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무대에서, 단편영화에서, 이들의 얼굴을 봤다면 앞으로 비상할 그 이름을 기억해두자.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궁금한 남자 신인 배우 셋을 만났다.
양지일의 순애보
단편영화 <프리버드>, <가해자>, <잠몰>, <레슨>
수영선수를 꿈꾸는 소년이 있다. 운동에 매진해야 하지만, 거두고 살아야 하는 형이 늘 마음의 짐이다. 형이 하반신을 못 쓰게 된 건 소년의 실수 때문이니까. 형을 돌보느라 점점 수영할 시간을 빼앗긴 소년은 이제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데, 정말 벗어날 수 있을까? 단편 영화 <잠몰>의 줄거리다. 25분 동안 소년이 된 양지일은 비극이 벌어지기 이전 형제의 시절을 보여주는 단 몇 초 동안에만 웃음소리를 들려준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 벗어나기 힘든 굴레. 혹은 죄책감에 관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잠몰>의 소년이 수영을 하러 물속으로 들어갈 때면 곧 치고 올라올 힘찬 발차기가 느껴지는 게 아니라 갑갑하기만한 저 밑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해 열린 제16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절대악몽’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이 영화는 한동안 잊고 지낸 단편영화의 매력을 깨닫게 한다. 아득한 물속으로 침잠하는 25분 동안의 경험이 꽤 후유증을 남기지만 말이다.
양지일은 호텔 셰프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요리를 워낙 잘한 그는 군대에서도 그냥 조리병이 아니라 참모총장의 관사에 가서 요리를 해주는 공관병이었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훨씬 전부터 그의 의식 밑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연기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대신, 해본 적 있는 요리는 뛰어나게 잘했나 보다. “요리는 그저 잘 했어요. 갈망하지는 않았죠. ‘종국에는 뭘 하고 싶은 것인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회피하고 산 건 아닌가’ 자문했어요. 그러다가 연기에 도전해봤을 때, 지금까지 잘못 살았다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죠. 왜 진작 도전하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연기와 만났을 때의 감정을 이런 식으로 고백하는 건 처음 들어봤다. 그는 연기에 빠졌기 때문에, 연기라는 세부로 들어가 더욱 ‘꽂히고’ 싶어한다. 눈물이 많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연기를 너무나 하고 싶다는 갈망이 차 올라서 울었다고. 연기라는 미지의 대상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스킨십을 하면서 벅참과 설렘을 알았지만, 그 대상과 더욱 뒹굴고 싶다는 마음에 양가적인 감정의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연기가 뭔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한 사람을 온전히 다 활용해야 하는 일이라는 건 알아요. 손재주나 발재주, 머리에 재주가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성격으로요. 얼굴과 온몸과 감정 그 모든 것을 다 써야 하는 일, 그래서 귀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연기를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앞도 뒤도 재지 않고 이렇게 오롯이 사랑을 내비치는 순정파라니. 평소에는 또래 남자들처럼 장난도 잘 치고 웃을 일에 다 웃지만, 신성한 연기 이야기만 하면 두 손을 모으게 된다는 사람. 자신에게서 연기를 사랑한다는 사실만 놔두고 나머지 불필요한 것들은 방 청소 하듯이 버리고 있다는 이 신인 배우를, 누군가는 곧 알아봐줄 것이다. 불순물 없이 순도 높은 마음이란 이 시대에 귀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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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신사의 20주년 기념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대사는 한 마디였는데, 결코 쉽지 않았다. “엄마… 고마워.” 그의 필모그래피엔 영화 <군함도>도 있다. 군함도에 있던그 수많은 무리 중에 ‘점’처럼 존재했다.
한 번 보고 나서,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영화는 <타이타닉>이다. 너무 많이 울었고, 당시 기억이 소중해서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
PT는 물론 요가와 필라테스를 꾸준히 한다. 요가가 뭔지 알게 되면, 계속 할 수밖에 없다고.
