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데가르송의 <Six>를 시작으로, 패션과 광고계에서 경이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창조한 일본을 대표하는 아트 디렉터 이노우에 쓰구야(INOUE TSUGUYA). 우리는 전설적인 아트 디렉터 이노우에 쓰구야와의 패션 촬영을 기획했고, 그를 서울로 초청했다. 그가 늘 사진가와 편집자들에게 말하는 ‘단 한 장, 결정적으로 좋은 사진을 찾기 위해서’.
이노우에는 단 한 장의 작은 사진에 이끌려 책을 구입하는 일이 많다고 말한다. 그런 종류의 책은 도쿄에 위치한 이노우에 사무실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어떤 한 장을 함께 일하는 사진가들에게 보여주며, ‘결정적 한 장’을 찾자는 결의를 공유하면서 그의 작업은 시작된다. 한국과의 첫 작업인 아트 화보 촬영을 위해 그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답십리의 고미술 상가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촘촘히 채집했다. 그런 다음 신라의 도읍지 경주에 내려가 다양한 영감을 얻었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패션 화보 촬영을 진두지휘했다. 경이롭기까지 했던, 일흔한 살을 맞은 한 아티스트의 집중력과 노고는 모두 그의 입버릇이기도 한 ‘결정적 한 장’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지금 그 결과물 ‘컨템퍼러리 에인션트(Contemporary Ancient)’ 화보뿐 아니라 이 인터뷰를 소개할 수 있어 가슴 벅차다.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고 볼 수 없는, 한 어른의 가르침이 여기 있으니까.
한국에 방문해줘서 감사하다. 한국은 처음이라고 들었다. 이곳의 이미지는 어땠나? 원래부터 한국 미술품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옛 시대 공예품이 ‘굿 디자인’임을 느꼈다. 이번에 방문한 박물관 두 곳에서는 생각했던 것 이상의 발견을 많이 했다. 일본은 나라 시대부터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골동품 가게도 생각보다 트렌디했고, 밝고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외로 ‘예쁜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조금 더 정적일 줄 알았는데, 즐거운 경험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은 일본과는 다른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호텔 근처(신사동 가로수길) 동네를 산책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일본처럼, 또는 그 이상으로 멋을 추구하고 미용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다. 부티크 옆에 식당이 자리 잡은, 신(新)과 구(舊)가 혼재된 모습도 무척 흥미로웠다. 사람들의 표정과 거리에서 굉장한 에너지를 느꼈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박물관과 골동품 가게 같은 곳을 좀 더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나? ‘생물 감각’과 ‘기도’의 마음에 관한 영감을 얻었다.
1980, 90년대, 당신이 가장 왕성하게 활약했던 시기의 일본 패션계를 알고 싶다. 그 시기에 나는 다양한 국가를 둘러볼 기회가 많았는데, 도쿄만큼 남녀를 불문하고 옷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정말 충격이었다. 파리나 런던의 젊은이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옷을 수선해서 입기도 했지만 당시 도쿄 사람들은 출근할 때마다 옷을 갈아입었다. 그 당시 일본 사람들은 구제 옷을 입지 않았다. 분명 당시에는 ‘생산력’이 더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당시는 ‘패션의 성장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당신은 역사에 남을 만한 근사한 광고 비주얼을 창조했다. 그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기성 광고나 디자인과는 다른 표현법을 창조하고 싶었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일할 때도 늘 어릴 때의 감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내 작업에는 동물, 곤충, 물고기, 식물 등의 모티프가 많은 것이다. 그것은 기존 광고에서는 거의 볼 수 없던 방식이고, 그런 것들을 광고라는 영역에 끌고 왔다. 새로운 것뿐만 아니라, 중국의 오래된 수묵화라든지, 일본의 공예품 등을 광고 세계에 들여왔다.
당신은 오랫동안 꼼데가르송의 광고 비주얼을 맡았다.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와의 인연도 궁금하다. 그녀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먼저, 가와쿠보의 창조성과 경영 매니지먼트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녀와 사전 미팅을 할 때면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그러한 ‘논버벌 커뮤니케이션’이 그대로 디자인으로 발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와쿠보는 내가 제시한 디자인에 대해 클레임도 거의 없었다. 모든 면에서 우리의 작업은 매우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꼼데가르송 광고의 명성에 비해 당신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이러한 점은 당신의 성향 때문인가? 그렇다(웃음).
어릴 적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나? ‘갖고 싶은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 동종 업계 사람들은 패션이나 자동차를 좋아했는데, 나는 음악, 특히 레코드와 콘서트 에 푹 빠져 있었다. 돈도 시간도 거의 모두 음악에 쏟아 부었었고, 당시 들었던 재즈, 록, 민요, 가요는 나에게 큰 양식이 되었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릴 땐 만화 읽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만화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볼걸이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그 시절 만화는 요즘 만화와는 다르게 한없이 맑다고 할까, 특유의 통쾌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도 만화 <이가 구리군>, 스기우라 시게루의 <소년 서유기>같은 난센스한 만화를 좋아했다. 그리고 영화는 1년에 100편 정도 본 것 같다. 대개 긴자에 있는 나미키자라는 영화관에서 봤는데, 영화 역시 내 안에 큰 존재로 자리한다. 내 머릿 속에는 스토리보다 장면들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동유럽 등 다양한 나라의 영화를 봤 고, 영화 역시 난센스 요소가 있는 것을 좋아했다.
