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을 인정하지 않기란 어렵다. 그가 악당일수록 더 그렇다.
미국 일정 사이를 비집고 인터뷰 스케줄을 잡았다. 요즘 진행 중인 촬영이 있어서 오가는 건가?
촬영 중인 영화가 있는 것은 아니고 요즘은 행사, 미팅, 화보 같은 일정이다. 짧은 일정으로 다녀오다 보니 시차 맞추기가 힘들어서 몸이 축난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한국 배우다. 해외 인터뷰나 영화제 기자회견을 봐도 농담까지 하는 여유가 넘치던데.
내 안에서는 너무 긴장하고 있다.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면 어쩌나, 말문이 막히면 어떡하나, 손에 땀이 마르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궁지까지 몰리면 오히려 ‘까짓거 뭐 있어?’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 같다. 한국 사람인데 영어를 완벽하게 할 필요가 뭐 있나. 모르면 다시 물어보고, 그도 안 통하면 영어가 모자라다고 양해를 구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배우니까,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고 있다는 느낌은 안 주고 싶은 거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긴장하고 있는 티가 나더라 .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는 쇼의 아주 거대한 버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래와 퍼포먼스, 카메라워크, 위트 넘치는 멘트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축제인 동시에 쇼비즈니스의 결정체일 것이다. MC, 시상자들, 공연과 퍼포먼스를 맡은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자기 시간 맞춰 무대에 올라서 멘트를 한 번씩 해보는 리허설이 전날 열린다. 그만큼 완벽하고 매끄러워야 한다. 시상식 당일 유일하게 용납되는 실수가 있다면 그건 상을 받은 사람들의 감격에서 나오는 몫이다. 나는 실수하면 안 되는 파트의 사람이었고. 레드카펫을 통과하면 넓은 칵테일 바가 있는데, 초대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술을 뭐든 마시며 긴장을 풀 수 있다. 한 잔만 마셔도 빨개지는 내가 그날 네 잔 마셨다. 나중에 시상식 영상을 매니저가 보여주는데 그 속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더라(웃음).
연기를 오래했다. 돌아보면 커리어의 전환점이라고 여겨지는 순간이 언제였나?
처음엔 이게 내 일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기보다 젊은 날 한때의 경험 정도로 여겼다. 학창 시절의 나는 뭐가 되어야겠다는 장래 희망이 없었다. 열정 없는 베짱이 같았달까. 공부를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고, 그저 낙천적인 성격에 노는 걸 좋아했다. 드라마를 찍으면서 PD한테 욕먹고 야단맞으며 이걸 어떻게 평생 하나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욕심이 생기더라. 1년 남짓 지나면서 뭔가 직업으로 인식하고 조금씩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전환점이라고 한다면, 첫 영화를 찍었을 때. 데뷔한 지 4년 정도 지나서였는데 제작 발표회 때 “안녕하세요 영화배우 이병헌입니다”라고 소개했더니 기자들이 웃더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보다. 90년대의 당신은 공채 탤런트 출신의 청춘 스타였으니까.
데뷔작인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는 흥행 성적이 낮았지만 다행히 그때만 해도 영화를 숫자로만 따지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는 관객 수와 상관없이 영화를 찍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실망이 그렇게 크진 않았다. 영화가 망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고 할까(웃음). 그다음 또 한 번의 전환점이 왔다면 <공동 경비구역 JSA>였다. 청룡영화제인지 시상식에서 이번에는 “안녕하세요 흥행 배우 이병헌입니다”라고 인사하니까 사람들이 또 웃더라.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달콤한 인생>을 꼽을 것 같았는데 .
처음 미국 에이전시에 소속되게 만들어준, 그리고 처음으로 해외 영화제를 경험하게 해준 영화라서 물론 의미가있다. <지. 아이. 조>의 경우엔 할리우드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전환점이었고.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은 최지우, 류시원, 이정현 씨와 함께 찍었는데 한류 열풍 초기를 경험하게 해줘서 기억에 남는다. 팬들을 만나게 해준 작품이다.
곧 개봉할 <마스터>는 전작인 <내부자들>과 소재에서 비슷해 보인다.
범죄, 액션, 비리, 복수 같은 키워드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화의 색깔은 완전히 다르다. <내부자들>이 독하고 살벌한 현실을 진중하게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편집이나 카메라워크가 훨씬 경쾌하다. 물론 그 안에 악인이 있지만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같이 연기한 강동원이나 김우빈과의 케미는 어땠나?
강동원 씨와는 같이 붙는 장면이 거의 없다. 쫓기고 쫓는 관계라 영화 말미까지 만날 수 없으니까(웃음). 김우빈 씨는 이전 작품을 봤을 때 순발력이 있어 보인다는 느낌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기분 좋게 놀랐다. 불편할 정도로 깍듯하고 예의가 발라서 나 역시 긴장되기도 했다. 선배인 나에게야 형식적으로 그럴 수 있지 싶었는데 촬영장의 모든 사람에게 하는 걸 보니 본성 자체가 반듯한 남자고 괜찮은 친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남자 배우와 앙상블을 이루는 작품이 많은데, 남성 동료와 연기할 때 더 편한가?
성별을 떠나 연기를 잘하는 사람하고 하는 게 편하다.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호흡이라는 걸 아는 일이다. 상대방의 것을 받아들이고 기회를 줄 줄 아는 거다. 그런 배우들이랑 일하는 것이 편하고 좋다.
한국에서야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미국에서는 연기하면서 스스로를 알려가야 하는 입장이다.
