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CFDA의 우승자 디자이너 커비 장 레이먼드.
2018 CFDA의 우승자 디자이너 커비 장 레이먼드 (Kerby Jean–Raymond)에게는 자신의 브랜드 파이어 모스 (Pyer Moss)를 차세대 미국 패션의 새로운 역사로 만들려는 거대한 야심이 있다.
레게 선율이 흐르고, 향초에서 소나무 향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뉴욕 맨해튼의 작은 사무실. 파이어 모스의 사무실인 이곳에서 창립자이자 디자이너인 커비 장 레이몬드와 마주했다. 사무실이 일요일 아침의 분위기이길 원한다는 그는 세계 정복을 위한 야심 찬 계획을 구상 중이다. 지난해 CFDA(미국패션디자인협회)에서 40만 달러(4억5천만원 상당)의 상금을 받은 그는 미국 패션 최대의 라이벌 LVMH(프랑스 기반의 다국적 럭셔리 회사) 같은 지주 회사를 세우고 싶다 밝혔다. 아주 잘 다 듬은 수염과 밝은 아몬드색 눈동자를 가진 그에게 이유를 묻자, 아주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왜 저라고 못하겠어요.”
그는 하이패션에서 ‘미국계 흑인의 문화’ 같은 누구도 도전하지 못한 측면을 다룬다. 아이티 이민자인 아버지의 옷장, 유년기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후부(Fubu), 크로스 컬러스(Cross Colours)를 결합한 2019 S/S 컬렉션은 아주 ‘영적인(Spiritual)’ 것이라 했다. 절묘하게 크롭트된 남성복과 섬세한 드레스와 넉넉하고 스포티한 팬츠로 구성된 여성복, 그리고 아주 대담한 컬러 팔레트. “모든 것은 제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에요.” 쇼는 브루클린 근처 윅스빌에서 열렸는데, 이곳은 노예 해방 이후 자유를 얻은 흑인 토지 소유자들이 미국 최초로 커뮤니티를 세운 곳이기도 하다. 또, 아기를 안고 있는 흑인 아버지의 모습을 구슬로 꿰맨 드레스의 그림은 화가 데릭 애덤스(Derrick Adams)와 협업한 것으로 “흑인들은 대개 비참한 이미지로 그려지죠. 저는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장 레이몬드는 자신의 오피스에서 불과 10마일 떨어진 곳에서 자랐다. 그곳과 이곳의 문화적 차이는 아직도 상당하다. 브루클린의 깊은 곳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일곱 살에 어머니를 잃은 그는 아주 작은 아파트에서 아버지의 손에 자랐다. 중학생 시절, 그는 친구의 칼에 코가 찔리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때 생긴 작은 흉터가 아직도 옅게 보인다. “눈이 멀 수도 있었는데 운이 좋았죠.” 그 사건은 그가 열정적으로 삶을 사는 계기가 됐다. 장 레이먼드는 13세에 스니커즈 숍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선택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일하기 시작했죠. 매일 아침, 아버지는 10달러를 줬는데, 정말 끼니만 때울 수 있었어요.” 이후 맨해튼의 고등학교로 진학해 비로소 패션에 눈뜨기 시작했다. 부유한 아이들과 활달하고 창의적인 분위기. “맨해튼은 정말 별천지였어요. 거기서 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죠.”
케이 웅어(Kay Unger)의 백화점 매장에서 인턴십을 시작한 그는 작은 브랜드를 전전했는데, 2013년, 리한나가 그가 디자인한 카모 재킷을 입어 큰 주목을 끌자 그는 재빨리 회사를 차렸다. 그렇게 시작된 ‘파이어 모스’는 어머니의 미국식, 아이티식 성을 결합한 것이다. 진짜 세상은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2015년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확산되면서 케이블 뉴스는 온통 미국계 흑인이 살해되는 영상으로 뒤덮였다. “스너프 필름이 하루 종일 방영됐죠.” 같은 해, 그는 실제로 퀸즈에서 뉴욕 경찰의 총구 앞에 서기도 했 다. 그의 팔이 무장되어 있다고 착각한 탓이었다. “눈앞에 총이 겨냥된 건 처음이었어요. 정말 발포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정치에 관심이 높았던 그는 당시의 충격으로 앞날을 결정했다. 머릿속에 소용돌이치는 모든 이미지를 쏟아부은 2016 S/S 시즌, 부츠에 묻은 빨간색 페인트는 핏자국을 연상시켰다. ‘Breathe’라고 쓰여 있는 재킷은 에릭 가너(2014년 뉴욕 경찰에게 목이 졸려 죽은 피해자의 외침)에 대한 오마주기도 했는데, 여기에 경찰 폭력에 반대하는 피해자 가족을 인터뷰한 영상까지 제작했다. 아주 새로운 시각의 패션쇼에 몇몇 바이어는 혼비백산해 달아났지만, 그는 동시에 헌신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땐 정말 잃을 게 없다고 느꼈죠.”
사회적 분위기를 미묘하게 묘사하는 그의 특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American, Also”라고 명명한 지난 두 시즌은 미국의 역사를 비롯해 동시대에 일어난 흑인 살해 기도를 주제로 했다. 19세기 대지를 개척한 흑인 카우보이를 예로 들자면 “백인 중심이라고 여겨진 곳에 사실은 많은 흑인이 있었어요. 그들은 애국자로 대접받아야 마땅해요.” 2017년 리복과 첫 협업 이후, 독자적인 라인까지 준비 중인 그는 지난해 CFDA 우승으로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됐다. 장 레이먼드는 파이어 모스를 경영하고 있지만, 동틀 무렵에 있는 차세대 위대한 미국 브랜드의 서막에 서 있기도 하다. 이런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왜냐하면” 그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전 정말 확신하거든요”라고 말했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지
- 글
- Alex Frank
- 포토그래퍼
- Amy Tro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