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홀은 추상적이고 복잡한 개념을 구체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건물로 실현해내는 건축가다. 가장 좋아하는 자재로 빛을 꼽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체험이 압도적인 외양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집을 짓는다.
‘스티븐 홀 아키텍츠’의 위치는 재개발이 한창인 허드슨 야드 근처였다. 때는 뉴욕의 가을이었지만 스탠더드 재즈 대신 금속성의 소음만 거리에 가득했다. 11층 높이의 사무실에 다다르자 도시의 소리들이 비로소 멀게 느껴졌다. 스티븐 홀은 건넌방에서 여름을 보내다 온 것처럼 반팔 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목소리가 낮고 차분하게 울렸는데, 어쩐지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마 파슨스 디자인 스쿨이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강의할 때도 어렵지 않게 학생들을 집중시켰을 것이다. 물론 근사한 목소리를 논외로 하더라도 그는 교수라는 직책에 썩 잘 어울린다. 이론적인 깊이와 실용적인 가치 사이에서 탁월하게 균형을 잡는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홀의 설계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구현한 결과물일 때가 많다. 시애틀의 성 이냐시오 성당이 대표적인 예다. 빛에 관한 종교적 은유, 가톨릭 의례의 구성 요소, 입지적 상징성 등은 일곱 색깔의 빛을 고요하게 수렴하는 건물의 디자인과 긴밀하게 교통한다. “내가 건축학도들에게 진심으로 해주고픈 충고는 좋은 콘셉트를 가지라는 것이다. 좋은 콘셉트는 디자인의 원동력이며, 철학적 바탕이 다른 반대자들 앞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방어할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의 주요 프로젝트를 소개한 책인 <홀>에 그가 적은 문장이다.
세계 각국의 도시에 덩치 큰 구조물을 지어 올리는 이 건축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작거나 심지어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스티븐 홀은 과시적인 외양보다 공간 안에서 이루어질 체험을 깊게 고민한다. 그리고 구석구석의 디테일에 남다른 공을 들인다. 그의 테이블 위에는 직접 디자인한 문손잡이 샘플들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집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신중하게 보태는 마침표인 셈이다. “문손잡이를 잡는 게 건물과의 첫 접촉이니까요.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때부터 그 건축에 대한 경험이 시작됩니다.”
빛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수채화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스티븐 홀의 건축에서 빛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일까?
가장 좋아하는 건축 재료를 물어오면 빛이라고 답한다. 내게는 일종의 물질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그 공간을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게 해 준다. 프로젝트에 관한 드로잉을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게 빛, 그리고 그림자다.
건물의 외관보다 내부를 먼저 구상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나?
프로젝트마다 상황이 달라지긴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지금은 사람들이 이미지와 쉽게 ‘재미를 보는’ 시대다. 시선을 끄는 특이한 건물들이 계속해서 출연한다. 하지만 일상의 체험은 대부분 안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인테리어의 동선과 그 공간에서 생활할 사람의 시점이 무척 중요하다. 내부에 대한 구상이 먼저고, 외관은 그에 따라 결정된다.
시그너처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건축가다. 배우로 치면 메소드 액터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정해지면 그 지역에 깃든 정신과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먼저 이해하려고 한다. 메소드 액팅과는 다른 일이지만… 어쩌면 꽤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내 특징을 과시하는 구조물을 맥락 없이 이식하는 대신 건물이 세워질 환경과 좀 더 내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건 ‘생각의 형태’로서의 건축이다. 그래야만 건물도 시나 미술 못지않은 의미를 갖게 된다고 본다. 지역의 특성 및 역사와 관련이 있는 건축을 하는 게 내게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전 세계의 풍경이 스타벅스 매장처럼 엇비슷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좀 끔찍 하다. 그 도시의 시(Poetry)를 빼앗아가는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내 목표는 그 반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좋은 건축은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다. 추상적인 콘셉트를 물리적이고 실용적인 건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특히 중요하게 따져야 할 내용이 있을까?
사실 나는 내 아이디어들이 충분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성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다색화법 등을 참고했다고 해서 실용성과 멀어지는 건 아니다. 어찌 됐든 건물은 기능성이 우선이다. 유용하지 않다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훌륭한 건축이 될 수 없다. 물론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용도와 상황에 맞게 구체화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콘셉트가 승인되고 건물이 지어지기를 기다리다보면 몇 년은 훌쩍 지나간다. 건축은 굉장히 느리게 진행되는 예술이다.
