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멘털과 클린 밴디트의 객원 보컬, 에드 시런의 절친, 전직 가라테 선수.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Anne-Marie)는 이런 수식어는 떼어버린 채 오직 자신만의 목소리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인생 추위예요. 지난번 서울에 왔을 때 머문 호텔, 바로 앞에서 구워주던 한국식 바비큐…. 모든 게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한 가지는 절대 몰랐죠. 이렇게 추울 줄은.” 한파의 절정이던 2월 초 더블유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 91년생 영국 출신 뮤지션은 풍부한 표정으로 굉장한 추위, 그리고 한국에 두 번째 방문한 반가움을 표현했다. 처음 서울을 다녀간 것이 일렉트로닉 밴드 루디멘털의 피처링 보컬리스트로 세계를 투어하던 2016년 9월의 일이니, 한파는 짐작도 못했을 만하다. 촬영을 위해 스스로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골라 입은 앤 마리의 다재다능함은 약간 예상을 넘어서는 영역에까지 가닿는다. 예를 들어 어떤 뮤지션도 자신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세계 가라테 챔피언 3회’의 경력을 써넣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그녀의 노래에는 오래 운동을 해온 사람의 활력과 에너지가, 또 여섯 살 때부터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무대에 서온 가수의 농도 진한 드라마가 가득하다.
〈W Korea〉뮤지션들이 프로모션 투어를 할 때 자신의 스타일링 팀을 대동하는 일은 적지 않지만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스스로 해내는 아티스트는 흔치 않다.
Anne – Marie 메이크업도 스타일링도 나에게는 놀이처럼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모두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고 또 추구한다. 그래야 편하게 느껴지며, 그걸 한 내 모습도 나아 보이니까. 특정 브랜드나 디자이너를 선호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다른 사람과 같은 룩을 입은 모습을 볼 때의 기분이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큰 백화점보다는 개성 있는 편집숍, 직접 만드는 의상을 판매하는 숍이나 빈티지 가게 같은 곳에 가서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편이다.
지난번 서울에 왔을 때는 일렉트로닉 밴드 루디멘털과 공연을 2년 정도 하고 있을 때였다. 피처링 보컬로 세계 투어를 함께한 경험은 어땠나?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나는 음악을, 또 노래하는 걸 좋아해왔기 때문에 무대에 서는 일이 힘들 거라 생각한 적이 없는데, 관객들이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을 통해 퍼포먼스의 본질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루디멘털 멤버들도 함께하기에 참 좋은 사람들이고.
여섯 살 때부터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다.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이나 즐거움을 주던 그때의 기억 중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노래를 부른 최초의 기억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런던 공연을 위한 오디션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노래하면서 떨지도 않았다. 무대에서도 마찬가지로 그저 흐름을 타고 즐기면 됐다. 그런데 공연을 매일 몇 달째 하던 중간에 갑자기 긴장하는 경험이 찾아왔다. 그때 나를 지도하던 연출가 선생님에게, “뱃속에 뭔가 있어서 울렁거려요” 하고 얘기했더니 그분이 “응, 이 속에 나비가 있어서 그런 거야” 하며 지퍼를 여는 시늉을 한 다음 날려준 기억이 난다. 그러고는 괜찮아졌다(웃음).
어떻게 뮤지컬 대신 팝 음악 가수가 되었나?
청소년 시절에도 내내 무대에 섰고, 대학도 뮤지컬 전공으로 진학하려고 했다가 18세 무렵 내 목소리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갑자기 미래가 불투명해졌고 두려워졌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뮤지컬보다는 팝 보컬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프로듀서를 한 명 만나서 계약하고, 내 목소리에 맞는 곡을 받았다. 이어 자연스럽게 작곡도 배우게 되었다. 정말 빠르고 신기한 변화였다.
그렇게 진로를 바꾸고서, 더 잘 맞는다고 느껴진 점은 어떤 거였나?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인생에 대해 곡을 쓰고 나 자신에 대해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잘 맞는다 느꼈다. 그리고 오랜 뮤지컬 경험이 있어선지 무대에서 노래하고 나를 표현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감정을 충분히 전달할 줄 안다는 건 언어가 안 통하는 나라들에서 특히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점은?
아직 배우고 있고 발전하는 중이라 잘 모르겠지만, 몇 년 안에는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내 노래가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 좋은 감정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뭉클하다. 바로 그 점이 참 좋다.
루디멘털뿐 아니라 닉 조나스 곡에 피처링하기도 하고, 클린 밴디트와도 노래를 불렀다. 언젠가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다면?
요즘은 로직이나 앤더슨 팩 같은 힙합 뮤지션을 좋아한다. 음악으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뮤지션들 말이다. 음악 산업 언저리에서 있다 보니 돈이 목적인 사람도 많이 보는데, 그들보다는 순수하게 열정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에드 시런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까? 그가 기타를 연주하면서 당신과 함께 부른 노래 ‘Ciao Adios’ 영상이 유튜브 조회수 1300만 회를 넘겼던데.
에드와는 같은 레이블 소속인데, 처음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고 나서 같은 회사 소속 아티스트로 알게되었다. 이 분야에서 처음 만난 가수이자 누구보다 오래된 관계인 셈이다. 그는 정말로 러블리한 사람이고, 우리는 동료 뮤지션이기 이전에 정말 좋은 친구다. ‘Ciao Adios’는 에드가 한 번 들어보더니 갑자기 기타 연주를 시작해서 같이 잼을 한 건데, 그 어쿠스틱 버전의 반응이 원곡보다 좋을 정도여서 정말 짜증 난다(웃음). 그는 진짜 인크레더블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 어떤 음악을 듣고 자랐나? 당신이 숭배한 스타가 궁금하다.
앨러니스 모리셋, 로린 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틴에이저일 때 나는 록이든 팝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 특히 강한 여성 뮤지션, 그리고 강한 정신을 담은 가사를 노래하는 음악가를 좋아했다. 나의 10대가 그런 메시지로부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나 역시 여성에게 힘을 주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특히 소녀들에게 강한 마음을 가져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당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소녀들에게서 직접적인 반응을 얻기도 하나?
요즘은 소셜미디어로 뮤지션이 팬과 직접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상호 작용이 가능하다. 댓글을 늘 읽을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무대에서도 어린 여성 팬들이 와서 “앤 마리, 당신이 나를 도와줬어요!”라고 외치는 걸 듣기도 한다. 그런 짜릿한 기분을 느낄 때면 노래를 평생 할 수도 있을 것 같다(웃음).
인스타그램(@annemarieiam)을 아주 활발하게 한다. 특히 스토리에는 영상이 열 몇 개씩 떠 있을 때가 많은데.
가능한 한 자주 포스팅하려고 한다. 예쁠 때만이 아니라 피곤한 내 모습도 보여준다. 내가 음악 활동이라는 긴 여행을 하고 있는 보통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스태프들이 만약 한국의 노래방에 가자고 한다면, 무슨 노래를 부를 것 같나?
스파이스 걸스나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노래? 걸파워를 보여줄 수 있는 곡을 고를 거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 피처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이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