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개의 갤러리가 점령한 현대 예술의 도시에서 꼭 한 번 들러봐야 할 갤러리와 전시, 그 주변을 소개한다.
킨들 베를린, <Defying Gravity>
지금 베를린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지역을 꼽자면 노이 쾰른(Neukölln)일 것이다. 이미 유수의 갤러리와 뮤지엄이 들어선 중심가를 벗어나 신진 작가들의 스튜디오가 속속 들어서고 있는 곳. 얇은 가이드 북 속에 소개된 친분 없는 큐레이터의 문장에서 길어올린 이 낯선 갤러리 이름을 찾아 가는 여정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건축 자재가 널부러진 개발 지대를 지날 때의 의뭉스러움, 종종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강풍,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던 길을 포함한 어우선한 분위기 모두가 밀라노의 폰다지오네 프라다를 찾던 그 순간과 꼭 닮아 있었다. 킨들 베를린(Kindl Berlin)은 1920년대에 지어진 맥주 양조장 킨들 브루어리를 개조한 건물에 들어서 있다. 2011년 독일인과 스위스인 부부가 매입한 이 건물의 압권은 카페와 보일러 하우스(Boiler House)이라 불리는 전시관. 맥주를 발효시켰을 6개의 거대한 구리통이 그대로 오브제가 되어 카페 손님들을 맞고 있으며 가로, 세로, 높이가 약 20m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보일러 하우스에는 한 번에 한 작가의 한 작품만 전시된다. 사방이 뻥 뚫인 공간에 놓인 작품에 대한 주목도는 높을 수 밖에 없지만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는 벽과 창, 문을 가까이서 들여보는 재미도 크다. 메인 전시관인 파워 하우스에서는 7월 15일까지 현대 미술 작가인 타이요 오노라토와 니코 크렙스(Taiyo Onorato & Nico Krebs)의 전시 가 진행된다. 미국을 횡단하면서, 스위스에서 몽골을 여행하며, 베를린에 거주하며 빚은 지난 10년 간의 사진, 영상, 설치 작품이 한 데 모여 있다.
C/O 베를린, <Irving Penn, Centennial>
패션 업계에 발을 담구고 있는 이라면 한 번쯤 어빙 펜의 이름을 들어 봤을 것이다. 피사체의 인상을 또렷하면서도 깊이 있게 담아 강렬한 이미지를 완성해 내는 흑백사진의 대가. 1943년 보그의 커버 사진을 시작으로 수많은 유명 인사와 작업한, 지난 세기의 손꼽히는 패션 포토그래퍼이기도 하다. C/O 베를린에서 7월 1일까지 열리는 <Centennial>전은 베를린에서 20년만에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베를리너들은 지금 베를린에 온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 중 하나라 입 모아 말한다. 사진과 비주얼 아트를 주로 선보이는 C/O 베를린은 번잡한 베를린 동물원역(Bahnhof Zoologischer Garten) 바로 아래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역을 중심으로 또다른 사진 갤러리인 헬무트 뉴턴 재단(Helmut Newton Stiftung)과 이 지역 핫플레이스인 비키니 베를린, C/O 베를린이 삼각형을 그리며 이웃한다. 모두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 동시대 인물이자 패션 포토그래퍼로 활동했던 어빙 펜과 헬무트 뉴튼의 사진을 서로 다른 무드의 공간에서 비교 관람해보는 일은 지금 베를린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블레인 사우던 베를린, <Quinceañeras>
베를린의 중심 미테(Mitte)보다 집중적이면서 한가롭게 둘러볼 수 있는, 대형 뮤지엄이 밀집해 있는 뮤지엄 섬보다는 소규모지만 개성있는 갤러리를 찾는다면 포츠다머 거리(Potsdamer Straße)의 메르카토르 헤페(Mercator Höfe)를 추천한다. ‘아크네 스튜디오 포츠다머 지점’을 검색하면 쉬이 닿을 수 있는 이곳은 8개의 서로 다른 연식의 건물이 모여 패션, 아트, 디자인 씬을 형성하고 있다. ‘헤페’는 안뜰이라는 뜻. 대로변 건물의 입구를 지나 그 안뜰로 들어서면 편집매장 ‘안드레아스 무쿠디스(Andreas Murkudis)’과 생소한 이름의 갤러리 몇 개가 등장한다. 그중 하나인 런던 기반의 갤러리 블레인 사우던(Blain Souther)에서는6월 23일까지 프랭크 티엘(Frank Thiel)의 사진전이 열린다. 남미권 문화인 ‘Quinceañeras’는 한국의 성년의 날과 비견되는 일종의 기념일로 15세가 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다. 독일 출신의 사진 작가로 사회와 정치적 상황이 드러나는 건축과 인물 사진을 다뤄온 프랭크 티엘은 이번엔 쿠바로 눈을 돌려 성년을 맞은 여성들을 담아 냈다. 수도 아바나의 건물, 공공시설을 배경으로 헤어 및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의 손길이 닿아 마치 하나의 화보처럼 완성된 사진은 정제되어 있지만 (이들의 정치적 상황처럼) 불안정하다. 그 양면성은 피사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짊어진 다부진 포즈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앳된 소녀의 모습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 표정. 이 모든 것을 감상하기에 오래된 건물을 갤러리로 개조한 블레인 사우던 베를린은 더 없이 완벽한 장소기도 하다.
- 컨트리뷰팅 에디터
- 신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