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방’은 요리사들의 세계를 얼마나 정확히 묘사하고 있을까? 스타 셰프인 임기학과 정창욱이 카메라 앞에서는 다 밝히지 못한 주방의 진실에 대해 귀띔했다.
임기학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인 레스쁘아 뒤 이브의 오너 셰프. 작년에는 프랑스 전통 육류 요리인 샤르퀴트리를 전문적으로 선보이는 와인바 꺄브 뒤 꼬숑을 추가로 오픈하기도 했다. <셰프끼리>에 출연한 뒤 방송의 영향력을 실감하는 중.
정창욱
비스트로 차우기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프렌치 메뉴를 주로 선보인다. 원칙에 얽매이지 않는 개성은 그의 요리가 지닌 가장 큰 강점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맛깡패’라는 별명을 얻은 뒤 <인간의 조건> <셰프끼리>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셰프, 주방장, 요리사부터 사장님까지, 호칭이 다양한 직업이다. 본인들은 어떤 게 가장 편할까?
정창욱 난 주방장이 익숙하다. 최근 들어 셰프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조금 어색하다. 일본에서 요리를 본격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곳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이니까.
임기학 틀리고 맞고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개인마다 더 편한 호칭이 다를 거다. 방송을 하고 나니 가끔 댓글도 체크하게 된다. ‘셰프’라는 외래어를 쓰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긴 하더라. 또 주방의 ‘장(長)’에게만 붙일 수 있는 타이틀인데도 지나치게 남용된다는 지적 역시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부르든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이른바 ‘쿡방’과 ‘먹방’의 유행 덕분에 요리사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두 사람의 경우, 방송 출연 이후 어떤 변화를 느끼나?
임기학 나는 <셰프끼리>가 실질적으로 첫 방송이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상황을 내가 좋아할지 싫어할지 조차 처음에는 가늠이 안 됐다. 막상 경험해보니, 좋진 않더라. 낯선 이들과 눈 마주치기도 괜히 힘들어졌다. 의식을 해서라기보다는 의식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더 신경이 쓰인다.
정창욱 기학이 형의 식당은 원래 팬 층이 두터웠다. 하지만 나는 동네에 숨어서 음식 만들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알려지면서 ‘방송발’로 장사한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솔직히 가게는 그전에도 은근히 잘됐던 편인데 말이다(웃음). 젊은 손님이 전보다 많이 찾아온다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함께 사진 찍기를 원하시는 분도 많다. 물론 최대한 응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곤란할 때도 있다. 주방에서 조리 중이라고 직원이 양해를 구하면, 시간이 지난 뒤 온라인에 섭섭했다는 글을 올리곤 한다. 현재는 일단 방송 계획을 정리한 상태다. 여러모로 내가 잘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요리사들은 자기가 만든 걸 가장 맛있게 먹을까? 아니면 객관적인 완성도와 상관없이 남이 한 음식을 먹는 쪽을 선호하나?
정창욱 난 남이 해준 게 확실히 맛있다. 내가 만들면 간 정도나 볼까, 많이 먹게 되질 않는다.
임기학 내 음식은 입이 아니라 머리로 먹는다. 자꾸 분석하고 따지게 된다. 그래서 편하게 즐기지를 못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을 거다.
스스로는 주방에서 어떤 보스인 것 같나?
정창욱 나는 일할 때 ‘지랄’이 심한 편이다. 최근에 깨달았는데, 잘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잔소리가 잦고 혼도 많이 낸다. 내가 보기에는 형도 만만치 않다.
임기학 인정한다. 어쩔 수 없다. 시간 싸움이 치열하고 여러 사람과 일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타이밍에 문제 없이 음식이 나가도록 하려면 정말 많은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전체를 바짝 지휘하지 않을 경우 엉망이 된다. 위에서 별말이 없으면 아래에서 분란이 일어날 때도 많다. 사람이 어쩔 수가 없는게, 부드러운 분위기에서는 자연스레 느슨해진다. 결국 서로 호흡도 어긋나고 소모적인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요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반대로 윗사람이 엄하면 직원끼리는 돈독한 경우가 많다. 주방의 긴장감이 엄청난 모양이다. 임기학 사적인 감정은 전혀 아니다. 예전에 함께 일한 셰프는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런데 서비스가 끝나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누그러졌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많이 당황스러웠다.
정창욱 난 좀 다른 경우를 겪었다. 일본에서 일할 때였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주방장이 갑자기 투명인간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설거지만 죽어라 해야 한다. 지시를 안 받고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니까. 넉 달간 설거지를 했더니 그제야 다른 업무를 주더라. 대체 무엇 때문에 날 따돌렸는지는 끝내 못 물어봤다. 아직도 궁금하다.
