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방랑자 vol.4 –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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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새로운 계절을 목도한 더블유 패션 에디터들이 경험하고 느낀 그 모든 것들! 뉴욕, 런던, 밀란, 파리를 종횡무진으로 넘나들며 2019 S/S 시즌을 향해 내달린 에디터들의 ‘실전 패션위크 다이어리’가 펼쳐진다.

쇼쇼쇼!!

압도적인 규모와 독특한 아이디어로 늘 기대를 품게 만드는 파리 패션위크. 생로랑은 에펠탑 앞에 따듯한 캘리포니아를 펼쳐놓았다. 해가 저물 즈음 밝게 빛나는 야자수 조형물과 바닥을 채운 물, 반짝이는 에펠탑은 환상적으로 어울렸다. 로에베의 쇼장에서는 상의를 벗고 무미건조하게 LP 기계를 만지며 돌아다니는 훈남이 등장했고, 오프화이트는 육상 트랙을 만들어 모델들이 각자의 템포로 서로를 추월하는 장면을 연출하도록 했다. 릭 오웬스의 거대한 캠프파이어는 황홀할 정도로 멋졌지만, 엄청난 불의 열기로 땀에 젖은 채 쇼를 봐야만 했다.

JUNYA WATANABE

JUNYA WATANABE

JUNYA WATANABE

데님 마스터

이른 아침 찾은 준야 와타나베의 런웨이에 울려 퍼진 퀸의 음악은 그의 이번 시즌을 압축해 설명해주었다. 의미를 담아 해석하자면,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밴드 퀸과 가장 대중적인 소재 데님의 선택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 그는 오래도록 수집한 데님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펑크 무드에 접목했고, 50년대 고전적인 실루엣에 가장 흔하고, 구하기 쉬운 화이트 티셔츠와 믹스해 낭만적 터치를 불어넣었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늘 함께하는, 가장 평범한 옷감인 데님을 가지고 이토록 고귀한 아트 피스로 변모시킬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에디가 돌아왔다 (2)

에디가 돌아왔다

이번 파리 패션위크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돌아온 에디 슬리먼이다. 셀린으로 깜짝 복귀를 알린 후 선보이는 첫 번째 시즌이니까. 우려 반, 기대 반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그 결과물이 드디어 공개됐다. 역시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피비를 사랑하던 셀린 마니아들은 셀린이 아닌 ‘셀로랑’이라며 눈물을 흘려야 했고, 에디를 그리워하던 이들은 ‘에디스러운’ 셀린에 반가워했다. 한동안 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듯. 재미있는 건, 셀린 쇼가 끝난 후 피비의 유산을 사야 한다며 셀린 아웃렛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는 웃지 못할 후문.

파리-1 그랑팔레 안의 샤넬 해변

샤넬의 해변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폭포를 만들고, 디지털 월드를 펼치는 등 차원이 다른 무대로 늘 화제에 오르는 샤넬. 이번 시즌에는 그랑팔레 안에 무엇을 탄생시켰을까? 바로 인공 해변! 고운 모래와 파도, 그 위를 맨발로 워킹하는 모델들을 보니 더없이 아름다운 이국의 해변으로 초대받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샤넬에는 한계라는 단어가 아예 없는 게 아닐까. 럭셔리 하우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본을 동원하고, 비상한 상상력을 더해 세상에 환원하는, 제대로 돈 쓸 줄 아는 브랜드, 바로 샤넬이다.

오 마이 뮤즈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 씨엘은 이번 시즌 파리의 가장 큰 이슈인 셀린 데뷔 쇼를 치를 에디 슬리먼을 축하하기 위해 셀린 쇼장을 찾았다. 하이더 애커만 쇼의 틸다 스윈턴, 샤넬 쇼 단골손님 퍼렐이 그렇다. 모든 프레스들의 시선이 향하고, 셔터가 쏟아지는 가장 특별한 순간!

철학가 레이 가와쿠보

복부가 임신한 것처럼 보이도록 패드를 채운 옷을 입고 나온 모델이 꼼데가르송의 첫 번째 모델이었다. 그뿐 아니라 런웨이 모델들의 머리가 모두 백발이었다! 이는 여성과 창조자가 짊어지는 부담이 평생에 걸치는 것이고, 더없이 고단함을 암시한 대목. 레이 가와쿠보는 여자의 인생을, 그리고 그 안의 미학적 아름다움을 그만의 방식으로 조명하고 그만의 방식으로 경의를 표했다. 디자이너의 철학적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마음을 깊이 움직이는 쇼였다.

파리-2 수박 체리 모자 톰브라운 (1)

이상한 나라의 쿠튀리에
톰 브라운은 레디투웨어를 하지만, 그 디테일과 면면을 들여다보면, 쿠튀르 디자이너라 해야 마땅하다. 쇼장에 가면 오랫동안 공들여 지었음이 분명한 옷들을 만날 수 있어 감동이 밀려온다. 이번 시즌 그는 스테판 존스에게 헤드피스를 맡겼다. 극적이고 화려한 가면,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과일 헤드피스는 톰
브라운의 기괴한 상상력에 힘을 더했다. 장인과 거장의 만남이 불러온 시너지를 제대로 만끽한 쇼.

파리-3 비디오 동굴 발렌시아가

비디오 동굴
동시대를 반영하는 것을 넘어 아예 선도하는 브랜드는 발렌시아가가 아닐까? 이번 시즌 캐나다 미디어 아티스트 존 래프맨(Jon Rafman)과 협업해 만든 비디오 동굴은 쇼에 나온 룩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은 발렌시아가 룩에 판타지를 더하기에 더없이 적합했으니 말이다. 동시대를 대변하는 디지털 영상과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발렌시아가의 리바이벌 패션의 이질적 만남이 쇼에 재미를 더한 포인트.

패션은 즐거워
마린 세르의 포켓 드레스, 톰 브라운의 파인애플과 휘슬 소녀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거대한 곱창 드레스, 알렉산더 매퀸의 아찔한 액세서리, 발렌티노의 왕모자, 꼼데가르송의 디테일까지, 아름답고, 위트 넘치며, 경건하고, 때론 오만하기도 한 모든 것들. 이 매혹적인 것들을 품은 패션이 주는 즐거운 모멘트!!

패션 에디터
정환욱,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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