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신진 디자이너 3인을 만났다. 세계로 나아갈 이들의 무한한 잠재력과 아이디어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일찌감치 <더블유 코리아> 4월호에서 ‘비범’하 고 ‘기대’되는 디자이너로 주목했던 기준의 디자이너 김현우가 두 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다. 온화한 듯하지만 폭발하는 끼가 넘치는 그는 이번 시즌 놀랍도록 성장한 모습으로 기준만의 새 기준을 하나 더했다. “지난 시즌에는 처음이라 너무 많은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이번엔 생각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어요. S/S 시즌에만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실루엣을 탐구하면서 거듭 정제했죠.” 지난 인터뷰를 통해 ‘한편의 영화 같은 옷’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 김현우는 이번에도 역시 책 한 권으로 엮고 싶을 만큼 풍성한 스토리 보드를 만들었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열린 2019 S/S 프레젠테이션 현장에 가본 이라면, 그의 영감으로 가득 채운 벽 앞에 잠시 멈췄을 거다. 요술봉을 휘두르며 변신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집시들의 아카이브 사진, 미래적인 자동차와 바이크 슈트 등 재미 있고, 과감하고, 때론 아기자기한 영감이 혼재돼 있다. “동유럽 집시 특유의 에스닉한 문화를 가져오고 싶었어요. 여기에 애니메이션의 팝한 느낌, 그리스 신화 이야기, 80년대 글램 무드 등 딱 하나로 형용할 수는 없지만,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의 집합이자, 그 특이한 조합에서 나오는 이상한 느낌을 담아냈죠.” 예상치 못한 입체적이고 풍성한 실루엣 대부분을 가죽 소재로 만들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여름이지만 가죽을 많이 사용했어요. 이질적인 느낌이 좋아서요.” 지난 시즌 비즈가 촘촘히 박힌 의상을 손으로 직접 작업한 크래프트맨십에 대한 열망은 이번 시즌에도 이어졌다. “집시의 복식을 공부하다 보니 나무 등으로 만든 독특한 공예품이 인상적이 었어요. 이런 디테일을 기준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보여주고 싶었죠. 의상 매듭 끝에 달린 작은 나무 구슬 장식이나 캐스터네츠를 비즈와 엮어 만든 가방 등 곳곳에서 볼 수 있어요.” ‘위트’ 를 디자인에서 포기할 수 없는 장치로 꼽는 김현우다운 생각이다.
4차원 세계의 여인같이 생경한 애티튜드로 담아낸 이번 룩북 이미지를 함께 보며 기준이 꿈꾸는 궁극적인 여성상이 무엇인지 물었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기보단, 지저분하고 엉망인 것 같아도 자신만의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요. 제가 워낙 위트 있게 트위스트하는 방식을 추구하다 보니, 의외의 조합을 즐길 줄 안다면 더 좋겠어요. 그래서 전 옷을 만들 때 한 아이템도 다양한 방식으로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해요. 이번 가죽 아이템 중 하나도 허리에 내려 입으면 스커트가 되고, 상의에 입으면 블라우스도 되고, 위에만 묶으면 가방도 될 수 있게 만들었죠. 기준 옷의 첫인상이 강렬해서 다소 입기 부담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얼마든지 심플한 아이템 과 믹스 매치할 수 있어요.” 오묘한 균형을 가진 기준의 옷은 그럼 어떤 음식에 비유할 수 있을까? “시큼한 레몬 스퀴즈요! 다양한 요리에 필요한 묘약 같은 한 방울이잖아요. 패션에 그런 요소를 더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기준 한 방울이면 새롭고 풍부한 맛이 나는 거죠.” 그에게 처음의 기준과 두 번째 기준 사이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물었다. “그 중심은 같지만, 브랜드의 의미가 점차 정리돼가고 있어요. 업그레이드된 부분은 구체적으로 옷의 구성, 부자재, 만드는 방식을 보다 더 디테일하게 고민한다는 점 이죠. 첫 컬렉션에서는 아트 피스로서, 기준의 확고한 캐릭터를 보여주려 했다면 이번엔 본격적으로 실전에 돌입한 느낌이었어요. 입을 수 있는옷,세일즈 가치를 갖는 옷의 측면에서 접근했죠. 함께 기준을 이끄는 친구 명준과 함께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며 튀지만, 아름답고 정말 입을 수 있는 옷을 골랐어요. 못 입겠다 싶으면 과감히 걷어낼 정도로요.”
기준에 ‘균형’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더한 시즌. 다음엔 어떤 예상 밖의 생각들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자극과 영감에 대한 갈증으로 가득할 김현우에게 그만의 내적 균형을 찾는 노하우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질 땐 생각을 멈춰요. 그러곤 유튜브를 열고, ‘라쿤 동영상’을 검색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한 기분에 빠져버리게 되죠.”
- 패션 에디터
- 백지연
- 포토그래퍼
- 고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