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쇼핑하세요

이채민

서울에서 지켜봐야 할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제품을 손에 넣고 싶다면, 아트 플랫폼 카바를 탐험하라.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열린 카바 팝업 스토어.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열린 카바 팝업 스토어.

지난 4월 말, 한남동 유엔빌리지의 한 건물에 갤러리이면서 디자인 숍의 구색까지 갖춘 모종의 공간이 한동안 문을 열었다. 새로 론칭한 ‘카바(CAVA)’의 팝업 스토어 현장이었다. ‘지금 서울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실력 있는 작가들은 누구일까?’ 카바는 이 질문에 응답하는 온라인 셀렉트 숍 형태의 아트 플랫폼(ca–va.life)이다. 흥미롭고 실력 있는 작가란 ‘미술인’으로 규정할 수 있는 파인 아티스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한 예술가에, 디자이너에 눈뜨게 하는 매개체는 바로 그들의 작품과 제품이다. 눈으로 기억해 마음과 머리에 담고 싶고, 결국 갖고 싶게 만드는 그것들. 소설가 조르주 페렉이 <사물들>에서 소비를 향한 욕망과 함께 묘사한 사물들의 풍요로운 면면처럼, 카바가 찾고 모은 작가들의 스펙트럼은 당대 문화 신에 두루 걸쳐 있다. 미술, 디자인, 사진, 가구, 세라믹, 패브릭, 패션은 물론 음악과 비디오아트까지, 유무형을 넘나든다. 팝업 스토어는 카바가 온라인 스토어를 론칭하면서 아트 피스를 실물로 선보인 자리였다. 감상과 함께 구입이 가능했음은 물론이다.

아몬드 모양을 그대로 본따 펜던트로도 사용할 수 있는 순금 오브제는 콜드 프레임의 작품. 돌잔치 선물로 투박한 반지를 사야 할 때 떠오를 것.

흘러내리는 시멘트 형상의 뚜껑이 귀여운, 설치 미술가 이미정의 나무 상자.

이송희는 가로수를 묘사한 본인의 펜 드로잉을 양초 버전으로도 선보인다.

유물 느낌이 독특한 변상환의 조각품 제목은 ‘배부른 크로커다일.’

식물을 매개로 여러 일을 도모하는 팀, 파도식물의 화분 시리즈.

카바는 넓은 영역에 걸쳐 가장 핫한 작가들을 확인할 수 있는 색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잡지와 비슷한 맥락을 띠기도 한다. 그 형태는 아주 다르지만 말이다. 이 반가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탄생시킨 인물이 바로 패션 에디터 출신이기 때문일까? 그래픽 디자이너 최지연, 건축 디자이너 박치동과 함께 카바를 만든 기획자이자 디렉터인 최서연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하고 있는지 ‘레이더’를 가동하다, 그들의 작품을 소유하거나 소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이렇게 일을 벌였다.

산업 디자이너와 사진가로 구성된 밀리언로지즈의 사진 ‘Chewing Gum’은 다양한 크기로 판매된다.

산업 디자이너와 사진가로 구성된 밀리언로지즈의 사진 ‘Chewing Gum’은 다양한 크기로 판매된다.

“갖고 싶은 그림인데, 갤러리가 아닌 집 안에 두기엔 그림 사이즈가 너무 큰 경우가 있어요. 그런 작가들에겐 작품을 좀 더 작은 에디션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또 누군가에게 신경 써서 좋은 취향인 담긴 선물을 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오브제를 찾다 보니 작가들과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식으로 가지가 늘어났어요.” 서울의 리빙 편집숍을 순회하면 결국 비슷비슷한 아이템을 만나거나 터무니없이 고가인 가격표 앞에서 좌절하게 된다. 카바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아트 디자인과 발상은 물론 취향을 좀 탈 텐데, 어쨌든 여태 본 적 없는 유니크한 것들이다. 작가들의 기존 작품을 취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카바에선 작가들과 협업 형태로 작가의 색을 입은 새로운 것을 만들고, 거기에 에디션 넘버를 붙여 한정판으로 선보인다. 그래서 작품 구입은 대개 ‘선 주문, 후 제작’으로 이루어진다, 감질나게도.