당신이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 인가? 보는 사람의 ‘행운’과 작품을 본 사람이 슬퍼하지 않는 ‘풍작’같은 결실을 맺는 느낌을 원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해온 기존의 디자인 방식이 아니라, 마음이 즐거워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게 바로 내 가 말하는 ‘생물 감각’이다. 스틸 사진이지만, 움직임을 느낄 수 있거나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것. 어쨌든 나는 사진을 좋아하기 때문에 표현 기법으로 대부분 사진을 활용한다. 디자인에 사진을 넣는 것은 나에게 절대적인 명제인 셈이다. 또 하루 한 권 이상 책을 구입하고 있는데, 지금도 좋은 사진이 한 장이라도 있으면 바 로 그 책을 사기 때문에 저절로 하루 한 권 이상 사게 되었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이와 비슷한 감 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말고는 갖고 싶은 것이 딱히 없다. 소위 ‘눈호강’을 위해 소비를 한다.
일을 의뢰받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이 들어오면 바로 그 순간에 표현 방식을 생각해내는 편이다. 시간이 지나 어떻게 하는 것보다, 의뢰 들어왔을 때 그 순간 어떤 식으로 할지 정한다. 일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생각하는 건 비즈니스에 지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일상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일을 즐기기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시대와의 관계’도 중요한 것 같고.
1980, 90년대 당신은 매우 파격적이고 센세이셔널한 광고를 창조했다. 어떤 생각으로 그것에 임했나? 세상을 놀라게 하겠다는 마음이었는지, 단지 좋아하는 것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인지. 후자인 것 같다. 생동감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탁하지 않은, 맑은 공기 속에서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미지를 ‘설명’ 하기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느끼도록 작업해온 것 같다. 그런 면을 전부 이해해준 클라 이언트를 만난 것도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나 스 스로 영업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운 좋게도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났다. 시대적인 것도, 사람과의 관계도 다운이 좋았다.
이번 더블유와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점이 있다면? W라는 잡지 안에서, 좀 오래된 모티프일지 모르지만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며, 작업을 했다.
당신은 사진의 방향도 컨트롤하는 것 같다. 당신에게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사진을 컨트롤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사진가가 가진 특성을 소중히 생각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도 단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나와 함께 일함으로써 지금까지 그 사진가가 표현해오지 않았던 것이 새롭게 표현되면 정말 기쁠 것 같다. ‘좋은 사진’이라는 것은 데자뷔가 없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잔혹한 사진보다는 뭐랄 까, 풍요로운 기분이 드는 사진 말이다. 그리고 멈춰 있어도 다음 동작이 느껴지는 듯한 사진을 좋아한다. 움직 임의 전후가 보이는 그런 사진. ‘좋은 사진’이란 무언가 에 답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게 사진의 매력 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혹은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 있다면? ‘언리얼레이지(Anrealage)’라는 디자이너의 작품집을 작업 중이다. 컬렉션 현장에서 촬영한 것을 작품집으로 정리했다. 나는 언제나 스스로 존경할 수 있는,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원한다.
당신은 한 시대를 아우르는 디자인 역사에 일조한 인물이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좋아했던 사진, 인쇄물을 모아 한 권의 앨범으로 응축해보고 싶다.
동시대 크리에이터들이 마음속에 새겼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아트라는 것은 혼자서 창조하는 것이지만, 아트 디렉터는 사진가와 편집자 등 많은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혼자만의 공이 아니니 절대 오만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항상 파트너가 필요한 일이기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길. 그건 인쇄, 제본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말하는 거다.
사전 미팅 때 당신은 패션을 ‘생물’이라고 표현했다. 패션은 움직이고, 호흡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입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당신에게 패션은 어떤 자극을 주며, 어떤 존재인지 궁금 하다. ‘기분이 정해진다’가 아닐까? 산책을 하거나, 자거나, 회사에 갈 때, 그날의 기분과 다짐을 정해주는 것이 라고 생각한다. 행동의 방향성을 잡아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특히 나는 신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철저히 세계와 단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요즘 시대에 디지털은 일반인에게는 정말 중요한 수단일 거다. 나는 그 사람들과 달리 하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는 것뿐이다. 디지털의 편리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된다(웃음).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편하지는 않은지? 불편하지 않다. 사무실을 나오면 어디와도 연락이 두절되니 그게 참 좋다. 만약 급한 용무가 있는데 그때 누군가가 나를 찾지 않는다면 그렇게까지 중요한 용건이 아닌 것이고,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어디에 있어도 반드시 날 찾을 거다. 시간, 사람, 그리고 요건을 부분화하고 있다고 할까. 내 시간에 관해서는 자유롭게 보내고 싶다.
그래도 이메일 사용하시길 바란다. 그러면 가끔 메일로 연락해서 안부 확인도 할 수 있고. 미안하다. 나는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 중요한 용건은 반드시 전달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편리함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나중에 또다시 더블유와 일할 수 있을까? 꼭 다시 더블유 코리아와 무언가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기대하고 있겠다. 그때도 여전히 전화와 이메일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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