문학과 영화, 미술까지 다양한 예술로부터 건축적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당신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창작자를 분야를 막론하고 꼽아줄 수 있을까?
매번 생각이 바뀌기 때문에 답하기가 어렵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다. 진행 중인 모스크바 주거 지구 프로젝트 때문일 거다. 몇 개월 전에는 업무차 루이스 칸이 캠퍼스를 설계한 인도 아마다바드의 경영대학교에 다녀왔다. 그런 감흥은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다. 직접 가서 경험하고 느껴야 한다.
개념에서 디자인의 출발점을 찾고, 빛의 효과를 중시했던 루이스 칸의 건축은 당신의 작업과도 맞닿는 부분이 많다.
어쩌면 나는 그와 함께 일할 수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건축가 자격증을 땄을 무렵 하버드, 컬럼비아, 예일 등 여러 대학원으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더 공부를 하기보다는 루이스 칸과 일하고 싶었다. 무작정 필라델피아로 찾아갔지만 그는 출장 중이었다. 대신 칸의 동료를 만났고, 입사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그런데 그만 칸이 기차역에서 급사한 채로 발견된 거다. 1974년 3월의 일이었다. 의욕을 잃은 나는 대신 런던의 AA건축학교에 진학했다. 결국에는 그 결정이 내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렘 콜하스와 함께 연구를 했고, 디자인 공모전에서 심사를 맡아 자하 하디드를 발굴했다. 그녀와 나는 수십 년째 알고 지낸 오랜 친구다. 자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은 오늘 아침에도 문자를 주고받았 다. 그녀는 나를 ‘스티비 원더’라고 부른다(웃음).
한국에서도 스티븐 홀의 건축을 찾아볼 수 있다. 성북동의 대양갤러리 하우스다.
개인적으로도 큰 자부심을 느끼는 프로젝트다. 협조적인 클라이언트 덕분에 머릿속에 구상한 모든 디테일을 시도할 수 있었다. 건축은 건축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클 라이언트 역할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현재는 워싱턴 DC의 케네디 센터 증축 공사를 진행 중인데 쉽지는 않다. 프로젝트에 관련된 사람이 너무 많고, 의견도 그만큼 다양하다.
서울의 건축적 환경에서는 어떤 인상을 받았나?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느껴진 점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도시적인 생활과 밀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은 예라고 생각한다. 자하 하디드가 우승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프로젝트도 내게는 흥미로운 컴퍼티션이었다. 아직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 결과물이 궁금하다.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짜인 구조의 건축이 었다. 건물보다는 경관을 우선순위로 생각했다. 정원과 호수를 조성하고 오래된 성곽을 포용해서 자연과 도시의 풍경이 조화를 이루게 하고 싶었다.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마음에 드는 안이다. 솔직히 서울에서 프레젠테이션했을 때, 심사위원들의 표정을 보고 뽑히지 못하리라는 걸 직감하긴 했다(웃음). 하지만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설계 공모전은 아이디어를 탐험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어떤 건축가들은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며 단호하게 선을 긋기도 한다. 스티븐 홀의 답은 다를지 궁금하다. 당신의 접근법은 종종 일반적인 건축가보다는 아티스트에 방식에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건 축은 예술의 위대한 어머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과 회화, 건축이 좋은 예다. 훌륭한 예술과 훌륭한 건축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오버랩된다. 나는 수년 전 업스테이트 뉴욕에 T스페이스라는 갤러리를 지었다. 건축, 회화, 조각, 음악, 시 등 다양한 장르가 교류하는 전시를 그곳에서 시도한다. 2015년에는 르코르뷔지에의 마지막 제자인 조제 우브러리의 개인전 <모기의 교회(The Chapel of Mosquitoes)>를 열기도 했다. 퍼쿠셔니스트 그레고리 주버가 전시장에서 건축가 출신 작곡가인 크세나키스의 곡을 연주했다. 명확한 분류와 정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장르들이 자유롭게 영향을 주고받기를 바란다. 예술의 경계를 흐리고 싶어 하며, 그러한 맥락에서 건축도 중요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 에디터
- 정준화
- 포토그래퍼
- 이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