임기학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주방이 개방되어 있으니 내가 직원에게 화내는 소리를 듣고 손님들이 불쾌하게 느끼는 경우도 생긴다. 정창욱 마찬가지다. 그런데 긴장이 한창일 때 문제가 터지면 순간적으로 제어하기가 어렵다.
지금껏 일하면서 아찔한 순간도 많이 경험했을 듯하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임기학 밸런타인데이인가 화이트데이였다. 바빠서 달궈진 프라이팬 여러 개를 한꺼번에 옮기다가 손에서 놓쳤다. 그때 뜨거운 기름이 얼굴에 다 튀었다.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내 가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즈음이고 손도 부족해서 계속 불 앞을 지키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슬쩍 직원들 눈치를 봤더니 표정이 죄다 너무 심각한 거다. 나는 일부러 거울도 안 봤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진물이 눈으로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끝내
고 화상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의사에게 물었다. 흉터가 남을 것 같냐고. 뭐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살이 오그라들 수도 있다고 했다. 붕대를 감고 집에 갔더니 아내가 날 보자마자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아직 신혼이었을 때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말끔하게 나았다. 의사가 이런 재생력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뒤늦게 털어놓기를, 자신은 흉터가 남을 줄 알았다고 하더라.
정창욱 첫 식당을 할 때였다. 연말이었는데 마침 딱 한 명 있던 직원이 전날 갑자기 그만둬서 혼자 주방과 홀을 모두 맡았다. 그런데 닦던 맥주잔이 깨져서 힘줄이 보일 정도로 손을 심하게 베인 거다. 오더는 밀렸고 사람은 없으니 단단히 처맨 채 라텍스 장갑을 끼고 일했다. 치료는 이튿날에야 받았다. 인근에는 소아과밖에 없어서 일단 찾아가 부탁했다. 그때 무려 스물네 바늘을 꿰맸다. 인대가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임기학 그래도 차라리 내가 다치면 낫다. 여자 직원이 뜨거운 기름통을 밟아서 발에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지금은 부주방장으로 일하는 친구인데 아직 흉터가 있을 거다. 바닥에 기름 통을 둔 다른 직원만 나한테 무섭게 혼이 났다.
정창욱 난 직원이 다치면 그걸로도 좀 혼을 낸다. 긴장하라는 의미다. 매일 아침 손톱 검사 때마다 직원들 손에 난 상처도 보게 되는데, 늘 마음이 짠하다.
셰프들이 주로 앓는 직업병도 있나?
정창욱 난 6년째 허리 디스크다.
임기학 목에 디스크가 왔다. 조리대 앞에 숙이고 있을 때가 많아서 그렇다. 하루에 기본 12시간씩 서서 일하기 때문에 무릎에 문제가 오는 경우도 많다.
정창욱 고질병이 하나 더 있다. 숙취다(웃음).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자주 마신다.
요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조리 도구 역시 중요한 투자다. 사용하는 것 중 특히 어렵게 구한 아이템이 있나?
정창욱 내 경우에는 칼이나 동 냄비 같은 것들?
임기학 브레이징을 제대로 하려면 큰 무쇠냄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잘 팔지도 않고 무게 때문에 해외 배송이 안 된다는 게 문제다. 결국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오는 지인이 이삿짐에 함께 실어 가져다줬다.
해외에 방문할 때마다 다른 일정보다 조리 도구 쇼핑이 우선일 것 같기도 하다.
임기학 빈 가방을 들고 가서 칼만 열자루 이상 사올 때도 있다. 검색대 엑스레이로 보면 섬뜩할 거다
한국의 외식 문화에 대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없나?
정창욱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여전히 양극화이기는 하다. 잘 알 거나, 아니면 아예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이제는 그 중간이 조금씩 많아지는 듯하다. 적당히 알고 적당히 즐기고, 잘 모르는 부분은 융통성 있게 배워가는 고객들이 생겼다.
요리사로서 구상 중인 계획이 있을까?
정창욱 편한 밥집 같은 식당을 추가로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곳에서는 예약도 아예 안 받을 생각이다. 내가 가고 싶은 식당을 직접 차리려고 한다.
임기학 전 프랑스 요리를 알리고 싶고…
정창욱 그렇게 식상한 이야기 말고 딴 거 없나? 미슐랭 스타를 따겠다든지.
임기학 난 미슐랭 스타 욕심은 별로 없다. 정말이다.
정창욱 프랑스 요리에 대한 형의 애정은 빈말이 아니다. 샤큐테리(샤르퀴트리 ; 프랑스 전통 육류 요리) 전문 식당을 낸 것만 봐도 그 의지가 충분히 증명이 된다. 솔직히 채산성을 높게 볼 수 있는 분야가 아닌데도 시도했다는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임기학 너무 이른 시도고,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한다. 어쨌든 처음 시작한 사람으로 기록에 남을 수는 있겠다. 누가 요구한 일도 아니지만 괜한 책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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