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여자는 조신해야지’. 호랑이 아이코스 빨아들이던 시절 이야기를 아직도 하는 사람이 있다. 5분 충전으로 600km를 달리는 전기차가 도로에 나오고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불계승을 거둔 지 2년이 지났다. 아직도 사회는 조선시대와 다를 바 없이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바야흐로 여성의 삶을 여성의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이 필요한 시대. 고구마에 사이다처럼 등장한 작품이 있다. 쫓아와서 연락처를 묻는 남성에게 “제가 예쁜데 왜 그쪽에게 연락처를 알려드려야 하죠?” 뼈를 때리는 4컷 만화. <썅년의 미학> 민서영 작가는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여성을 ‘썅년’으로 정의한다. 여자는 얌전하고 상냥하고. 그러면서 또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요부인 게 좋다고? 그게 바로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여성의 이미지가 아닐까? 민서영 작가는 외친다 “이기적인 쌍년이 되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겠노라.”
다소 센 단어 ‘썅년’과 고상한 단어 ‘미학’의 조화. 왜 제목이 ‘썅년의 미학’인가요?
여성이라는 성별은 남성에 비해서 강요되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잖아요. 얌전해야 하고, 상냥해야 하고. 그게 바로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여성의 이미지입니다. 이런 사회 통념에 반하는 여자들은 그동안 항상 있어 왔어요. 다만 부르는 단어가 계속해서 바뀌었을 뿐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단어가 뭘까 생각해보니 ‘썅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썅년의 미학’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저는 스무 살 무렵부터 연애와 섹스에 대한 칼럼을 썼고, 그 외에도 웹 소설을 썼어요. 가끔 제 일을 소개할 때마다 마주치는 어떤 무례함이 있더라고요. 노골적으로 저의 사적인 부분. 그러니까 섹스에 대해 물어온다던가, 자신의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내가 만만해 보이나?’ 그때 겪은 일을 한두 컷, 혹은 4컷짜리 만화로 그려서 SNS에 올렸어요. 반응은 폭발적이었죠. 그렇게 제목도 없이 그렸던 만화가 바로 <썅년의 미학>의 전신이었어요. 뭐, 이건 대외적인 이유고요. 막상 그릴 때는 그동안 저를 포함한 여자들에게 숨 쉬듯이 ‘빻은 말’을 하던 사람들을 상대로 ‘너도 어디 한 방 당해봐라’ 그런 생각으로 그렸습니다.(웃음)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다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인터넷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제가 물리적인 피해를 입을까 봐 그게 걱정이 되었나 봐요. 여전히 그런 걱정은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에요. 소재도 주고요. 이런 주제로 함께 토론까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썅년의 미학’은 여성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기도 하지만 소수의 반대 여론이 있기도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반응은 무엇이었나요? 그것을 보고 본인이 든 생각은?
가끔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들어요. 처음에는 충격을 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사람이 아니니까 저런 말을 하나보다’라고 생각해요. 자기 기준으로만 모든 걸 멋대로 판단하는, 그런 이기적인 목소리를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요? 이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그런 유치한 싸움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저는 그런 악질적인 욕설보다는, 같은 여성이 말하는 ‘너무 지친다. 그냥 (살던 대로) 살면 안 되냐’ 같은 반응이 괴롭게 느껴져요. 얼마나 힘들면 저런 말을 할까. 만화를 그릴 때마다, 글 한 줄 한 줄을 쓸 때마다 말 그대로 억장이 무너져요. 하지만 현실은 아픈 법이니까. 현실을 직시해야 바꿀 수 있고, 바뀐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덜 불편할 거예요.
만화를 보면서 속이 후련할 때가 많아요. 본인이 그리면서 가장 통쾌했던 장면을 꼽자면?
가끔 “현실에서는 절대 이렇게 못한다.”라는 반응이 있어요. 저는 그것이야말로 이 만화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해요. 현실에서 못하니까 만화가 있는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개도 ‘안돼’ 하면 알아듣는데, 너는 왜 사람 새끼인데도 못 알아 처먹어?”라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독자들이 공감할만한 가장 황당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저는 무례를 저질러놓고 당당한 사람을 정말 싫어해요. 만화로도 그렸던 에피소드지만 지하철에서 겪은 ‘쩍벌’ 이야기에요. 사실 저는 모든 ‘쩍벌’들이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 조금 무지하거나 무감각한 사람인 거죠. 그래서 저는 말해요. 톡톡 치고, “다리 좀 오므려 주세요.”라고. 전에는 ‘죄송한데’라는 말을 붙였는데 요즘에는 안 해요. 그럼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어요. 얼른 오므리는 쪽, 되려 적반하장 하는 쪽이에요. 저도 말할 때 덜덜 떨려요. 혹시라도 상대방이 주먹이 날아올까 봐. 그래도 말은 해야죠. 창피한 줄 알라고.
작가님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요?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가장 개인적인 게 정치적이라는 말이 있죠. 하지만 이 말도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페미니즘이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서로가 존중받고 존중하는 사회입니다.
웹툰의 ‘53화, 남자도 할 수 있는 페미니즘’ 편이 기억에 남아요. 남성들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요?
상대방의 상황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사람은 절대로 타인을 100% 이해할 수 없어요. 그렇기에 이해할 수는 없어도, 인정은 해야겠죠.
여성들은 어떻게 행동하면 될까요?
저는 여성들이 더 많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 너무 무겁죠. 그리고 동시에, 그런 서로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성도 사람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거든요. 우리가 서로 관대해지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여성을 너그럽게 봐주겠어요.
작가님의 롤모델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모든 여성들이 제 롤모델이에요. 어떤 작가가 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업신여기는 작가는 되고 싶지 않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썅년’은 무엇인가요? 이 사회에서 ‘썅년’이 꼭 나쁜 말일까요?
제 만화에 등장하는 ‘썅년’은 나쁜 여자가 아니에요. 굳이 말하면 사회의 무례에 맞서는 사람이죠.그런 무례를 지적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사실 그 단어가 뭐가 그리 좋겠어요. 어쨌든 욕인 데. ‘썅년’ 임을 자처해서라도 스스로를 위해 살고 싶다는 슬픈 외침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그게 페미니즘이 맞아요!
- 컨트리뷰팅 에디터
- 박한빛누리
- 사진
- 재담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