미국 매체와 인터뷰를 하다 보면 나를 무술인으로 안다. 액션 외의 장르에 출연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과 함께. 미국에서는 어떤 배우가 뛰어난 분야가 있을 때 액션, 코미디 이런 특정 장르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배우들이 모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하는데. ‘다른 장르에서도 너희를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어’라는 믿음이 내 무기일 수도 있겠다. 물론 액션 한 가지도 제대로 잘할수 있다면 큰 자랑이고 소중히 여겨야 할 장기지만.
액션 외의 장르라면 아무래도 언어 장벽이 더 높겠다.
영어로 시나리오를 해석하고 미묘한 감정의 뉘앙스를 표현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프로덕션에다 요청을 하면 1시간 정도씩 보이스 코치를 붙여준다. 유치원에서 배울 것 같은 기초적인 발음과 강세부터 레슨을 받는다. 어느 순간은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노력과 시간과 돈이 필요한 일 같다.
제작 환경 차이에서 느낀 흥미로운 점은 어떤 게 있었나?
<지. 아이. 조>를 처음 촬영할 때 무술감독 정두홍 형이랑 같이 갔는데 프로그램을 짜서 움직이는 와이어 액션 신을 몇 달 동안 찍는 걸 보며 놀라면서도 답답해하더라. 우리나라 같으면 사람들이 줄 당겨서 이틀이면 끝냈을 거라고. 이들에게는 배우와 스태프들의 안전 문제가 철저하다. <매그니피선트 7>을 찍을 때는 크리스 프랫, 에단 호크와 함께 말을 타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말들끼리 경쟁심을 느끼는지 한 마리가 슬쩍 빨라지니까 무리가 같이 달리기 시작하는 거다. 그대로 가도 그림이 멋지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배우들이 진정시켜 멈추더라. 달리는 장면은 부상 위험이 있기 때문에 대역을 써서 찍어야 하고, 임의로 진행할 경우 스튜디오에서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 다 읽지도 못할 만큼 두꺼운 계약서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더라.
커리어를 잘 운영해온 배우 같다. 일에 있어 결정을 내릴 때의 원칙이나 기준 같은 게 있나?
결과적으로 돌아보면 어떤 큰 그림이나 계획이 있었던 것처럼 나름대로 잘 선택해왔다고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매 순간 ‘인생 뭐 있어?’ 하는 식으로 결정을 내려온 것 같다. 어릴 때는 안 해본 것에 대한 불안감도 크고 돌다리도 백 번 두들겨보고 건너는 성격이었다면 언젠가부터 반대로 내던져보는 면이 생겼다. 망한 영화도 많다. 흥행될 거라는 보장이 없을 때도 왠지 잘 모르겠지만, 다만 이걸 본 사람들에게는 사랑받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들 때는 용기를 냈다. 매니저를 비롯해 모두가 말리지만 꼭 하고 싶다고 선택한 경우도 있었고. 잘못된 선택도 있었지만 어떻게 사람이 완벽하게 살겠나. 계속 성공만 했다면 잘될 때의 기쁨이 덜할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이 있나?
낙천적인 면. 뜻대로 안 될 때는 그 힘든 일조차 내 인생에서 원래 밟을 길이었다고 생각하면 좀 나아진다. 사람의 인생을 출생부터 생의 마감까지 그래프로 그려보면 누구나 굴곡이 있을 거다. 나는 그 곡선에서 여기쯤 와 있구나 생각하면 그게 아래쪽일 때도 약간 편해진다.
인생 그래프가 바닥을 찍을 때,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힘들지는 않았나? 당신이 높이 있을 때뿐 아니라, 저점에 있을 때 역시 모두가 보고 있으니까.
알려진 사람들의 딜레마일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중 예술 하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폭발하고자 하는 자유로움과 엉뚱함이 사회적인 혹은 도덕적인 규범과 상충하는 부분이 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훌륭한 아티스트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린아이와 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을 거다. 내면의 크리에이티브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되면서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나?
흔한 얘기다. 애를 안거나 유모차를 밀고 간다는 이유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게 되는 변화 같은 것. 신체적으로도 달라졌다. 아이를 안아주느라 어떤 액션 촬영때보다 허리가 심각한 지경이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 배우로서의 말랑말랑한 자아도 잘 지켜나가고 싶은 생각도 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일하고 있다. 양쪽의 활동이 다른 성취감을 주나?
지금까지는 그렇다. 할리우드에서 일할 때는 영화광이셨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황야의 7인>을 아버지와 함께 본 기억이 나는데, 내가 그 리메이크 작에 출연했다는 걸 아시면 아버지가 무덤에서 깨어날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일하는 나를 한국에서는 개척자 느낌으로 볼지도 모르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서는 아주 사적이고 정서적인 동기가 크다. 반면 한국에서 일하는 건 내 커리어를 제대로 쌓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업에 더 진지해지기도 하고, 연기적인 시도를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자유롭기도하다. 그럴 때 확실히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데는 아직까지 내가 장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획을 세워두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번갈아 선택할 확률이 높을까?
왔다 갔다 하는 이 리듬감이 좋다. 지금까지는 운 좋게 반반씩 한 거 같은 느낌인데 그런 상태가 오래 유지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언젠가는 사람들이 나를 지겨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한다. 이제는 중국 자본의 투자 때문에 할리우드에서도 중국 배우 캐스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그런 경쟁 속에서도 나를 필요로 하는 요청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감사한 일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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