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와 함께한 인류의 역사는 유구하다. 호모사피엔스 시절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동물의 털가죽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니까. 모피가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받은 건 1920년대, 폴 푸아레 등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이 소재에 주목하면서부터다. 세계 대전으로 주춤했던 인기는 1950년대부터 모피가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다시금 치솟았는데, 1980년대 들어 동물 보호론자들의 격렬한 반대가 시작되었고, 그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탁월한 방한 효과는 물론 화려한 시각적 효과까지 지닌 이 소재에는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 넘친다. 이번 겨울처럼 수많은 디자이너가 각양각색의 모피 코트를 내놓은 시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짧은 송치(캘빈 클라인 컬렉션)부터 길고 풍성한 양털(루이 비통)까지, 클래식한 고동색(마르니)부터 화사한 원색(생로랑)까지, 그야말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디자인’의 모피 코트가 런웨이에 등장했으니 말이다. 물론, 모든 디자이너가 모피에 환호하진 않았다. 지난 20여 년간 진짜 모피의 사용을 거부하고 인조 모피의 진화에 힘쓴 디자이너들의 신념 있는 행보는 이번에도 계속되었다. 스텔라 매카트니, 드리스 반 노튼, 그리고 2013년 브랜드 쉬림프를 론칭한 뒤 승승장구 중인 한나 웨일랜드가 대표적으로 이들은 질감과 풍성함, 컬러감 세 박자를 모두 갖춘 멋진 인조 모피 코트를 보란 듯이 내놓으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 에디터
- 이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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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DIGI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