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ef of he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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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유력 가문 출신의 모델, 뮤지션 세인트 빈센트의 여자친구, 그리고 두 얼굴을 가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악당.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화려한 라이프스타일보다 우스꽝스러운 셀피를 즐겨 올리는 것처럼 카라 델러빈이 삶을 대하는 자세는 가볍고 경쾌하다.

하트 모양을 형상화한 붉은색 코트는 Saint Laurent, 붉은색 타이츠는 Fogal of Switzerland 제품.

하트 모양을 형상화한 붉은색 코트는 Saint Laurent, 붉은색 타이츠는 Fogal of Switzerland 제품.

어렸을 적 카라 델러빈은 스파이더맨이 되기를 꿈꿨다. “변장을 하고 고생하는 그런 거 말이죠.” 어느 멋진 봄날 뉴욕에서 만난 델러빈이 말했다. 영화계의 주요한 일을 다루는 업계 연례 행사인 시네마콘의 라인업에 그녀가 출연한 신작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Suicide Squad)>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라스베이거스에서 날아온 그녀는 공항에서 바로 더블유 화보 촬영을 하러 왔다. DC코믹스 가운데서도 가장 어두운 내용을 토대로 하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정부가 부여한 극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악당 중의 악당들이 힘을 합치는 내용으로, 마고 로비, 윌 스미스, 벤 애플렉, 자레드 레토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특히 조커 역을 맡은 자레드 레토는 메소드 연기의 극한을 선보였는데, 피부에 분칠을 하고 머리를 다양한 색으로 물들였으며 동료 배우들에게 플레이보이 잡지, 성인용품, 사용한 콘돔으로 보이는 것 등을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비밀에 싸여 있지만 카라 델러빈은 자신이 맡은 역이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이중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귀띔해주었다. 낮에는 단추를 꼭 맞게 잠근 슈트를 입은 수줍음 많은 과학자 준 문 박사지만 밤에는 유혹적이기 그지없는 인챈트리스로 변하는 것이다. 델러빈은 네이비색 트랙 슈트를 입고 금발 머리는 니트 스키 모자 안에 집어넣은 비행용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어렸을 때는 항상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여러 단계를 거쳤죠. 한동안은 스파이스 걸스 멤버가 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베이비, 그다음엔 스포티, 그 다음엔 진저. 포쉬는 안 해봤는데 쪼그만 검정 드레스를 입는 그런 여자애가 되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 단계를 거쳐 남자 슈퍼히어로를 꿈꿨죠. 특히 스파이더맨이 의상도 멋지고 장난감도 근사했어요. 강한 슈퍼히어로 타입의 여자는 별로 없었죠, 원더우먼을 제외하고는요. 하지만 비키니 같은 걸 입고 뛰어다니는 다섯 살 꼬맹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샛노란 스웨터와 체크무늬 스커트는 Dior, 오른손에 낀 반지는 (왼쪽부터) David Yurman, Sabine Getty, 코르셋과 스트랩 슈즈는 Prada, 타이츠는 Wolford 제품. Beauty Note: John Frieda의 ‘Go Blonder In-Shower LIghtening Treatment’로 염색 모발을 관리한다.

델러빈은 화보 일정이 끝나면 바로 림멜 런던의 광고 촬영을 위해 런던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일 만큼 바쁘게 모델 일을 하고 있지만 연기 활동에도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몇 달간 그녀는 뤽 베송이 메가폰을 잡은 1960년대 인기 프랑스 만화 원작의 영화 <발레리안(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을 촬영했다. 델러빈은 은하계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해결하는 우주 요원인 로렐라인 역으로 주연을 맡았다. “그 작품도 플롯은 비밀이에요.” 델러빈이 헤어 손질과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의자에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삶보다 제 자신의 삶이 더 많이 알려져 있어요. 그걸 뒤집는 게 제 계획이에요.”

러플 장식 블라우스와 스커트는 Chanel, 코르셋은 Prada, 노란 타이츠는 Fogal of Switzerland, 초록색 플랫폼 슈즈는 Rochas 제품. Beauty Note: Rimmel London의 브로 키트로 진한 갈색 눈썹을 만든다.

W | <수어사이드 스쿼드> 배역을 얻기 위해 당신도 오디션을 봤나?

카라 델러빈(이하 CD) | 그렇다. 어둡고 폭풍우 치는 밤에 런던에 있는 호텔에서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을 만났다. 감독님은 영화에 대해선 내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놀랍고, 깨어 있고, 강하지만 매우 사악한 여자들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중독과 정신질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그 후 감독님을 만난 건 LA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였다. 내게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에 나오는 대사를 읽어보라고 하시더라. 나는 그 연극을 무지 좋아하고, 17세 때 학교에서 공연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신이 났다. 그런데, 연기를 하는데 왠지 모르게 화가 나더라. 그런 분노를 근 몇 년간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역할을 따냈다! 여전히 대본은 없었지만 감독님이 내게 보름달이 뜰 때 숲에 가서 발가벗고 발에 진흙을 묻힌 채 숲속을 걸어보라고 하더라. 난 실제로 그렇게 했고. 보름달은 없었지만 늑대처럼 울부짖었다. 누가 봤더라면 정말 웃겼을 거다.

