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에게는 무언가가 있다. <W Korea>의 11주년 커버 촬영 현장에선 대가들의 케미를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훗날 패션사의 레전드가 될 이들, 포토그래퍼 이네즈 피노트 듀오와 스타일리스트 멜라니 워드, 그리고 3월호 커버걸인 켄달 제너까지. 이들과의 촬영만으로도 특별했는데,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눴다. 이제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왜 그들이 특별한지에 대해.
포토그래퍼 듀오 이네즈 앤 피노트 Inez & Vinoodh
대담한 패션 예술가들
그들은 촬영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원하는 바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담한 시도도 두렵지 않은 걸까. 사진가가 지닌 창의적 역할을 무한대로 확장시킨 이들, 바로 네덜란드 태생의 커플이자 사진가 듀오인 이네즈 판 람스베이르더와 피노트 마타딘(Inez Van Lamsweerde & Vinoodh Matadin). 팝아트와 같은 미술사적 맥락을 비롯해 에로티시즘, 초현실주의, 복제와 이미지 변형 등 흥미로운 이미지 몽타주를 만들어내는 그들은 패션계와 예술계를 넘나들며 그들만의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쌓아왔다. 그간의 작업을 망라하는 방대한 책에서, 유수의 패션 잡지와 갤러리 작업에서, 패션 하우스의 캠페인에서, 레이디 가가나 뷔욕 같은 뮤지션의 이미지 작업에서, 또 자신들이 디자인한 패션을 통해. 그들은 더없이 자유롭고 기묘한 동시에 매혹적인 이네즈 피노트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어떻게 듀오 포토그래퍼가 되었나? 함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나(이네즈)는 학창 시절부터 디자이너와 사진가가 출발점이었다. 어느 날, 디자이너였던 피노트를 만났는데, 그는 독자적인 레이블 로웨나(Lawena) 를 론칭한 후 내게 컬렉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6년 후 우린 삶과 일 모두에서 파트너가 되었고 함께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 했다. 카메라가 하나 더 생긴 건, 1999년 샤를로트 갱스부르를 촬영한 직후다. 하나의 앵글에 통일된 목소리를 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피노트가 이 카메라로 내 곁에서 다른 앵글의 독자적인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경이로웠다. 이날부터 우린 각자 카메라를 들고서 동일한 피사체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찍게 되었다.
패션 사진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보이는지를 표현하고 싶다. 우린 얼굴을 읽는 걸 정말 좋아한다. 누군가의 눈, 움푹 들어간 눈두덩, 코와 입술 사이의 공간, 주근깨, 속눈썹, 귀 등 모든 것 이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신들은 패션에 대한 열정을 사진뿐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피노트는 80년대엔 디자이너였고 그걸 계기로 우리가 만 날 수 있었다. 출발은 그의 컬렉션 사진을 찍으면서고, 그 후로 수많은 스타일리스트, 에디터, 디자이너들과 작업을 했다. 그게 벌써 25년이 다. 우린 그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고, 우리가 놓친 것과 놓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주얼리 레이블의 디자인과 뉴욕의 각광받는 신진 데님 브랜드인 프레임 데님(Frame Denim)과의 협업도 가능했을 것이다. 모든 걸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다가 우리가 촬영 하는 것과 우리가 입거나 걸치는 것에 더 깊숙이 참여할 수 있었다. 데님이나 주얼리도 이러한 맥락이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실험하고 배워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만의 것을 찾아가고 있다.
좋은 사진에 대한 당신의 정의는?
좋은 사진이란 뜻밖의 휴머니즘을 발견하게 하는 것, 또는 극도의 아름다움이나 도전을 지닌 것, 또는 당신을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형태, 테크닉, 색감 등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휴머니즘’이다.
촬영 현장에서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하고, 모델의 포즈와 소품 촬영을 통해 그 아이디어를 간단명료하게 구체화하는 당신들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번 커버 화보의 주요 콘셉트는 무엇이 었나?
루이 비통 컬렉션의 콜라주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다양한 요소를 혼합해 켄달 제너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또 아티스트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실험적인 팝아트로부터도 영감을 얻었다.
켄달 제너와의 커버 스토리를 위해 생각한 그녀의 캐릭터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뱅헤어를 한 로큰롤 걸! 여기에 애니메이션 속의 카툰 캐릭터를 결합했다. 컴퓨터 게임 속의 캐릭터 혹은 K-팝 걸그룹 의 이미지도 담겨 있고 말이다.
스타일리스트 멜라니 워드 Melanie Ward
독창적인 아름다움
차분하고 우아한 영국 악센트로 다가오는 패션위크의 에르메스 쇼 컨설팅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그녀의 눈엔 고요한 빛이 감돌았다. 온화한 동시에 열정적인, 에디터 출신의 스타일리스트인 멜라니 워드(Melanie Ward). ‘입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 자신일 수 있게 한다’는 그녀의 철학은 90년대부터 존재감 넘치는 화보 작업을 통해 드러났다. 그 결과는 유수의 패션 매거진과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 및 쇼 컨설팅을 통해 오롯이 빛나며 수많은 패션 추종자를 낳기도. 확고한 신념으로 하이패션이 추구하는 정제된 동시에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을 완성하는 그녀의 원칙과 메시지는 지금도, 앞으로도 모던하고 모험심 강한 여성을 향해 동시대적 울림을 남길 것이다.
