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아름다운 인물보다 성장하는 캐릭터에 애착이 간다고 말하는 오연서는 배우로서의 자아도 그렇게 만들어가는 중이다.
방영 중인 드라마 <화유기>에서 삼장법사의 현대적 재해석인 진선미 역으로 나온다. 필모그래피에서 사극이나 판타지적인 설정의 작품이 꽤 눈에 띄는데, 작품을 선택할 때 상상력이라는 요소를 긍정적으로 보는 편인가?
만화도, 만화 같은 이야기도 모두 좋아한다. 나 자신도 상상이나 공상을 좋아하고 만화 원작의 작품이나 <아멜리에> 같은 사랑스럽고 동화 같은 영화도 참 좋다. 하지만 판타지 장르는 다음에도 선택하게 될지 고민할 것 같다. 결과물은 재미있고 내 취향에 맞지만 아직은 제작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라든지 힘든 점이 많은 것 같다.
어려운 점이라면 어떤 것일까?
<화유기>의 경우 지난해 10월부터 촬영했는데, CG가 있는 작품이라 시간이 배로 걸린다는 점이 어렵다. 보통 드라마에서 한두 시간 정도 걸릴 신이 대여섯 시간 걸리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연기해야 할 때도 있고, 판타지다 보니 감정선을 얼마나 진지하게 표현할지 고민도 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결과물을 볼 때의 재미가 훨씬 크기도 하다. 상상했던 것과 어떻게 비슷하고 또 다른지 비교도 되고. 큰 줄기의 스토리 외에 경성 스토리, 사극이나 결혼식 장면 같은 상상 신들도 끼어들면서 의상이나 헤어 메이크업을 바꿀 기회가 많다는 것도 배우로서는 즐거움의 요소다.
<화유기>는 넷플릭스에 라이선스 계약이 되어 있어 곧 전 세계에 풀릴 예정이다. 당신도 넷플릭스에서 해외 시리즈 같은 걸 찾아보는 편인가?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나?
<블랙 미러>를 좋아한다. 최근 업데이트된 시즌 4는 하루 만에 다 봤다. CG를 많이 쓰지 않으면서도 상상력을 극대화하고, 자칫 불쾌할 수 있는 소재도 선정적 으로 소비하기보다 직설적이지 않게 돌려서 표현하는 이야기와 연출이 신선하고 놀라웠다. 조디 포스터가 감독한 에피소드는 보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공감했다. 배우의 감성인 것 같기도 하다. 가끔 해외 팬들이 나를 알아봐줄 때 반갑고 신기한데,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릴리스된다는 게 더 많은 시청자와 접점이 생기는 일이라 기대된다. <화유기>는 고대 소설 <서유기>를 원작으로 하기 때문에 아시아, 특히 불교 문화권 국가에서는 친숙한 내용이기도 하다. 신화와 전설의 베이스가 있는 서양에서도 재밌어할 것 같다. 영어 제목이 ‘Korean Odyssey’이기도 하고. 어떤 원형적인 이야기의 변주기 때문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당신의 커리어는 <왔다! 장보리>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 같다.
돌아보면 쉬지 않고 참 열심히 했다. 작품 수도 많은 편이고. 장보리, 특히 도보리는 애착이 큰 캐릭터다. 열심히 살고, 정이 많고, 고생하는 만큼 사랑도 받았고, 무엇보다 성장하는 캐릭터여서.
배우로서 자신의 행보가 어디쯤 와 있다고 생각하나?
어릴 때를 생각하면 지금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고, 주연을 맡고 있다는 게 큰 복이기도, 또 부담이기도 하다. 여전히 두려움이 많고,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주눅 들 때도 있다. 배우로서 자신이 확고해졌다기보다 여전히 정립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고민은 어떻게 더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다. 아직 배울 게 많다.
배우로서 자신을 신뢰하게 되는 부분이랄까, 장점이 있다면 뭘까?
잘 견딘다(웃음). 무명 시절이 길어서 그런지 잘 참는 편이다. 기다림이나 고통, 스트레스 같은 것도. 화가 나거나 힘들 때도 있지만 폭발하기보다 마음을 컨트롤하려고 노력하고, 또 그게 잘 되 는 편이다. 촬영장에서 좋은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것,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댓글도 챙겨 보는 편인가? 어떤 칭찬을 가장 기분 좋게 느끼나?
예쁘다는 말도 기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평가는 오늘 내 연기를 보면서 뭔가 감정이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배우들이 바라는 한 가지는 자신보다 캐릭터가 사랑받는 일 아닐까 싶다. 더 나아가서 뭔가 가슴 찡한 경험, 감동받는 기분을 전해줄 수 있다면 가장 기쁠 것 같다.
영화 <치즈 인 더 트랩> 개봉 날짜가 3월 초로 정해졌다. 워낙 인기 있는 원작이고 드라마로 제작된 적도 있어서, 오연서만의 다른 홍설을 보여주고자 했을 것 같다.
