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을 향해 “두 유 노우 싸이?”라고 묻던 때를 지나,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두 유 노우 BTS?” 라고 묻는 때. 해외 케이팝 팬덤은 자신들만의 취향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해외에 케이팝 팬이 정말로 있는가?’, ‘방탄소년단이 외국에서 정말 인기가 높은가?’ 같은 것들이다. 사실 의심하는 게 자연스럽다. 우리는 ‘입 터는 장사치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다. 평판에 약한 한국인에게, 어떤 상품이 해외에서 사랑 받는다는 주장은 강력한 광고 문구다. 숙취 해소 음료의 CM 송도 맥락 없이 해외 수출을 강조하는 사회 아닌가? 더구나 아이돌 음악은 하찮고 가치 없는 것으로 폄하되어 온 장르다. 한국인은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과 같아서, 김연아나 팀킴이 아닌 아이돌을 사랑한다는 상대방을 납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해외 유학생 중 많은 이들이 케이팝을 좋아한다며 접근하는 현지 팬들로부터 부끄러운 듯 도망치곤 한다. 이런 부조화는 또 다른 난장판을 낳는다. ‘국뽕’이라 부르는 그것, 어쨌든 우리가 이렇게 잘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존감 약한 사람이 갑자기 사랑받으면 종종 과하게 우쭐해진다. ‘세계를 점령한 케이팝’ 같은 표현을 서슴지 않는 제국주의자들(이면서 성차별주의자인 이들)은 공연장에서 금발 백인 여성을 집요하게 찾아 보여준다. 그 반작용으로, 케이팝은 거품이라며 ‘흑인들이 좋아한다’는 근거를 대는 인종주의자들도 있다. 사랑받는 유년기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해외 케이팝 팬들을 접해보면 이들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이를테면 1990년대부터 지누션 등의 CD를 수입해 들었다는 식이다. H.O.T., NRG, 티티마 등으로 발생한 1990년대의 1차 한류는 2000년대 동방신기, 보아, 비 등의 해외 진출로 이어졌다. 아직 동아시아권에 집중하고 있던 케이팝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넓어진 건 역시 2006년 빅뱅의 데뷔부터다. 이후 2NE1이 데뷔하고,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와 소녀시대의 ‘Gee’가 발매된 2009년을 기점으로 케이팝 팬덤은 월등히 성장했다. 각각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해외 팬들이 케이팝을 더욱 왕성하게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든 건 음악을 접하는 새로운 경로였다. 빅뱅이 데뷔한 2006년은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 해다. 유튜브는 일주일씩 기다려 CD를 구매하지 않아도 케이팝을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게 해 준 존재다. 리액션비디오 같은 커뮤니티도 형성됐다. 오늘의 케이팝은 유튜브가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을 타고 해외 팬은 케이팝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어떻게 보면 ‘팬 활동’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를 통합 패키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방탄소년단을 100% 즐기기 위해서는 ‘아미(ARMY)’의 일원이 되어 인터넷 투표 등 단체 행동에도 참여해야 한다는 식이다. 민속촌에 가면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한복을 입고 거닐어보듯 말이다. 이들은 한국식으로 응원봉과 핸드사인을 들고 ‘떼창’을 하며 공연을 관람한다. 또는 어느 아이돌이 선배(Sunbae)를 존중하지 않는다며 화를 내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콘텐츠 속 인종주의나 젠더 의식에 국내보다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해외 팬 사이에서도 아이돌을 비난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사고방식 역시 커지고 있다.
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TV 의존도를 무시할 수 없는 국내 시장과 해외 팬덤에 차이점이 생긴다. 물론 해외 팬들도 한국의 예능 방송을 즐기지만, 번역을 거쳐야 한다는 언어 장벽은 결코 무시할 수없다. 따라서 V라이브 등의 소셜 플랫폼이 해외 팬들에게는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아이돌이 침대에 누워서든 밴에 앉아서든 직접 얼굴을 비춘다는 것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이들이 새로운 케이팝 아티스트를 접하는 경로도 유튜브의 추천 동영상이나 자신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다. 한국의 TV가 제안하는 ‘큐레이션’과는 사뭇 동떨어진 세계다. 음악 방송에 나오지 않는 무수한 케이팝 아티스트도 해외 팬들에게는 엑소나 방탄소년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중으로 소개된다. 애플, 레이샤, BP 라니아, 24K 같은 팀들이 국내 대중에게는 ‘그들의 리그’로 느껴질지라도, 해외 팬들은 이들을 케이팝이라는 우산 속에 거리낌 없이 집어넣고 즐긴다.
이제 아이돌 그룹이 국내에서 인기를 확실히 다진 뒤 해외 진출을 꾀하던 과거와는 세상이 달라졌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팀은 이미 적지 않다. 때로는 ‘역수입’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이 대표적인 예다. 팝의 문법에 익숙한 해외 팬들은 케이팝 특유의 정교한 완성미를 사랑하면서도 음악에 대해 은근히 의구심을 갖는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진정성과 사회적 발언을 겸비한 방탄소년단은 찜찜한 구석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대안이다. 4인조 혼성 그룹 카드(KARD)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감상자를 향해 섹스어필하기보다는 남녀 멤버들 간의 ‘케미’를 강조한다. 마치 케이팝 동아리 같으면서도 성적 긴장이 느껴진달까? 해외 팬들에게는, 케이팝에서 보고 싶었으나 그간 아무도 제공해주지 않던 것이다. 카드는 정식 데뷔 전부터 북남미 투어를 돌 정도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이렇듯 해외 팬들은 자신들만의 취향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한국에서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즐거워 일본에 가져갔더니 한국과는 다른 ‘야키니쿠’가 된 것과 비슷하다. 해외에서 유난히 인기를 누리거나 해외 취향을 겨냥하고 기획되는 아이돌은 앞으로 더 나올 것이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케이팝 커뮤니티의 밖으로 뻗고 있는 지금, ‘해외 팬 취향’은 또 한 번의 변천을 겪을지 모른다. 어느 경우든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럴 때, 케이팝 해외 팬의 존재는 우리가 아이돌과 아이돌 문화를 다시 생각해야 할 이유가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국내의 케이팝 문화는 통째로 ‘수출’되기 때문이다. 이는 더 이상 ‘국뽕’의 차원에서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을 향해 “두 유 노우 싸이?”를 묻던 시대에서,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두 유 노우 BTS?”를 묻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케이팝이 말하는 콘텐츠와 우리의 아이돌 문화를 세계가 보고 있다. 그 결과는 그들이 우리를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 되느냐다. 다시 한번 해외 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글
- 미묘 (대중음악 평론가, 〈아이돌로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