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의 바다에서, 가수 바다로 그리고 뮤지컬 배우 바다로, 바다는 언제나 바다였다. 항상 바다라는 이름으로 노래했다. 노래로서 존재했다. 자신을 노래하며 진정한 디바가 됐다. 바다라는 이름으로 완전해졌다.
우연이었다. TV 채널을 돌리다 바다를 보게 된 것은. 한 케이블 채널에서 재방송 중이던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서 바다가 나오고 있었다. <캐스트 어웨이> 같은 영화가 연상되는, 모래가 깔린 조악한 세트에서 ‘생존’이라는 주제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분홍색 파자마를 입고 정신없음 그 자체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바다의 모습을 보며 낄낄 거리다가 문득 낯설다는 인상을 받았다. 바다라는 이름은 익숙한데 화면 속 바다라는 사람이 생소했다. 지 금 이 TV를 통해 바라보는 저 모습이 진짜 바다일까. 궁금했다. 노래하지 않는 바다는 어떤 사람일까. 방금 막 <컬투쇼>에 출연하고 오는 길이라는 바다에게 우연히 <마리텔> 재방송을 봤다고 하자 그녀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걸 보셨어요?”라고 되묻고 나서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런 경지까지 온 거죠. 그 지경이라 하는 게 맞을 것 같지만(웃음). 사실 모든 상황에 맞춰서 알아서 대처해야 했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최선을 다한 거 같아요.” 그런데 바다는 왜 <마리텔> 에서 생존이란 주제를 선택했을까. “음, 원래 인생이란 게 기본적으로 생존이잖아요.” 하이톤의 음성과는 역설적인 진지함이었다. “사실 <마리텔>은 가벼워 보이는 프로그램이죠. 그런데 <마리텔>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모두가 그걸 관찰해요. 마치 이 사회와 인류의 미니어처나 다르지 않은 거 같아요. 결국 모든 방이 각자의 문화적 형태를 띠는 거죠. 결국 저는 나름대로 무거운 메시지를 담은 문화를 선택한거고요. 다만 사람들이 가볍게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의외로 철학에 관심이 있고요.”
어쩌면 생존이란 가장 중요한 화두였을지도 모른다, 바다라는 이름을 걸고 지나온 세월 안에서. 대중음악 역사 안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걸그룹 S.E.S의 리더로 활동하다 팀 해체와 함께 솔로로 독립해 보컬리스트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뮤지컬 무대까지 진출해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까지 끌어낸 그녀가 보낸 19년이란 무성하게 가지를 뻗은 영광의 세월이기 전에 깊게 뿌리내린 생존의 역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역사는 단지 그녀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패티김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20년만 버티면 자연스럽게 레전드가 된다고. 20년 동안 가수로서 존재할 수만 있다면. 어느새 20년을 앞두고 있다니 실감이 안 나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은 조금씩 이해가 가요. 요즘 후배들로부터 존경한다는 말을 종종 들어요. 저처럼 20년이 지나도 노래하고 싶다는 거예요. 아이돌 그룹의 리드 보컬들은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하겠죠, 저도 그랬으니까. 그러니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노력해야죠. 그걸 인생의 목표라 말할 순 없겠지만 계속 노래할 수 있다는 건 제게도 중요한 의미니까요. ”
지난 6월에 공개된 미니 앨범 <Flower>는 데뷔 20 주년을 앞둔 바다가 오랫동안 자신의 노래를 들어준 팬들을 위해 준비한 첫 번째 선물이다. 그녀는 타이틀 곡 ‘Flower’를 포함한 네 곡의 넘버를 담고 있는 이 앨범을 포함해 세 차례에 걸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무엇보다도 2009년에 발표한 네 번째 정규 앨범 이후로 무려 7년 만에 앨범을 발표한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았다. “앨범을 발표하고 싶다는 갈증은 몇 년 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그런 갈증을 풀 겨를이 없었어요. 당시엔 뮤지컬 무대에 최선을 다하느라 너무 바빴으니까. 목이 타긴 하는데 너무 바빠서 물 마시는 걸 까먹을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더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순간 정확히 멈춘 거 같아요. 그만큼 <Flower>는 제게도 반가운 앨범이었죠.”