손승원의 다면적 얼굴
드라마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JTBC <청춘시대 2>
뮤지컬 <그날들>, <헤드윅>, <벽을 뚫는 남자>
연극 <알앤제이>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리모컨을 쥔 채 침대에 누워 무심코 보다가, 자세를 고치고 앉아 검색창을 두드리게 만든 드라마였다. ‘이거 뭐지?’ 싶어서. 정극과 시트콤 사이를 오가는 재기 발랄한 극은 낯선 신예들이 이끌어갔고, 낯설지만 미흡하진 않은 그들은 젊고 유쾌한 게 이리도 좋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줬다.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와 <논스톱>의 김기호 작가가 오랜만에 피워낸 웃음 속에서, 동그란 금테 안경을 쓴 명랑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말이 좋아 작가지, 반백수인 청년 봉두식. 망가지는 캐릭터라기에는 러블리했던 그 봉두식과 동그란 안경을 벗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임하는 손승원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실 만화 속 인물 같았던 봉두식은 <청춘시대 2>에서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인 송지원(박은빈 배우)과 로맨스 라인을 이루던 임성민과도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손승원을 잘 알지 못하는 당신이 두 드라마를 본 시청자이고, 오늘의 사진 속 손승원을 보고 있다면, 한 남자를 제각기 다른 인물로 인지할 가능성마저 있다.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손승원은 뮤지컬 무대에서는 꽤 경력을 쌓은 배우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출연할 기회를 얻은 그가 단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스물네 살 때 <헤드윅> 출연 제의 전화를 받았어요. 처음엔 장난 전화인 줄 알았죠. 잘해야 본전인 작품이라 하지 말까 싶었지만, 결국 제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에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게 만든.” 그는 연기할 때 외에는 목소리를 크게 내지도 않고, 감정을 잘 내색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지금껏 이성에게 주로 어떤 말을 들었냐고 물어보니 ‘속을 알 수 없다’와 ‘차분해서 좋다’라고 꼽은 남자다. 배우 중에는 늘 무시무시한 연기를 해내고도 평소엔 ‘조용조용’하니 내성적이라는 케이스가 더러 있긴 하다. “연기할 때, 누군가나 뭔가를 참조하기보다는 제 속에 있는 모습을 끌어내려고 해요. 제 안에서부터 연기를 시작하려고 하죠. 그래서 평소의 저와 다른 연기를 하면 좀 해소가 돼요. 예를 들면 소리를 지른다거나(웃음).”
그는 7월부터 <알앤제이>라는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재로 한 연극은 엄격한 가톨릭 학교를 배경으로, 금지된 셰익스피어 서적을 몰래 찾아봤다가 점점 그 극에 빠지는 학생들의 이야기다. 손승원을 비롯한 네 남자 배우가 등장해 극 속의 극 형식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는데, 독특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관객석의 앞뒤로 배우가 움직이는 무대 설치, 강렬한 빨간 천 하나가 칼이 되기도, 또 옷이 되기도 하는 식으로 행위 예술처럼 곁들여지는 점 등이 그렇다. 손승원은 동국대학교에서 9월 말까지 계속되는 <알앤제이>에 당분간 집중한다. “공연은 한 번 무대에 오른 후 막이 내릴 때까지 감정을 끊지 않고 이어가요. 관객들 앞에서 나 하나만 생각하면서 연기할 때도 많고요. 하지만 방송에서는 단번에 뭔가를 끌어올리고, 해내야 해요. 카메라 위치나 순간의 표정 등 고려할 것도 많고요.” 손승원을 잘 아는 사람들은 〈으라차차 와이키키>에서 밝은 연기를 선보인 그에게 앞으로 그런 역할을 더 많이 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가 봉두식처럼 웃기든, 헤드윅처럼 포효하든, 보다 많은 매체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반가울 것이다. 다른 걸 할 때는 몰라도 연기할 때만큼은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니, 잘 사는 소식도 확인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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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관심이 많다. UFO, 외계인 등등의 자료를 잘 찾아보고 모으기도 한다.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천문학자를 꿈꿨을 거라고.
