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여행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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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면? 여자 혼자 여행 떠나는 것도 무섭거나 외로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발견할 때다. 적어도 이런 도시들에서는 그렇다.

동화 같은 하얀 마을, 미하스

고즈적한 시골 마을, 알푸하라

햇살의 축복을 받은 도시, 마르베야

저택을 활용한 마르베야의 숙소 어번 빌라

스페인 안달루시아
여자 혼자라도 이 도시가 좋았던 이유는? 안달루시아는 여자 혼자 다니기에 더없이 안전하고도 흥미진진한 지역이다. 흔히 스페인 하면 고색창연한 문화유산을 떠올리지만, 나는 관광객이 북적이는 그라나다, 말라가 같은 대도시보단 작은 마을들(알푸하라, 프리힐리아나, 미하스) 등이 좋았다. 특히 알푸하라의 고즈넉한 산동네에서 들리는 건 바람 소리,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내 발자국 소리 뿐일 정도로 자연과 하나 된 듯한 착각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행 기간은 얼마 동안이었고 주로 뭘 하며 보냈나? 8일의 여행 기간 대부분은 음악을 들으며 골목을 누비는 데 보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정처없이 걸으면 그 시간이 곧 색다른 모험이자 사색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는 어디였나? 이 도시에서의 숙박에 대해 팁을 준다면? 6인실 도미토리 룸부터 호사스러운 개인 저택까지 가격대나 종류가 다채로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르베야 산기슭의 어번 빌라(Urban Villa). 웬만한 초특급 호텔 부럽지 않을 정도로 특별한 시간이었다. 호텔이라기보단 방이 많은 저택을 숙소로 활용하는 곳인데, 영국인 출신의 주인의 취향이 여간 고급스러운 게 아니다. 미리 요청을 하면 빈티지 폭스바겐으로 버스역까지 픽업을 나오며 저녁엔 정성스러운 가정식을 차려준다. 아름다운 북아프리카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전용 테라스까지 갖춘 스위트룸이 당시(2012년) 가격으로 17만원가량.
평소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과 이 도시는 어땠나? 프리랜서가 된 지금은 충동적인 여행이 잦다. 정보 검색에 몰두해 여 행 자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바깥 풍경을 놓칠 때가 부지기수), 이젠 발길 닿는 대로 가는 편이다.
혼자 가도 좋았던 장소 몇 군데? 론다 중심가의 메르세드 수녀원에서 하루에 2번 정해진 시간에 고장 의 특산품인 올리브 과자를 판매한다. 장물 거래 하듯이 회전문마냥 빙 빙 돌아가는 함에 돈을 넣으며 “도스(2) 따르따스 데라비르헨(과자 이름)” 이라고 외치면 다시 한번 함이 빙그르르 돌며 과자와 잔돈이 나타난다. 맛 자체는 특별할 건 없지만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경험이었다.
혼자라서 위험했거나 아쉬웠거나 외로웠던 순간은 없었나? 알푸하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한참 올라가면 버섯 모양의 지붕이 빼곡한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인적이 드물어서 사람보다는 동물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마을에서 내려올 때는 자연을 만끽하겠다고 일부러 도로가 아닌 산길을 택했는데, 호젓하기 그지없지만 오싹한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 그럼에도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여기는 절대로 혼자 가지 마라’ 하는 여행지가 있다면? 호주와 뉴질랜드. 워낙에 방대한 국토인지라 지루한 이동 시간이 이어진다. 차를 렌트해 교대로 운전하고, 수다로 서로의 졸음을 퇴치해가며 긴 여정을 함께할 수 있었다. 요르단이나 인도 역시 혼자 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나라다. 특히 사막에서의 오버나이트 투어는 둘 이상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경험이었다.

