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 예능인, 소길댁, 그 모든 인생이 하나의 리얼리티 쇼인 듯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주인공. 스타와 은둔자의 격차를 마음껏 오갈 수 있는 이효리를 다시 불러냈고, 그녀는 화장기 없는 민얼굴로 나타났다.
W Korea ‘미스코리아’와 ‘배드 걸’ 이후 4년 만의 컴백이었다. 딱 일주일 정도 활동하고 끝냈지만 오랜만에 휘몰아치는 시간을 보냈을 텐데, 후유증은 없나?
이효리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서 마냥 쉬었다. 해외에서 뮤직비디오 촬영한 날들까지 합하면 한 달 정도 집을 떠나 있었던 셈이다. 이젠 활동을 위해 생활 환경이 바뀌는 것까지 감안해야 하니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가요 프로그램을 새벽 2시에 녹화하기도 했다. 그런 환경은 생각도 못 했는데, 요즘엔 그렇더라.
컴백을 결심하기까지 어떤 계기와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애초에 큰 성과를 얻으려고 시작한 건 아니다. 돈 벌려고 나왔나 하는 시각도 있지만, 지금 음악 시장에서는 가수 활동 자체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고 광고나 행사 같은 부가 활동을 해야 돈벌이가 된다. 방송에서도 밝혔듯이 난 이제 그런 걸 안 하는 사람이다. 다시 나온 이유는 그저 내가 그동안 생각하고 작업해온 것들을 선보이고 싶어서였다. 지난 3년 넘게 제주도에서 내키는 대로 편안하게 살아보니, 내가 과거에 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일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차근차근 곱씹을 수 있었다. 문득 이렇게 나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사는 게 과연 나를 발전시키는 길일까 싶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묵묵히 잘 살지 않나. 얻을 게 많지 않아도 여전히 나를 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면 다시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편안한 음악을 가지고 나올 거라 짐작했는데, 가장 먼저 공개된 ‘Seoul’에 비해 ‘Black’이나 ‘White Snake’의 무대가 전위적이기도 해서 좀 의외였다. 이번 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어떤가?
그동안의 내 상태에서 고스란히 나온 게 이번 음악인데, 그것 아닌 다른 걸 일부러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는 충분히 만족한다. 다만 역량에 있어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가사든 곡이든, 앞으로는 더 파고들어 가보고 싶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면서. 예전의 이효리와 앞으로의 이효리 사이에 있는 과도기적인 앨범이었다고 본다.
지난 연말 엄정화의 앨범 작업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일도 다시 활동하고픈 의지를 일으킨 것으로 안다. 엄정화와 이효리, 이 두 사람이 만나면 과연 무슨 대화를 하나?
컴백한 직후 언니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 내가 가요계에 대해 너무 공부를 안 하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음악 프로도 잘 안 봤고, 어떤 음악이 잘되는지 알아볼 생각도 안 했다. 싱글 선공개를 하고,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앨범을 내고, 어느 시점에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고… 그런 순서 자체가 다 파괴됐고 의미가 없는 것 같더라. ‘어, 나왔네?’ 하면 그냥 끝. 모든 속도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빨랐다. 퍼포먼스 성격이 강한 무대를 새벽에 녹화하는 것도 하기 힘든 일이다. 정화 언니는 그런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내 마음을 나눌 만한 사람이 언니 하나였다. 긴 문자를 주고받았다.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있었다기보다는 내가 겪은 상황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점만으로도 크게 의지가 됐다.
요즘엔 모든 게 너무 빨리 돌아가기 때문에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가 치관을 먼저 세우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느리고 세심하게 살자는 주의다. 천천히, 쉬엄쉬엄하는 게 좋은데 일하다 보면 그와 상반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앞으로는 활동 방식을 아예 바꾸든지, 뭔가를 보완해야겠다는 판단이 든다.
9월까지 방송될 JTBC <효리네 민박>을 제외하면, 7월 초 앨범을 내기 직전부터 JTBC <뉴스룸>을 시작으로 MBC <라디오 스타>, KBS <해피 투게더>, JTBC <한끼줍쇼>, SBS <박진영의 파티 피플> 등에 출연했다. 방송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 건 당신이 정말 솔직하고 거침없다는 점이다. ‘이효리는 솔직하다’고 말하는 게 새삼스럽지만 그렇다.