홍설의 마음을 따라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내 분량이 많기도 하고, 관객을 심리적으로 설득하는 게 중요했다. 홍설은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한 채 참고 넘어가는 사람이다. 유정과 가까워지고 오해하고, 또 그걸 풀면서 쌓이는 사랑의 감정을 미묘하게 전달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우리 스태프들은 이 영화의 장르를 ‘로맨스릴러’라고 불렀는데 그 두 가지 요소가 잘 붙게 나온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홍설 캐릭터가 당신과는 참 다를 것 같다. 담아두는 것 없이 당당하게 표현을 잘할 것 같은 이미지인데.
똑 부러져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외모가 주는 오해인 것 같다. 겁 없이 당당할 것 같고 자기표현도 잘할 것 같다고 하는데 사실은 내성적이고 고민도 많이 하고 눈치도 보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낯도 가리고 불편해하는 편인데 티가 잘 안 난다.
고민은 주로 어떤 방향인가?
뭔가 결정할 때 겁을 많이 내는 편이어서 혹시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봐 주변에 많이 물어보며 조언을 구한다. 그런데 늘 답은 내 안에 있더라. 다른 사람이 뭐라고 조언을 해주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건 하고 안 하고 싶은 건 안 하게 되더라. 내 안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만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했고, 추리소설도 많이 읽는다고 들었다. 원작을 하나 택해서 극화한다면 어떤 캐릭터를 맡고 싶나?
장르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같은 스타일의, 몰입도 높은 소설을 좋아한다. 텍스트를 읽으면 직업 때문인지 어쩔 수 없이 영상으로 그려보게 되는데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악인이나 탐정의 조수 역할을 해보고 싶다.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이 있나?
프랑스 배우를 좋아하는데 요즘은 마리옹 코티야르가 가장 멋진 것 같다.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영 앤 뷰티풀>은 미장센이 너무 아름다운 영화였는데, 주인공 마린 백트를 인상 깊게 봤다. 사진을 검색해서 저장하고, 패션 스타일을 살피기도 하고.
할리우드 배우 가운데서 꼽는다면?
제니퍼 로렌스가 카리스마 있고 멋지다. 자기 생각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배우로서의 커리어도 근사하고. 얼마 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자 배우들이 검은 옷을 맞춰 입고 함께 발언하는 걸 보며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조금 더 자유롭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인스타그램을 팔로어가 180만 명을 넘겼다. 어떤 방식으로 운영 하나?
남들보다 비교적 일찍 시작해 팔로어가 많은 편이다. 트위 터나 페이스북이 더 보편적일 때는 SNS를 안 했다. 글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글은 해석의 여지가 다분하다 보니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것 같아서. 그런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최적화된 플랫폼이었다(웃음). 그러다 팔로어 수가 많아진 계기는, 촬영장보다 일상의 사진을 올리면서였던 거 같다. 평상시에 내가 뭘 입고 어딜 가고 뭘 먹는지를 팬들이 좀 더 궁금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사진을 예쁘게 찍는 걸로도 유명하다. ‘오연서 필터’가 연관 검색어가 되기도 하고.
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나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기 마련이다. 내 경우는 늘 붙어 다니는 메이크업 담당 언니가 거의 찍어주다 보니 친근한 관계 덕분에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온 것 같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스태프들과 회의 아닌 회의 같은 것도 한다. 이번에는 인스타그램용으로 어떤 사진을 찍어볼까, 하고. 가족들은 함께 여행 갔을 때 내가 자꾸 사진 찍어달라고 하니까 귀찮아한다(웃음).
그래서 ‘오연서 필터’는 뭔가?
동료 연예인들도 많이 물어보는데 사실 모두가 다 사용하는 평범한 앱들이다. 요즘은 아날로그 파리, 아날로그 도쿄를 많이 쓴다. 필터보다 중요한 건 사진 찍을 때의 빛 같다.
인스타그램에 쓰진 않지만 팔로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누구나 모든 순간에 아름다울 수 없다. 인스타에서는 서로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주는 거고. 보통 사람들처럼 나도 평상시에는 평범한 모습이다. 옷을 그리 예쁘게 입고 다니지도 않고. 늘 좋은 데서 밥을 먹는 것도 아니다. 인스타에 보이는 것처럼 사람들이 화려하고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걸 안다면 자기만 초라하게 느껴져서 상처받거나 자괴감이 들거나 하는 일이 덜할 것 같다.
드라마 촬영 현장은 어느 계절에도 고되겠지만, 요즘은 혹독한 추위 때문에 더 그럴 것 같다. 겨울과 여름 중에는 언제를 더 좋아하나?
어쩌다 보니 드라마를 주기적으로 겨울에만 4년째 해오고 있다. 여름에는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더위를 겪어보지 못했는데, 한여름도 만만치 않다고 하더라. 하지만 지금은 겨울보다 여름이 낫지 않을까 싶다.
봄이 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우선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해야할 것 같다. 드라마를 하면서 너무 추우니까 생존을 위해서 살을 찌운 것 같다(웃음). 차승원 선배도 ‘배우는 연기 이전에 체력이야’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번에 절실하게 깨달았다. 날씬한 몸매도 좋지만 건강하게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몸이 튼튼해야 두려움이나 짜증도 덜 생기니까, 내 내면을 위해서도.
더 많은 화보 컷과 자세한 인터뷰는 더블유 3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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