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맨해튼 어느 거리. 백남준이 창조한 로봇 K456이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는 의도된 퍼포먼스였다. ‘교통사고를 당한 로봇’이라니, 쉽고 재밌는 방법으로 인간과 기계를 이분하는 사고방식을 무력화한 상징적 장면일 것이다. 4차 혁명을 코앞에 둔 지금, 백남준만큼 자주 떠오르는 예술가가 있을까? 경기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7월 20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리는 전시 <우리의 밝은 미래: 사이버네틱 환상>은 기술이 둘러싼 환경에 대한 여러 작가의 사유를 펼쳐놓는 자리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디엔그룹비트닉(Bitnik)의 경우 실험적인 전시를 하고 있는 팀이다. 비트코인을 이용해 스스로 쇼핑하도록 설계된 인공지능이 인터넷 쇼핑을 하면 갤러리로 택배가 오는 식. 이번 전시에선 그 인공지능이 쇼핑한 아이템을 스크린으로나마 구경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어둠의 경로로 마약을 쇼핑해 작가가 경찰서에 불려간 웃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
자크 블라스&제미마 와이언 듀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채팅봇 테이(Tay)를 주인공 삼아 비디오 작품을 만들었다. 테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야심작이었으나, 채팅 시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는 오류를 보이는 바람에 출시 하루 만에 폐기된 비운의 인공지능. 작품은 테이가 ‘해고’ 당하기까지의 24시간을 가상으로 보여준다.
이 밖에 국내 작가 박경근과 김태연을 비롯해 비디오 아트, 사이보그, 해킹, 인공지능 등을 주제로 작업해온 15팀이 전시에 참여한다. 백남준은 일찍이 인간이 기계 때문에 받은 상처와 충격은 역시 기계를 통해서만 치유하고 해소할 수 있다고 봤다. 독을 독으로 치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젠 기계라고 할 때 얼른 연상할 수 없는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삶 속으로 들어와 있다. 뉴미디어 아트의 신호탄을 쏜 백남준이 살아 있었다면, 그는 기계와 더불어 사는 우리의 미래가 밝다고 말해줬을까?
- 에디터
- 권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