그런 편이지. 그런데 나, 진짜로 솔직하진 않다. 주변에서 방송을 보고 어쩜 그렇게 평소랑 똑같냐고 말하는데 그 말은 내가 평소에도 솔직하지 못하다는 뜻인 것 같다. 사실 나는 낯을 가리고,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건 이렇고, 저런 건 저렇다’고 확신에 차서 단정적으로 말하는 방식 역시 별로다. <라디오 스타>에서 내가 남자들에 대해 ‘그놈이 그놈이야’라고 말했다. 예능 식으로 웃기게 한 멘트지만, 정말로 ‘그놈이 그놈’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한끼줍쇼>에서 이경규와 강호동의 말을 자르고 타박하는 이효리와 <효리네 민박>에서의 이효리는 좀 다르지 않던가? 세고 거침없는 면도 다 내 안의 모습이겠지만, 예능에 출연하면 나도 모르게 ‘레드 썬’ 하고 최면에 걸리듯 변신한다. 나는 솔직하다기보다 분위기를 본능적으로 잘 감지하는 사람이다. 그 자리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게 대응하는 거지.
하지만 이번에 방송에서 ‘어렸을 때부터 가장이 되어 경제적으로 이끌어가는 삶을 20년 동안 살았다’는 이야기를 할 땐 조금 놀랐다. ‘자꾸 뭘 하려고 들지 마라, 그게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라고 하는 남편에게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사니 당신이 편한 거다, 어렵게 살았던 나를 당신이 알아!’ 하고 울컥했다는 에피소드는 굳이 꺼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면이다. 그런 개인사를 이전에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나?
대놓고 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나이가 들어선지 아니면 시끄러운 곳으로부터 좀 떨어져 성찰하면서 살려고 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겉모습은 물론 말하는 데 있어서도 꾸미는 면이 확실히 없어졌다. 원래도 안 좋아했지만 갈수록 더 그렇다.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도 그런 부류다. 마음이 약하거나 경험이 적을수록 자기를 숨기고 보호하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연예인은 그런다고 보호되지 않는다는 걸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았다.
자신이 가장 안쓰러웠던 시기로 돌아가서 뭐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겠나?
“일단 쉬어. 네가 없어도 다들 잘 살아.” 내 인생은 주로 누군가를 이끌거나 짊어져야 하는 식이었다. 어떤 회사에서든 내가 대표 연예인 격이었고. 무게감을 자주 느꼈지만, 그 무게로 남에게 업히기는 또 싫은 성격이다. 그래서 난 어릴 때부터 독립적인 편이었다. 결혼하면서 누군가에게 기대보게 됐다. 일을 놓고 한동안 쉬면 남들이 백수네, 한물갔네, 식의 말을 하겠지만 멈춰서 쉬는 건 인생에서 필요한 시간 같다. 정신과나 멘토에게서도 답을 구할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멍하게 쉬면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효리네 민박>은 이효리 이상순 부부의 제주도 라이프가 어땠는지 짐작해보게 한다. 느슨하고 강박이 없어 보이는 내용이다.
그나마 그 방송에서의 내가 실제와 가장 비슷해서 그건 좀 챙겨 본다. 예전부터 내가 나온 예능을 다시 볼 일이 생기면 ‘대체 왜 저랬지? 저게 내 진심은 아닌 것 같은데’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효리네 민박>에선 특별히 콘셉트를 잡을 일이 없이 자연스러우니까 보고 있어도 안 민망하다.
이상순과 나란히 누워 이런 말도 했다. “우린 이제 똥만 싸면 돼.”
수많은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24시간 돌아간다. 별 모습이 다 찍힌다. 코 골고, 목욕하고 나오는데 가운이 훌러덩 벗겨지기도 하고. 편집하는 스태프는 진짜 우리가 똥 싸는 모습만 빼고 다 봤을 거다. 계속 카메라 에 노출돼 있으니까 급기야 ‘나란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지? 왜 이렇게 다 보여주고 있지? 나는 그래야 만족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싫다는 게 아니라 자꾸 물음표가 생긴다.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이후 대세는 관찰 예능이다. 시청자가 CCTV를 지켜보듯 연예인을 본다. 천하의 이효리도 집 안 곳곳에 달린 카메라와 무인 카메라의 존재가 낯설었나 보다.
팬들이 이 얘길 들으면 어떨 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안 보여주는 삶도 한 번은 살아보고 싶다. 사실 지난 3년 동안 그렇게 살려고 했는데 은근슬쩍 조금씩 나를 보여줬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왜 자꾸 나를 보여주려 할까?
천생 연예인이니까 그런 거 아닌가. 그렇다고 심은하처럼 사라질 수 있나?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와는 다른 유형의 사람일 것이다.
더 많은 화보 컷과 인터뷰는 더블유 9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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