바다는 본래 노래보다는 연기에 관심이 많았다. 안양 예고에서도 연극영화과를 지원했고, 배우가 되길 꿈꿨다. “가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연기에 관심이 컸죠. 그런데 그 당시 저희집은 가난했고, 당장 가수가 될 기회가 생겼고, 돈을 벌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선택하게 된 거죠. 만약 당장 배우가 돼서 돈 벌 기회가 생겼다면 배우를 선택했을지도 몰라요.” 그렇다. 바다보다는 최성희라는 본명이 더 익숙하던 시절, 명창 조통달의 수제자 중 한 명이었던 소리꾼 출신 아버지는 그녀에게 다양한 취향과 재능을 물려줬지만 그녀를 가난으로부터 보호해주진 못했다. 물론 바다는 그 시절의 가난을 비극적으로 기억 하지 않는다. 그저 그러한 삶의 조건을 통해 나아갈 방향이 있었다는 걸 기억할 뿐이다. “운명을 믿어요. 제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디로 닿는다 해도. 다만 어떤 순간에도 제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싶진 않아요. ” 운명을 믿는다는 것이 주어진 인생에 순응하겠다는 의미는 아닐 터이다. 실제로 그녀가 바다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오늘은 순종적인 딸의 입장에서 벗어나 자신 스스로가 바라는 인생을 선택하겠다는 최초의 의지를 통해 일군 결과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아버지께서는 제가 수녀가 되길 바라셨어요. 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중학교 시절부터 수녀가 될 준비를 했고, 수녀가 될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안양예고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기로 마음먹었어요. 아버지께서 반대하셨지만 결국 제 의지가 더 강했죠. 만약 그때 제 생각을 믿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겠죠.” 그렇다. 덕분에 그녀는 바다라는 이름을, 인생을 얻었다. 만약 그녀가 안양예고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축제 무대에서 노래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녀를 발견한 이수만 대표가 가수 제안을 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가 기억하는 S.E.S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바다라는 디바의 노래를 듣게 될 기회도 없었을지 모른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그녀의 선택은 단지 그녀의 인생 만을 바꾼 것이 아니다. 그녀의 선택을 통해 세상의 기억도 달라진 셈이다.
사실 바다는 몇 해 전 삶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기회를 얻었다. 헤르만 헤세의 저서 <정원 일의 즐거움> 덕분이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았다. “정원 일처럼 고된 노동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죠.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닐 테고요. 자연에 맡겨야 하는 거잖아요. 자연과 햇빛이 키운 것들, 그러니까 어쩌면 신이 기획하고 연출한 풍경에서 인간은 그냥 스태프로 일하는 거잖아요.” 사실 그 책을 통해 얻은 삶의 균형이란 어머니의 죽음과 맞닥뜨린 뒤 느꼈던 흔들림을 가라앉히는 길이기도 했다. “그런 일이 닥치니까 막상 당장은 담담했던 거 같은데 다가올 두려움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그래서 인생의 순리를 대하는 듯한 제목 이 마음에 와 닿았나 봐요. 사람이 병에 걸리고 죽는 것도 자연의 이치잖아요. 그러니 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자연의 이치인 거 같아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의 아픔을 지켜보는 과정도 자연을 대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침마다 도드라진 나뭇가지를 자르 고, 매일 지켜보면서 정원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 것이 비슷해 보였어요. 결국 순리대로 가는 것이니까. 그래서 부정적인 상황에 직면한다 해도 가던 길을 멈춰선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
자연의 이치처럼 인생을 받아들인다는 건 삶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결과에 순응하며 늘 최선을 다해 일상을 채우겠다는 의지가 담긴, 나직한 다짐에 가깝다. 동시에 긍정적 관점은 그런 깨달음을 일상의 실천으로 밀어 보내는 돛과 같은 역할을 해내는 것 같다. “인생을 통제하긴 어렵지만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오히려 신날 수도 있잖아요. 마치 빨간머리 앤의 대사처럼. 나를 모른다는 게 괴로운 일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능력이 내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저는 일이 끝나면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지 않아요. 그 말대로라면 제가 힘든 시간을 보낸거잖아요. 하지만 저는 항상 즐겁게 일하거든요.” 바다가 생각하는 긍정주의란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기 위한 장벽이 아니다.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즐기며 살아가기 위해 그녀가 발굴한 동력이자 재능에 가깝다. “긍정성을 타고난 사람도 있겠지만 노력해서 긍정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성향으로 바뀌는 거겠죠. 모두가 똑같이 다섯 개의 구슬을 갖고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구슬을 더 얻는 사람이 있고, 잃게 되는 사람이 있는 거죠.” 그녀가 지닌 구슬의 양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바다의 긍정주의는 무대 위에서 보다 빛을 발한다. “무대에 서는 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러니 열정적으로 해내겠다는 마음을 먹어야만 하죠. 최대한 긍정적으로.” 물론 무대 위에서의 긍정주의는 후천적 경험의 결과다. “아무래도 많이 실패해봤다고 생각하는데 그 덕분에 맷집이 좋아진 거 같아요. 옛날엔 제게 벌어지는 일을 하나같이 무겁게 받아들였는데 요즘에는 가볍게 느낄 수 있어요. 노래도 훨씬 편안하게 부르게 됐고요. 사실 디바라는 단어 자체가 무겁잖아요. 그래서 무거운 숙명처럼 느낄 때가 있었는데 이젠 오히려 깃털처럼 가볍게 즐겨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특별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노래하는 이가 진정한 디바라는걸요. 그래서 요즘에는 가사가 좋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렇게 바다는 세상보다도 자신을 위해 먼저 노래하는 법을 알았다.
