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뛰는 것에서 스타일의 완성으로, 운동화의 지위 승격.
루이 비통의 수장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2018 S /S 시즌, 거의 모든 룩에 아주 미래적인 실루엣의 스니커즈를 신긴 런웨이로 시선을 모았다. 나일론 새틴이 섞인 소재에 높고 커다란 곡선 고무솔을 접목한 스니커즈는 런웨이에 습관적으로 등장하던 하이힐을 근사하게 대체해버렸다. 제스키에르는 한 인터뷰에서 아치라이트로 명명된 이 스니커즈를 디자인하는 데만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처음 루이 비통을 맡게 됐을 때, 스니커즈는 한 종류밖에 없었어요. 이것이 과연 오래 지속될 디자인인지 커다란 물음표를 던졌죠.” 역사적인 유산과 미래적인 디자인을 섞는 데 흥미를 보여온 제스키에르의 어떤 집착(?)이 낳은 결과를 이제야 선보인 것이다. 18세기풍 브로케이드를 섞은 코트와 스타일링할 수 있는 운동화라니. “루이 비통 걸은 혁신적인 운동에 가담한 여성과 같아요. 이색적인 화려함과 모든 스포츠 웨어를 섞을 수 있다면 환상적일 거라고 생각했죠.” 아치라이트 스니커즈는 웨지힐처럼 유치한 모양 대신 키도 높여주고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선언하는 패셔너블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런 혁신도 발렌시아가의 트리플 S 스니커즈의 성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삐져나오는 것도 모자라 터질 듯한 빅맥을 닮은 트리플 S는 세계적인 솔드아웃 행진을 기록했다. 온라인 편집숍 스타일 밥에 따르면 2017년 가장 빨리 팔린 아이템 중 하나로 1시간 안에 모든 물량이 소진됐을 정도. 트리플 S의 성공에 이어 스텔라 매카트니의 이클립스(Eclypse)나 아크네 스튜디오의 맨해튼(Manhattan)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모두 고프코어 트렌드에 해당하는 투박하게 생긴 모양들).
최근 새로 복각된 나이키의 에어맥스 95, 97, 98 도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데 남들과 같은 걸 신기 싫어하는 디지털 패션 키즈는 더 못생긴 모양을 찾아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발굴하는 데 공을 들이기도 한다. 살로몬, 콜롬비아, 아이더 같은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는 물론이고, 기능성이 강조된 비브람의 고무솔을 사용한 알릭스, 아예 등산화 모양을 접목한 스톡홀름의 이티스, 버팔로 런던 등 SNS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를 파리의 더 브로큰 암, 베를린의 부 스토어, 밀란의 슬램잼, 서울의 애딕티드 등 요즘 가장 힙한 편집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인기를 증명하는 셈이다.
스니커즈에 대한 이런 광적인 수요는 라프 시몬스의 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디다스와 협업으로 탄생한 2015 S/S 오즈위고(Ozweego)는 스트리트 컬처를 다루는 하이퍼비스트, 더 베이스먼트 같은 웹사이트에 사진이 공개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간결하고 즉각적인 구매 행위 또한 이 열광에 불을 댕겼다. 스니커즈 덕후들은 위와 같은 사이트에서 리미티드 에디션의 발매 정보를 얻고, 소셜미디어의 ‘드롭(Drop)’ 알람을 기다린다. 제품군과 가격, 발매처 같은 아주 간단하지만 필수 정보를 갖고, 희귀 아이템을 손안에 거머쥐는 희열을 느끼는 것. 온라인의 환경이 이렇다면 직접 제품을 보고 만져볼 수 있는 오프라인은 어떨까? 최첨단 유행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국에서도 고급 패션의 성지 청담동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작년 청담동의 대표 편집숍 분더샵은 스니커즈 전문관 케이스스터디를 따로 론칭했고, 도쿄를 대표하는 스트리트 편집숍 아트모스도 청담동 한복판에 상륙했다. 이들은 각각 J.W. 앤더슨 X 컨버스나 아식스 젤-버즈1, 나이키 애니멀 팩을 단독 론칭하는 등 한정판 스니커즈를 전략적으로 취급한다. 희귀 스니커즈를 직접 만져보고 살 수 있는 창구가 더 늘어 스니커즈 마니아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중. 더불어 스트리트 시장이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 고객의 입김이 세졌다는 것이다. 스투시의 여성복 헤드 제이 민은 지난해 더블유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요즘의 젊음은 유연하고 스마트한 룩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이 점을 정확하게 캐치해야 해요. 기존 스투시의 여성 라인이 지나치게 소녀스러웠기 때문에, 여성들이 박시한 남성복을 구입한 거죠. 우리는 여성 라인의 사이즈와 실루엣을 개선했고, 이제 여성복 안에서도 보이시하고 세련된 유니섹스 라인을 구입할 수 있어요”라고 밝혔다. 크리스탈의 스타일리스트 김예진은 이런 ‘왕발’ 트렌드를 세련되게 연출하는 것에 대해 사실적인 조언을 전했다.
“최근 구입한 나이키 맥스 98이 적당한 레트로 무드를 갖고 있어요. 재킷이나 트렌치코트 같은 아우터에 살짝 운동화를 덮을 듯한 길이의 플레어 슬랙스를 매치해요. 르메르의 유연한 블랙 드레스에 매치해도 좋고요. 너무 새것인 상태보다는 신발이 좀 길들여진 상태에서 더 엉망이 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어려운데, 위험하다 싶을 때 눈여겨보면서 잘 닦아주는 게 중요해요.”
- 패션 에디터
- 이예지
- 포토그래퍼
- 이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