박길종의 스툴 겸 사이드 테이블.

길종상가 김윤하의 조명.

가구와 사물 디자이너 서정화의 황동 거울.

디자이너 이상혁의 라운지 체어는 오크나무와 황동으로 제작됐다.

철제 스툴 다리가 45도 회전해 형태를 변형하는 재미가 있다. 스위스인, 한국인 디자이너 듀오 티엘 스튜디오 작품.

철제 스툴 다리가 45도 회전해 형태를 변형하는 재미가 있다. 스위스인, 한국인 디자이너 듀오 티엘 스튜디오 작품.

길종상가 박길종과 김윤하의 다용도 가구와 조명, 가구 디자이너 서정화의 황동 거울처럼 제품이면서 오브제인 것들, 그래픽 디자이너 배민기의 스크린세이버(구입하면 다운로드 링크가 발송된다)나 양희재의 라틴 알파벳 서체처럼 소비 항목으로는 참 특이한 대상도 있다.

그래픽 디자인 듀오 신신의 아이디어와 백남준의 선언이 합체한 거울 조각들.

그래픽 디자인 듀오 신신의 아이디어와 백남준의 선언이 합체한 거울 조각들.

그래픽 디자인 듀오 신신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10주기 추모전에서 선보인 ‘플럭서스 마니페스토’의 일부를 취해 거울 조각을 제작했고, 뮤지션이자 작가인 백현진은 자기 노래 가사를 적은 모자를 ‘백현진 굿즈’의 하나로 제작했다. 그 밖에 카바를 탐험하다 보면 런던, 아인트호벤, 베를린 등에서 활발한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도 만날 수 있다. 뜻을 같이 하고 있는 작가는 현재만 50여 팀.

사진가 최용준, 회화와 영상 작업을 하는 이민주의 사진과 영상을 패브릭으로 제작했다. 마 단위로 판매하며 용도는 구매자 마음.

사진가 최용준, 회화와 영상 작업을 하는 이민주의 사진과 영상을 패브릭으로 제작했다. 마 단위로 판매하며 용도는 구매자 마음.

카바가 아우르는 작가들은 전통적인 방식보다는 매체를 변주하는 데 능하다. 화가, 그래픽 디자이너, 사진가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패브릭에 프린트하여 일상에서 사용 가능하게끔 만드는 프로젝트는 그런 작가들과 함께 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작품을 내 공간에 취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그것을 소비가 가능한 현실로 전환시키고자 한 기획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넥스트 인플루언서의 자리는 아티스트 차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고, 정체성을 바탕으로 매체에 따라 시의적절하고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요. 무엇보다 아티스트란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 줄 아는 존재죠.” 카바의 팝업 스토어는 하반기에도 열린다. 패션 브랜드에서 S/S와 F/W 쇼를 여는 것처럼, 앞으로 1년에 두 번씩은 팝업 스토어라는 런웨이 무대를 마련할 예정이다. 첫 팝업 스토어를 향한 반응이 워낙 뜨거웠기 때문에 예정에 없던 작은 규모의 팝업 스토어를 조만간 또 열게 될 듯 하다.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을 활용해 내년에는 카바를 글로벌 사이트로 확장하고, 그렇게 서울을 넘어 해외 각 도시에서 팝업 스토어를 비롯한 작가들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꾀해, 해외 아트 및 디자인 페어 등으로 진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카바가 품는 예술의 폭이 크고 다양해질수록, 쇼핑을 위해 습관처럼 기웃거리는 내 즐겨찾기 사이트의 성격이 달라질지 모른다. 예쁘고 좋은 것을 자연스럽게 향유할 수 있는 소비 문화란 예쁘고 좋은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감식안만큼이나 의미 있다. 자꾸 지갑 열 일만 생긴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사진
Courtesy of C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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