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에르메스가 선보인 이불 작품에는 뜻밖에도 우리나라 속담이 작품의 제목으로 붙어 있었다. ‘담배 피우는 호랑이’, ‘변방 늙은이의 말’,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다’. 이 흥미로운 작품은 바로 파리에서 공부한 한국 작가, 이슬기 작가의 누비이불이다. 딱 12장씩만 제작된다.
<W Korea> 에르메스와의 인연은 어떻게 닿게 되었는지?
이슬기 파리장식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코리아 지금>에 참여했었다. 전시 후에 에르메스의 홈 오브제(Art de Vivre)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플로랑스 라파주(Florence Lafarge)로부터 연락이 왔다.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고, 내가 한국에 있다고 생각하고 영어로 연락을 했는데, 나는 파리에서 산 지 벌써 25년이나 되었다.
가구 박람회에서 선보인 누비이불은 한국의 누빔 장인과 함께 작업했다 들었다. 장인과 함께 작업할 때의 인상적인 점이나, 에피소드를 듣고 싶다.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했는지도 궁금하다.
3년 전부터 우리나라 전통 바느질 기법인 누비에 정통한 통영의 누빔 장인들과 함께 작업했다. 처음에는 파리의 국립그래픽조형미술재단(Fondation Nationale des Arts Graphiques), 즉 로스차일드 재단의 지원으로 누빔작업을 위해 통영에 갔다. 나의 바느질과 누비 바느질의 차이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누빔은 형태에 따라 굉장히 만들기 어려운데, 이불의 뒷면을 보면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에르메스 담요는 사실 두 겹으로 되어 있다. 이번 작품은 통영의 작업실에서 합숙하며 작업한 것이다.
이번에 메종에 있던 제품 3가지는 어떻게 선정했나?
논의와 숙고를 시작한 지 1년 정도 후에, 내가 여러 해 동안 작업해온 작품을 재해석하기로 했다. 에르메스가 바라는 맥락에 더 적합한 담요로 변형하기로 한 결정이었다.
색과 선이 굉장히 아름답다. 속담과 절묘하게 매칭되어 위트도 있다. 작업을 할 때 즐거운 상상을 할 것 같은데, 영감을 주로 어떤 방식으로 받고 발전시켜가는지 궁금하다.
여러 속담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현재까지 35개의 속담 작품이 있다. 에르메스 작업을 위해서는 특별히 동물과 연관이 있는 3가지 속담을 골랐다. 예를 들면, ‘변방 늙은이의 말’은 불운이 행운을 낳을 수 있다라는 의미인데, 담요 중앙에 뒤에서 본 말의 모습을 상상했다. 말꼬리의 길고 섬세한 털을 생각하면서 밑에서 위로 한줄 한줄 바느질한 작업이다. 색상은 속담의 주인공을 생각하면서 떠올렸지만 늘 그렇게 작업하진 않는다.
한국의 속담을 가지고 작업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나의 작업을 통해 전래 문화와 장인의 기술 사이에 다리가 놓아지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여러 사람의 상상력을 합친 내용에 늘 관심이 있었다.
당신의 작품을 에르메스의 이불로만 기억하긴 아쉬울 것 같다. 당신의 홈페이지(seulgilee.org)에 들어가보니 흥미로운 작업이 많았다.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작업도 무척 궁금하다.
파리에 있는 갤러리 주스 앙트르프리즈(la Galerie Jousse Entreprise)에서 10월 중순에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고, 또 광주 아시아문화센터에서 10월 말에 시작하는 그룹전도 준비하고 있다. 이 두 전시를 위해 현재 서아프리카 가나의 북쪽 내륙에 있는 나라, 부르키나파소와 멕시코에서 광주리를 만드는 장인들과 협업하여 새로운 조각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그곳에선 아직도 광주리 만드는 일이 인기 있는 기술이다.
- 에디터
- 김신
- 포토그래퍼
- 유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