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알싸한 겨울의 문턱에서 향기 장인 프레데릭 말과 제시카가 만났다.
Scent of a Woman
마치 명작을 만들 듯 1~2년의 시간을 들여 특별한 향을 탄생시키는 프레데릭 말이 좋아하는 향은 그의 아내가 애정하는, 그래서 잠들기 전까지 늘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Portrait of a Lady)’다. 향수 한 병에 터키로즈가 무려 4백 송이가 들어간 이 순도 높은 오리엔탈 로즈 향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매혹적인 여인을 연상시킨다.
Modern Heritage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창립자 프레데릭 말은 크리스찬 디올 향수를 만든 세르주 에틀러의 손자다. 한마디로 향수 가문 출신이라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그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작가(조향사)에게 향에 대한 전권을 준 뒤 귀중한 책 한 권을 발행하듯 세상 어디에도 없는 향수를 탄생시킨다. 마치 불멸의 명작을 남기려는 듯. 서촌 아름지기 공간에서 제시카를 위한 향수를 컨설팅하면서 제시카와 그가 나눈 짧은 이야기.
Frederic Malle(이하 F) 저의 작은 스토어에 오셔서 기뻐요.
Jessica(이하 J)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해요.
F 우리의 모든 향수는 세계 최고 조향사들의 작품이지요. 겉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지만 프랑스 책처럼 생긴 상자 내부에 든 유리병에는 완전히 다른 향이 담겼어요. 오늘 당신에게 제안해주고 싶은 향이 있어요. 오늘 제가 보기에는 ‘이리스 뿌드르(Iris Poudre)’가 잘 어울릴 것 같네요.
J 음… 향이 좋네요.
F 이 향은 기존에 당신이 쓰던 ‘윈 로즈(Une Rose)’보다 조금 더 길들인 느낌이지요. 몸에 닿는 순간 그대로 몸에 감길 거예요.
J 정말 신기하네요. 너무 좋아요.
F 또 다른 하나는(부디 이 향도 당신의 마음에 드는 행운을 누리길 바라며…) 바로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Portrait Of A Lady)’예요.
J 아, 이 향에 대해서도 많이 들어봤어요. 굉장히 우아한 느낌이에요.
F 다른 향에 비해 성숙한 느낌인데, 이 향이 완성되었을 때 마치 폭풍이 몰아치듯, 순간적으로 기적이 일어난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지요.
J 당신은 상대방을 만났을 때 무엇을 보고 맞는 향을 찾아주나요?
F 상대방이 입은 옷과 전체적인 스타일뿐 아니라 말이 많은지 조용한지, 말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고 말하는지 아닌지 등을 유심히 바라보지요.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에서도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고요.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입은 옷의 색을 보아요. 당신이 입은 옷은(제시카는 도톰하고 흰색에 가까운 아이보리색 니트와 검정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약간 겨울 느낌이 나기도 하고, 컬러가 많지도 않지요. 그래서 당신을 보고 바로 떠오른 향이 ‘이리스 뿌드르 (Iris Poudre)’였답니다.
프레데릭 말은 제시카의 향을 컨설팅해주면서 조향사가 향수를 만드는 작업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향이 만들어지기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 심혈을 기울이니 ‘작품’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그는 향의 창조자이자 조력자이지만 하나의 향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 향은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한다. 이 향을 입는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각각의 삶을 가지게 되니, 이런 그의 철학이야말로 사람들이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에 열광하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Portrait of a Lady
프레데릭 말이 제시카에서 추천한 두 번째 향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이 향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대표 향수이다. 프레데릭 말은 이 향수가 전하는 느낌은 뭔가 옳은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치 기적이 일어난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다른 향들에 비해 성숙한(그는 이를 ‘Red’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향이라고.
Winter Garden
투베로즈, 우리말로 월하향이라 불리는 이 꽃은 밤이 되면 달콤하고 파우더리한 향이 더욱 진해지면서 보드랍고 여성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긴다. 여기에 조향사가 캘리포니아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코코넛과 화이트 머스크, 오렌지 플라워 에센스가 더해져 탄생한 ‘카날 플라워(Carnal Flower)’의 플로럴 향은 풍성하지만 전형적이지 않다. 햇살 아래 다채로운 꽃과 풀로 뒤덮인 향기로운 정원을 연상시키는 청초한 향이다. 그런가 하면 ‘프렌치 러버(French Lover)’는 달콤쌉싸래한 향이 나는 안젤리카의 에센스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남성적이면서 우아한 향이다. 묵직한 머스크와 파촐리를 베이스로 플로렌스 지방의 아이리스 향을 더해 무심한 듯 섬세하고 우아한 파리지앵을 떠올리게 한다.
- 프리랜스 에디터
- 송시은
- 포토그래퍼
- 김희준
- 모델
- 제시카
- 스타일리스트
- 정진아
- 헤어
- 백흥권
- 메이크업
- 박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