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애월의 평원, 그리고 바이크 쇼츠를 입은 길 위의 라이더.
동네 공원에서 조깅하는 러너들의 옷, 사이클이나 바이크를 타는 선수를 위한 옷, 혹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파파라치 컷에서 요가 매트를 들고서 체육관으로 향할 때 입던 옷. 사이클링 쇼츠라고도 불리는 ‘바이크 쇼츠’ 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대개 이렇다. 레깅스 밖으로 팬티 라인이 드러나면 흉한 것으로 치부되며 길이가 긴 티셔츠나 후디 톱, 혹은 짧은 팬츠를 덧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입기엔 부담스러운 기능성 아이템으로 생각한 바이크 쇼츠가 운동복을 넘어 런웨이를 점령했다. 운동을 위한 옷이 아닌, 운동을 부르는 패션 아이템으로 부상한 것이다.
시작은 오프화이트였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스타일링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다이애나비가 안타까운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지 20년이 되던 작년, 2018 S/S 오프화이트 쇼를 통해 버질 아블로는 다이애나비의 스타일을 오마주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버질 아블로는 박시한 로고 스웨트셔츠와 바이크 쇼츠, 거기에 스포츠 삭스와 대디 스니커즈를 즐겨 신던 다이애나비의 데일리 룩에 영감을 받아 로고를 가미한 바이크 쇼츠를 쇼에 올렸다. 함께 매치한 건 러플 장식을 가미한 테일러드 재킷이었는데, 모델 나오미 캠벨이 입은 올 화이트 룩은 바이크 쇼츠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오프화이트의 선방 이후 켄들 제너, 벨라 하디드, 헤일리 볼드윈 등의 패션 아이콘들이 저마다 리얼 웨이에서 바이크 쇼츠를 즐기기 시작한 것. 오버사이즈 재킷에 날렵한 디자인의 스틸레토나 슬링백을 매치해 섹시한 매력을 부각시키거나, 스포티한 점퍼와 스니커즈로 편안한 스타일링을 선보이기도 하며 바이크 쇼츠를 일상생활에서 즐기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밀레니얼 스타들의 착용 이후 2019 S/S 컬렉션은 그야말로 바이크 쇼츠의 향연이었다. 그랑팔레를 해변으로 변신시킨 샤넬은 스판덱스 소재와 비스코스 소재의 바이크 쇼츠에 트위드 재킷과 밀짚모자를 매치해 스포티하면서도 클래식함을 겸비한 여성을 그려냈다. 블루마린 컬렉션은 특유의 러플, 레이스 장식의 톱과 원피스에 형광색 바이크 쇼츠를 매치해 스포티한 무드를 가미했다. 펜디 쇼에서도 바이크 쇼츠의 활약이 이어졌는데 브라운, 네이비 컬러의 바이크 쇼츠에 컬러 배색으로 패턴을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브라톱과 주머니가 많은 PVC 재킷을 매치하거나, 혹은 엉덩이를 가리는 셔츠와 포켓 벨트백의 조합으로 유틸리티 스타일을 완성했다. 한편 자크뮈스는 상큼한 탠저린 컬러의 니트 바이크 쇼츠에 오버사이즈 화이트 셔츠를 느슨하게 묶어 편안하면서도 섹시한 룩을 선보였다. 바이크 쇼츠가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면 발목까지 내려오는 윈드브레이커 재킷과 매치한 토가 쇼를 참고해도 좋다. 이렇듯 다양한 스타일로 변신이 가능한 바이크 쇼츠는 선뜻 도전하기 어렵지만 그 어떤 스타일에도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 바이크 쇼츠를 연출하는 데 꼭 기억해야 할 단 하나를 꼽으라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운동복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바이크 쇼츠를 트레이닝복으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딱 달라붙는 반바지 정도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베이식한 디자인적 특징에서 오는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맥시멀한 매치를 즐기거나 스포티, 로큰롤, 스트리트, 드레시한 무드의 아이템 같은 다채로운 스타일과의 조합을 과감하게 시도해보길 권한다. 어떤 패션 아이템에도 근사하게 어울리니 궁극의 하이브리드 아이템으로 등극할 날이 머지않았다.
- 패션 에디터
- 김민지
- 포토그래퍼
- LESS
- 모델
- 선혜영
- 헤어
- 강현진
- 메이크업
- 이영
- 프로덕션
- 김윤범(YB Produ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