소피텔 소 호텔의 루프톱 수영장

산책하기 좋은 덕스톤 힐

클럽이 모여 있는 클라키 주변

싱가포르
여자 혼자라도 이 도시가 좋았던 이유는? 싱가포르는 안전하고 깨끗하고 맛있는 도시다. 최근 마리나베이 샌즈와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싱가포르 플라이어 등 새로운 랜드마크가 대거 출현했다. 티옹바루나 뎀시 힐 등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예쁜 카페가 있는 골목과 산책하기 좋은 동네도 매력적이다.
여행 기간은 얼마 동안이었고 주로 뭘 하며 보냈나? 34일로도 충분하다. 로컬 음식을 먹고 거대한 정원을 탐험하고, 쇼핑몰과 뮤지엄까지 갈 수 있다.
숙소는 어디였나? 이 도시에서의 숙박에 대해 팁을 준다면? 도심 한가운데 있는 소피텔 소에 머물렀다. 2014년에 오픈한 호텔로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에 참여했다. 호텔 루프톱에 있는 수영장에서는 주말마다 파티가 열린다.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은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이 찾으며 수영장이 유명하다. 객실료가 싸지 않은 편이지만 호텔 내에 있는 레스토랑 수준도 뛰어나다. 고든 램지의 브레드 스트리트 키친이 여기 있다. 래플스 호텔의 롱바는 유명한 싱가포르 슬링 칵테일이 탄생한 곳 인데, 콜로니얼 시대의 낭만을 간직한 곳이다.
평소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과 이 도시는 어땠나? 대도시에서 새롭게 뜨는 골목이나 동네 구경을 좋아한다. 베를린의 미테,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디스트릭트, 포틀랜드의 웨스트엔드, 뉴욕의 윌리엄스버그같이 젊은 아티스트가 몰려드는 거리나 골목을 좋아하는데, 싱가포르에서는 티옹바루가 그런 곳이다.
혼자 가도 좋았던 장소 몇 군데? 덕스턴 힐은 페라나칸 양식의 집에 아기자기한 카페와 작은 바와 숍이 모여 있는 거리다. 한국의 가로수길과 비슷하지만 동선이 짧고, 아날로그적인 기분도 느낄 수 있다. 티옹바루도 여자들이 가기 좋은 동네다. 빈티지 소품을 판매하는 북스 액추얼리라는 서점, 지역민이 즐겨 찾는 커피숍 포티 핸즈, 프랑스 출신의 셰프가 빵과 타르트를 만드는 티옹바루 베이커리가 기억에 남는다. 야경을 즐기기 좋은 루프톱 바도 많다. 레벨33은 마리나베이 파이낸셜 빌딩 옥상에 있는 바로 싱가포르 리버를 비롯해 멀라이언, 싱가포르 플라이어, 마리나베이 샌즈까지 파노라마로 싱가포르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혼자라서 위험했거나 아쉬웠거나 외로웠던 순간은 없었나? 싱가포르는 딱히 위험한 곳은 없고 범죄율도 낮은 편이지만 클라키나 차이나타운, 탄종파가 일대는 밤늦은 시간, 취객이 많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여기는 절대로 혼자 가지 마라’ 하는 여행지가 있다면? 사실 어디든 친구와 함께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특히 자동차 여행이나 기차 여행, 혹은 휴양지에서는 함께할 친구가 있는 편이 훨씬 즐거우니까.

포틀랜드 사람들이 사랑하는 서점, 파웰 북스

강이 동서를 나누는 포틀랜드의 풍경

레코드 숍 에브리데이 뮤직

방대한 컬렉션이 압도적인 멀트노마 위스키이브러리.

미국 포틀랜드
여자 혼자라도 이 도시가 좋았던 이유는? 뉴욕이나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같은 거대 도시가 아니라면 차를 렌트하지 않고 미국 도시를 여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포틀랜드는 사이즈가 자그마하면서도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다닐 만한 인프라가 잘 구비되어 있다. 충분히 상냥하지만 타인보다 자신에게 몰두하는 히피같은 현지인들도 혼자 하는 여행에 적절한 거리감을 주었다.
여행 기간은 얼마 동안이었고 주로 뭘 하며 보냈나? 출장에 붙인 사흘 동안 쇼핑과 식사 사이사이 틈틈이 작은 카페나 크래프트 맥주집을 찾아다니며 여유롭게 보냈다. 소비세도 없는 주라서 쇼핑에 면죄부를 얻어 위험했다.
숙소는 어디였나? 이 도시에서의 숙박에 대해 팁을 준다면? 부티크 호텔인 루시아 호텔, 그리고 에이스 호텔에 나눠 묵었다. 에어비앤비도 보편화되었지만 아무래도 혼자하는 여행에서는 안전 문제나 호스트와 접촉하는 일 때문에 꺼려져, 조금 비싸더라도 규모 있는 호텔을 이용하는 보수적인 여행자다.
평소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과 이 도시는 어땠나? 경이로운 자연보다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문명, 엇비슷해 보이는 도시들이 저마다 가지는 다른 개성과 결에 감탄하기를 좋아한다.
혼자 가도 좋았던 장소 몇 군데? 블루스타 도넛은 고급스러운 브리오슈 같은 맛이다. 솔트 앤 스트로 아이스크림이나 쿠리에, 하트같은 커피숍은 작고 소박하지만 내공이 상당하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술병을 꺼내오는 멀트노마 위스키 라이브러리의 위용은 굉장했다. 그리고 이 모든 혼자 놀기 좋은 공간들을 중국인 단체 관광객 없이, 그리고 아주 한적한 인구 밀도 속에서, 안전하게 누린다는 것 또한 이 도시의 커다란 장점이다.
혼자라서 위험했거나 아쉬웠거나 외로웠던 순간은 없었나? 오리건 주는 자연 환경이 풍요로워서 식재료가 풍부하고 물가가 저렴하다.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혼자라 메뉴를 더 시키지 못할 때 좌절감을 맛봤다.
여기는 절대로 혼자 가지 마라’ 하는 여행지가 있다면? 강렬하게 인상적인 풍경이나 다이내믹한 모험을 맞닥뜨리는 여행지는 누군가와 같이 나눌 때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포틀랜드는 혼자서도 평화로웠다.

에디터
황선우
송선민 (프리랜스 에디터), 여하연 (트레블러 편집장), 황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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