처음 패션계에 몸담으며 스타일리스트로 발걸음을 내딛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런던 대학에선 정치와 언어학을 전공한 뒤, 다시 세인트 마틴 패션 스쿨에 들어가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졸업 컬렉션으로 베스트 데이웨어 상을 받았을 땐 디자이너 길을 택하고 싶었지만, 포토그래퍼 코린 데이와 데이비드 심스와의 우연한 만남이 커리어를 바꾸게 만들었다. 그들과 함께 몇몇 사진 프로젝트의 스타일리스트로 일 하면서 때론 옷을 직접 만들거나 디자인하기도 했고, 또 때론 케이트 모스에게 입힐 빈티지 아이템을 찾아 헤매 기도 했다. 그리고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패션과 사진을 넘나드는 이 새로운 영역에 들어섰다. 완전히 새로운 드레싱과 취향으로 다양하게 스타일링을 실험해보 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켜 보는 게 매우 흥미로웠다.
오늘날 패션계에서 스타일리스트가 지닌 사회적인 역할과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수많은 여성들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삶의 가이드라인을 찾고자 한다. 내 생각엔 그녀들에게 소비적인 시간을 줄여주고 보다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럭셔리가 아닐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스타일리스트는 여성들로 하여금 많은 결정을 더욱 쉽고 빠르게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때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여줄 수도 있다. 이를테면 건강한 몸의 이미지와 새로운 미학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 말이다.
켄달 제너와 더블유 코리아와의 작업을 통해 느낀 그녀의 모습은?
<W Korea> 촬영 전에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 광고에서 켄달과 작업한 적이 있다. 굉장히 사랑스러운 데다가 모델로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팀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내가 높이 평가하는 건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이다.
화보 속 캐릭터를 구상하고 스타일링을 통해 이를 완성해가는 당신만의 방식은?
작업에 따라 달라진다. 에디토리얼 관점에서의 캐릭터는 모던하면서 개성있으 며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또 기본적으로 스타일리시하고 섹시하며 자유롭고 모험적인 동시에 약간의 반항기가 더해져야 한다. 일할 때는 늘 내가 이 캐릭터를 정말 원하는지를 끝없이 되묻곤 한다.
모델 켄달 제너 Kendall Jenner
모던한 쿨 걸
그녀는 쿨했다. 엄청난 팔로어를 거느린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로서, 오늘날의 패션을 정의하는 톱모델로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족을 둔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여전히 하이패션의 세계와 디자이너를 동경하고, 매거진과의 화보 작업에 흥미를 느끼며,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젊고 아름다우며 현대적인 여성인 켄달 제너(Kendall Jenner)만이 존재할 뿐. 자신에게 주어진 그대로를 감사하며, 가족과 행복을 삶의 최우선으로 삼는 그녀의 말간 얼굴엔 순수한 열정이 어려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특별한 이유 아닐까.
당신은 순식간에 하이패션 브랜드들의 뮤즈가 되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2014 F/W 시즌, 마크 제이콥스 쇼에 선 당신의 첫 캣워크를 기억한다. 그 당시의 느낌을 기억하나?
마크 제이콥스 쇼에 선 일은 정말 꿈만 같았다. 사실 첫 캣워크 데뷔가 마크 제이콥스와 같은 빅 브랜드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건 너무나도 멋진 일이었고, 우리 가족은 내게 아낌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냈다.
당신은 전 세계의 패션 도시를 누비며 화보나 광고 캠페인을 찍고, 패션쇼에 서며, 동시에 TV 쇼에도 출연한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일을 꼽는다면?
매거진의 화보 촬영. 그 이유는 다양한 캐릭터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새로움을 경험하는 시도를 즐긴다.
파워풀한 모델로서 놀라운 순간을 경험하며 체득한 교훈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이른 아침과 긴 밤을 지새우고, 때론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거부당하더라도 그 경험 뒤에 그 세계에서 버틸 수 있는 내적 강인함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 역시 당신의 인스타그램에 담긴 패션 스타일과 삶의 방식에 열광한다.
그 사실은 매우 재밌다. 왜냐면 나는 스스로 매우 평범하다고 느끼니까.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 쓴다. 그리고 이메일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의 일상을 나누는 순간을 즐긴다.
- 에디터
- 박연경
- 포토그래퍼
- Inez and Vinoodh
- 사진출처
- MARIO SORRENTI, EZRA PETRONIO, MARC PILARO(PORTRAIT), INDIGITAL, GETTY IMAGES/MULTIBITS, COURTESY OF H&M, ESTEE LAUDER, CALVIN KLEIN JEANS, MARC JACOBS
- 진행
- Sasha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