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2016 F/W 여성 컬렉션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특별한 자리. 미니멀리즘 무용의 대가와 함께한 강렬한 여정 속에서, 여성 패션을 바라보는 에르메스의 세계관을 확인했다.
패션 하우스의 365일은 온갖 ‘행사’를 향해 달려간다. 이미 멋진 패션을 더욱 멋지게 선보이기 위해, 그리하여 잊을 수 없는 브랜드의 정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크고 작은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새로운 컬렉션을 해당 시즌보다 이미 6개월가량 앞서 공개하는 패션쇼의 캘린더상, 드디어 제철을 맞은 패션을 앞에 두고 브랜드는 어떻게 또 한 번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에르메스는 여성 컬렉션이 취할 수 있는 풍요로움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행사를 마련했다. 지난 9월 8일 베이징, 여성 실크 아티스틱 디렉터 발리 바레(Bali Barret)의 지휘 아래 춤, 노래, 전시, 퍼포먼스 등이 다차원적으로 결합한 ‘Women’s Universe’가 바로 그것이다. 패션쇼에서 컬렉션의 모든 것을 다 아울러 보여주기에는 제약이 많은 만큼, 한 시즌의 의상뿐 아니라 가방, 신발, 주얼리, 스카프 등을 전체적으로 함께 보여주는 이런 자리는 2014년 뉴욕 행사 이후 꽤 오랜만이라 더 특별했다. ‘Women’s Universe’의 막이 오른 거대한 무대는 798예술구에 지난해 들어선 민생미술관. 중국 민생은행의 기부로 건립된 이 미술관은 상하이에만 두 곳이 있다가 드디어 베이징에도 둥지를 틀었고, 공공 미술 기관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The View From Her’라는 주제로 풀어간 에르메스 여성의 세계는 콘셉트별로 마련된 11개 방을 따라 2016 F/W 컬렉션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다. 패션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탐험하는 여정인 셈이다. 미지의 세계로 승선한다는 기분을 안겨주는 ‘비전 룸’을 시작으로, 발레 공연이 열린 ‘아홉 개의 드레스를 위한 무용단’, 그 아홉 개의 드레스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비밀 아카이브처럼 꾸민 ‘비밀 서랍장’, 펼쳐놓은 사각 스카프와 그에 대응하는 사각 프레임 안에 매혹적인 영상이 흐르는 ‘힙노틱 스퀘어’, 실크 스카프를 만드는 노하우와 공연을 접목한 ‘트윌라인 기법’ 등 강렬하고 매혹적인 소주제의 방이 이어졌다. 가방, 시계, 주얼리를 마치 동굴 속에서 캐내고픈 빛나는 수정처럼 전시 해놓은 방은 재치가 돋보인 공간. 메탈 스터드가 박힌 의상(지난 3월 파리 컬 당시 모델 박지혜가 스터드로 장식된 스커트를 입고 런웨이에 섰다)에 착안하여 어스름한 우주로 연출한 방에선 스터드와 작은 LED 별이 반짝거렸고, 소설가 폴 오스터의 딸이자 배우와 가수 등으로 활동 중인 소피 오스터의 라이브 공연이 어우러졌다. 1837년 안장과 마구 제작소로 출발한 에르메스인 만큼 마구간과 경마장에서 영감을 받아 마련한 방, 격자무늬와 차, 오토바이 등의 탈것을 매치한 방, 에르메스 운동화를 신고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을 말 그대로 우러러보게 만드는 방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특별한 자리에 가장 힘을 실어준 인물은 바로 70대의 안무가 루신다 차일즈일 것이다. 미국 현대무용가인 그녀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안무로 독자적이고 독보적 스타일을 구축한 인물. 1년 전 이맘때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공연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우리나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폐기된다고 해 화제였는데, 음악가 필립 글라스와 협업하여 그 공연의 안무를 짠 이가 루신다 차일즈다. ‘Women’s Universe’의 아티 스틱 디렉터 발리 바레는 루신다 차일즈의 춤에 푹 빠져, 3월 컬렉션 쇼 때도 그녀를 초대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번 F/W 컬렉션에 있는 바이어스 컷 드레스의 패턴과 사선을 모티프로 발레 공연 ‘아홉 개의 드레스를 위한 무용단’ 을 만들었다. 낮은 점프, 짧은 도약 등을 특징으로 하는 루신다 차일즈 식 안무에 사뿐히 휘날리는 드레스 자락. 이 공연은 춤추는 무용수들 뒤편으로 역시 춤추고 있는 그들의 영상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지면서 변화무쌍하고 만화경과도 같은 장면들을 만들어 냈다. 트윌라인 공방에서 프린팅하는 과정을 하나의 창작 공연으로 연출한 ‘트윌라인 기법’ 퍼포먼스도 그녀의 작품이다.
2014년부터 에르메스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부임한 나데주 바니-시뷸 스키는 “난 디자인을 할 때, 늘 해방감을 떠올리고 창작에 반영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서의 여성을 표현할 수 있는 요소들에 매혹된다는 것이다. 무용수들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물결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날리던 실크에 그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 패션의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패션과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으로 대규모 공간을 채운 에르메스. 그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문화의 장은 과연 에르메스다웠다.
- 에디터
- 권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