 패션을 매개로 한 프랑스 문화예술의 한 줄기라고 여기는 자율성을 존중하는 자세야말로 오늘날 하이패션 메종에 필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분주한 손길들이 오늘도, 내일도 매혹적인 전통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 패션 에디터
- 박연경
- 포토그래퍼
- 김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