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바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그를 파리에서 만나 한국에 상륙한 그의 브랜드 ‘칼 라거펠트’와 그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봄, 도산공원 앞에 ‘칼 라거펠트(이하 라거펠트)’의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알리는 행사와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다. 당시 칼은 오지 않았지만 그가 한국을 위해 보낸 스케치가 큼지막하게 매장 외벽에 걸려 시선을 끌었다. 이 시대의 가장 아이코닉한 디자이너,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론칭 소식은 무척 설레고 기쁜 이슈였다. 그를 인터뷰하기 전, 칼의 아틀리에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라거펠트의 이번 시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쇼룸을 지나 정돈되어 있지 않은 디자인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방을 볼 수 있었다. 그의 화이트 셔츠처럼 잘 정돈되어 있던 공간에서 이 슈퍼 디자이너는 어떻게 일하고, 무엇을 하며 쉬는지 궁금해졌다.
한국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지난해 한국 방문이 계기가 된 걸까?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이 아시아에서 패션을 선도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빨리 론칭하고 싶었다. 한국 플래그십 론칭 행사 때도 방문하고 싶었지만 참석이 어려웠기에,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직접 그린 스케치로 대신했다.
당신은 모든 세대 여자들의 욕망을 동시대적 패션으로 풀어낸다. 브랜드 라거펠트는 당신이 진행하는 다른 두 브랜드(샤넬, 펜디)와는 어떤 차이를 두고 풀어내는지 궁금하다.
라거펠트는 샤넬, 펜디와 같이 럭셔리 브랜드는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다. 브랜드 자체가 나를 설명해준다고 보면 된다. 내가 가진 여러 성향 중 한 부분이라고 하면 이해하기가 쉽겠다.
남성과 여성 두 라인의 스타일이 꽤 다르게 느껴진다. 남성은 정제되어 있고, 여성은 펑키하고 위트 있는 디자인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한 브랜드이니 공유하는 아이덴티티가 있을 것 같은데, 칼 라거펠트의 시그너처 스타일은 무엇일까?
여성 스타일은 남성보다 대담하고, 더 복잡하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라거펠트의 시그너처 스타일은 한 가지 스타일로 제한되지 않는다. 다양한 요소가 존재하고, 그것들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표현하려 한다.
한국 시장은 굉장히 까다롭고 트렌드 지향적이다. 쉽게 타오르는가 하면 또 금세 꺼지곤 한다. 한국 여성을 사로잡기 위한 키워드가 있을까?
새로운 아이디어들과 현대적 감성은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나는 그것을 굉장히 잘 포착해 풀어낸다. 트렌드(Air du Temps)를 잡아내는 것이 내 일 중 하나이고 나만의 방법으로 그것을 찾곤 한다. 나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나를 맞추지, 그 흐름이 내 방향으로 오기를 기대하는 타입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가고, 머무른다. 항상 자기 자신을 트렌드(혹은 시대의 변화)에 맞추는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당신은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 데 탁월하다. 언제 어떤 이유로 자신을 디자인화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사실, 나는 한 번도 내 자신을 브랜드화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자리 잡았을 뿐. 내가 생각하는 나는 굉장히 클래식하다. 블랙 재킷, 화이트 셔츠, 그리고 블랙 진 이것이 모두가 알고 있는 내 룩이다. 굉장히 기본적인 아이템들이지만, 내가 입었을 때는 평범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혹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패션계를 리드하는 브랜드들을 지휘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디자인하고, 사진과 영상까지 찍는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나.
각각의 것들이 유기적으로 영감을 주고받게 한다. 패션만 단독으로 생각하면 고립되고, 협소해진다. 그건 패션의 끝이나 다름없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만큼 휴식이 중요할 것 같다. 여가시간엔 무엇을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나는 내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휴식이나 방학이 딱히 필요하지 않다. 그래도 쉴 때 내가 가장 즐기는 건 바로 책 읽기다.
당신이 생각하는 멋진 여성이 갖춰야 할 조건, 세 가지가 궁금하다.
잘 만들어진 재킷, 완벽한 핏의 데님, 티셔츠,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어울리는 ‘리틀’ 드레스 그리고 화이트 셔츠… 세 가지는 아니지만 내가 패션 분야에서 사랑하는 아이템들이다. 각자 개개인의 스타일과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기억해두길 바란다.
- 에디터
- 정환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