델러빈이 갔다는 숲은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에 있는 그녀의 큰언니 클로이의 시골 저택 부지에 속한 것이었다. 델러빈이 지닌 카리스마의 일부는 거의 동화 속 이야기 같은 그녀의 상류층으로서의 배경, 반면 자라면서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 속 어려움이 어우러진 데서 나온다. 그녀와 그녀의 언니인 포피와 클로이는 영국의 귀족 혈통이지만 한때 잇걸이었던 이들의 어머니는 헤로인에 중독되었고, 이들이 어릴 적 내내 재활원을 들락날락했다. 일찌감치 야망이 넘쳤던 카라 델러빈은 16세에 모델 활동을 시작했고 여배우의 길로 시선을 돌렸다. 2013년, 그녀는 40개가 넘는 런웨이 쇼에 서고 펜디와 H&M 등 다양한 브랜드의 캠페인에 등장하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스타였다. 그녀의 혜성 같은 등장은 케이트 모스에 비견되었다. 다만 모스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 델러빈은 2015년 작인 <페이퍼 타운(Paper Towns)>에서 탐나는 역할을 맡아 10대의 신비로운 욕망의 대상을 연기했다. 그녀는 전형적인 미국인 고교생 반항아로서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선보였는데, 여러모로 영국적인 그녀로서는 놀라운 성취였다.

붉은색 집업 재킷과 푸른색 셔츠, 스커트는 모두 Balenciaga, 타이츠는 Maria La Rosa 제품.

W | 미국 고등학교를 다녔나?

CD | 잉글랜드에서 자라면서 나는 미국 영화에 나오는 모든 게 전부 가짜라고 생각했다. 뉴욕이 실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며, 고등학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찍을 때 내게는 사물함도 있었고 실제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수업하는 걸 잠깐씩 참관하기도 했다. 작년에 시네마콘에서 <페이퍼 타운>으로 상을 받았는데 아주 웃겼다. 왜냐면 영화는 아직 개봉하기도 전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연기한 걸 진짜로 보신 분은 없으시겠지만,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W | 그전에도 라스베이거스에 가본 적이 있나?

CD | 셀린 디옹 공연을 보러 갔다. 정말 대단했다.

W | 셀린 디옹의 팬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녀가 <타이타닉(Titanic)> 주제가로 당신을 매혹시켰나?

CD | 어쩌면. 사실은 셀린 디옹의 진정한, 골수팬은 아니다. 하지만 그 노래가 정말 좋은 건 사실이다.

W | 당신의 18번이 그럼 ‘My Heart Will Go On’인가?

CD | 그렇진 않다. 나는 가라오케에서 정말로 진지하게 노래 부른다. 심하게 진지한 나를 보면 아마 나랑 같이 가라오케 가기 싫을 거다.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는 이브의 ‘렛 미 블로우 유어 마인드(Let Me Blow Your Mind)’다. 노래도 랩도 많고 감정적으로 많은 것이 담긴 곡이다.

꽃을 수놓은 오간자 드레스와 코르셋은 Prada, 브라톱과 속브리프는 Deborah Marquit, 유색 보석 팔찌는 Van Cleef & Arpels, 반지는 Tiffany & Co., 목걸이는 De Beers, 보석 장식 펌프스는 Balenciaga 제품. Beauty Note: 모로칸오일의 Blow-Dry Concentrate로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을 만든다.

바로 여기, 좋아하는 노래의 매력을 설명하는 데서 그녀의 비밀을 알 수 있다. 델러빈은 세련된 교양과 정신적 솔직함을 갖춘 흔치 않은 사람이다. 그녀는 에미넴의 스타일을 찬양하지만 아델의 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자신의 피부가 걱정되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피하려고도 하지만 가만있질 못하고 항상 모험에 빠질 자세를 갖추고 있다. “전 강렬한 거라면 뭐든 좋아요. 어렸을 때는 피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되게 암울하게 들리지만 제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은 베인 거였죠. 아버지처럼 면도하는 흉내를 내고 있었거든요. 얼굴에 면도 크림을 바르고 아버지 면도기를 가져왔는데 면도날이 손가락 아랫부분을 지나가면서 거의 잘라낼 뻔했어요.”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흉터 보실래요? 이젠 거의 안 보여요. 하지만 흉터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게 좋아요.”

레이스업 코르셋과 슈즈는 Prada, 프린트가 있는 코르셋과 드레스는 Alexander McQueen, 푸른색 브라톱은 Rosamosario, 분홍색 모피 코트는 Gucci, 스타킹은 Fogal of Switzerland 제품.

에디터
황선우
Lynn Hirschberg
포토그래퍼
MARIO SORRENTI
스타일링
Edward Enninful
헤어
Shay Ashual
메이크업
Aaron de Mey
매니큐어
Honey for Exposure NY
세트 디자인
Philipp Haemmer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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