물론 자신의 무대에 대한 치열함은 별개의 이야기다. 올해 1월 31일까지 무대에 섰던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은 바다는 이 작품이 생존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가진 부잣집 딸이자 철부지인데 전쟁통에 폭풍 같은 세파를 겪으면서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삶을 헤쳐나가 죠. 제가 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하게 된 건 아무래도 제게도 그런 기질이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편이고, 생존에 대한 의지도 강한 편인데 자연스럽게 그런 특징을 끌어다 연기한 거 같아요.” 물론 무대와 현실 사이에서 자신의 균형을 찾는 것도 그녀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대와 일상에서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인생을 연기하듯이 살 순 없잖아요. 다만 다행히도 저는 상상력이 많은 편이에요. 캐릭터 분석을 할 땐 정말 많은 상상을 하는데 최대한 디테일한 상상까지 더해서 인물을 구상해요. 예를 들어 눈썹을 치켜뜨는 버릇이 있는 캐릭터라면 항상 거울로 자신의 버릇을 봐왔을 테니 눈썹을 최대한 아래로 내려 그렸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직접 그리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후로 뮤지컬 배우 바다의 모습을 볼 기회는 없었다. 대신 가수로서 무대에 오르 는 바다를 볼 기회가 늘었다. 바다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사진을 보여주며 여전히 설렌다는 듯 말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했어요. 사실 여자 솔로 가수가 혼자서 콘서트를 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관객들이 안 오면 어떡하지 걱정이 많았는데 8천 명이나 되는 관객들이 와서 정말 놀랐어요. 감격스러웠죠. 온몸을 던져서 공연했어요. 공연 끝나고 보니 무릎에 피멍이 들었더라고요. 공연할 때는 아픈 줄도 몰랐어요.” 올해 그녀는 콘서트에 보다 매진할 계획이다. 지난 7월에는 가수 휘성과 함께 조인트 콘서트를 열기도 했고, 앞으로 동료 가수와 함께 설 수 있는 무대를 늘려나갈 예정이란다. “요즘 제 화두는 콘서트예요. 사실 제가 다양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에 집중하면 끝까지 파는 편이에요.” 그녀는 갑자기 앞에 놓인 물잔을 들더니 건배를 하자고 제안했다. “장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행운을 비는 거죠. 이렇게 건배를 함으로 써 잔 안에 있는 물의 느낌도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물 한잔을 마셔도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려는 거고,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결국 운명을 제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죠.”
벌써 올 한 해도 지나간 시간이 지나갈 시간보다 무 겁게 다가온다. 이제 석 달 남짓 남은 한 해 동안 바다 가 무엇을 채울 계획인지 궁금해졌다. “올해에는 가수 로서 공연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연말에는 정말 많은 공연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슈퍼주니어의 려욱 씨와 함께 싱글을 발표할 예정이에요. 려욱 씨가 연습생이던 시절에 연습실 거울을 닦고 있었는데 그 옆을 지나가던 제가 갑자기 거울을 같이 닦아줬대요.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려욱 씨가 말해줘서 알았어요.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묘한 인연이죠.” 어쩌면 그녀는 내일 당장 일어날 일을 알 수 없어서 신나는 인생이라기보단 뿌린 대로 거둬들이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다의 시간은 흘러왔다. 그리고 흘러갈 것이다. “활동을 해오면서 하나씩 배우는 거 같아요. 제 노래를 다시 듣다 보면 새삼 깨닫는 것도 있고. 그렇게 제 자신을 다듬어가면서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노래할 수 있는 디바로서 존재하고 있다면 좋겠어요. 그래서 언젠가 다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말이 에요.” 바다는 그렇게 자신을 위해 노래하는, 바다 자신을 노래하는 디바로서의 미래를 꿈꾸는 법을 깨달았다. 그 누구의 디바도 아닌 바다로서.
- 포토그래퍼
- PARK KYUNG IL
- 글
- 민용준(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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