지금껏 만난 감독과 작가에게 받은 피드백 중 그가 가장 인상적으로 들은 말은 ‘눈이 좋다.’
그는 분당에 있는 계원예고를 졸업했다. 어머니는 분당 정자동에서 카페를 운영하신다.
기도훈의 유쾌 통쾌 상쾌함
드라마 SBS <키스 먼저 할까요?> MBC <왕은 사랑한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대신 지난해 방영한 <왕은 사랑한다>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왕세자 임시완, 그를 주군으로 모시는 홍종현,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여자 윤아. 드라마는 아름다웠다. 입대를 앞둔 임시완과 화면 너머로 석별의 정을 나누고, 고려 시대에 출몰한 서구적 모델 홍종현을 감상하며, 거기 등장하는 모든 인간에게 사랑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었던 윤아를 긍정하는 마음만으로도 즐거웠으니까. 그리고 왕세자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존재가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각 잡고 서 있는 호위무사가 아니었다. 송지나 작가는 가끔 실수도 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는 사회 초년생을 호위무사 캐릭터에 녹였다. 연기 초년생 기도훈은 그렇게 지상파에 데뷔했다.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김선아는 후천성 청각 장애를 앓는 바리스타 청년에게 가끔 속마음을 털어놨다. 선하고 싱그러운 키다리 청년은, 듬직한 큰 나무처럼 늘 제자리에 서 있었다.
드라마로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농구 선수를 했거나 모델 생활을 했을 거야.’ 기도훈은 10대 때 정말 농구를 했고, 모델로 활동했다. 드라마 데뷔작에서는 호위무사로 단단한 갑옷을 입었는데, 모델 데뷔 쇼에서는 역시 단단한 마네킹 안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서프라이즈’ 하듯 얼굴 부분만 쏙 드러내어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카메라 앵글만 생각하면 체구가 큰 사람은 행동에 제약이 생겨요. 연기하다 손을 번쩍 들어 올리기라도 하면 제 팔이 앵글 밖으로 나가버리니까요. 키가 큰 연기자일수록 디테일에 신경 써야 한다는 조언을 들은 적 있는데, 두 번째 작품을 찍고 나니까 그 말이 정말 와닿아요.”
키 큰 남자는 싱겁다고 했던가?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도훈도 엉뚱하면서 씩씩하다. 테스트 촬영을 하며 생의 희로애락을 표정에 담는 행위만으로 모든 스태프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그의 사는 태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은 따로 있다. “20대 초반 때 오디션에 자꾸 떨어지니까 촬영 현장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현장을 겪고 싶어서 FD에 지원했죠. 그 생활을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면, 혹시나 스태프들이 툴툴거릴 땐 다 이유가 있다는 것(웃음). 스태프가 얼마나 고된 지 알기 때문에 제가 NG를 낼 때면 너무 죄송했어요.” 그는 스스로 ‘뭐든 겁 없이 일단 시작하고 보는, 원하는 것에는 행동력이 좋은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시작을 주저하지 않고, 무엇보다 호쾌한 기운의 소유자. 체격만큼이나 정신도 다부진 기도훈을 조만간 더 자주 목격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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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친구들과 비누를 만들곤 한다. 만들고 나서 몇개월 숙성한 후 쓰는 비누. 그 세계가 의외로 재밌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 세안용 비누도 직접 만들어 쓸 예정.
그의 말수가 많아지게 만드는 이야깃거리는 동물, 경제, 주식, 여자, 맛집, 레저.
아직 기도훈을 캐스팅할 생각을 미처 못한 관계자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앞으로 더 빛나겠지만, 빛날 물건은 빨리 잡아 가시는게 좋아요.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잖아요.”
- 피쳐 에디터
- 권은경
- 패션 에디터
- 고선영
- 포토그래퍼
- 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