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Gucci)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등장하자마자 너드 열풍을 일으키며 패션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2016 크루즈 컬렉션으로 전하는 그의 눈부신 비전이 뉴욕 첼시 거리를 수놓았다.
지난 6월 4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찌의 두 번째 여성복 컬렉션이자 2016 크루즈 컬렉션이 열릴 쇼장으로 택한 곳은 바로 뉴욕 첼시 거리(West 22nd Street)였다. 뉴욕은 구찌가 글로벌 하우스 브랜드로 첫발을 내디딘 의미 깊은 도시. 그 역사적 맥락을 고려한 걸까? 미켈레의 새로운 비전을 선보일 패션쇼 장소로 뉴욕이, 그것도 사뭇 고전적이고,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내려앉은 첼시 거리가 선택되었다. 낡은 벽돌 벽면과 시멘트 바닥으로 이루어진 다소 투박한 거리는 쇼를 위해 일부가 통제됐고, 62명의 구찌 뮤즈들은 오래된 차고를 연상시키는 실내(페르시안 카펫이 깔려 있고 플로럴 패턴의 의자가 세팅된 쇼장)와 실외를 가로지르는 개성 넘치는 스트리트 캣워크를 선보이며 미켈레 특유의 로맨틱한 무드를 발산했다. 본격적인 쇼 시작에 앞서, 구찌는 SNS를 통해 포토그래퍼 코코 카피탄(Coco Capitan)과 함께 작업한 뉴욕 특유의 감성 사진을 공개했고, 쇼가 끝난 후에는 패션 포토그래퍼 글렌 러치퍼드(Glen Luchford)가 실내와 실외 그리고 길거리를 가로지르는 모델들의 모습을 포착한, 크루즈 패션쇼 현장과 뉴욕 거리를 담아 특별 제작한 단편 필름을 소개하며 구찌와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아티스트적 감성을 세상에 공개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패션에 지금, 늘 필요한 것은 ‘비전’이라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그의 비전은 바로 이번 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스트리트 패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저는 거리 자체를 사랑합니다. 패션은 거리에서 탄생하죠. 현대를 잘 반영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삶은 바로 거리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오늘날 패셔니스타들은 거리를 활보하죠.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 역시 거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패션은 거리라는 공간과의 소통입니다” 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스트리트 패션을 사랑하는 그는 캐주얼한 무드를 하이패션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털이 북슬북슬한 기니피그처럼 생긴 슬리퍼에 이어 이번 시즌에는 밴드를 장식한 로퍼 슬리퍼를 등장시켰고, 스웨트셔츠와 보머 재킷을 사랑스러운 색감의 레이스와 반짝이는 라메 소재 그리고 골동품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을 법한 빈티지한 태피스트리 프린트와 함께 담아냈다. 이렇게 미켈레가 지향하는 구찌 우먼은 과거로부터 나온 어떠한 요소를 채택하되 굉장히 현대적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다.
‘현대(Contemporary)’의 개념에 대해 그는 데뷔 컬렉션의 쇼노트에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을 인용해 이렇게 설명했다. “진정 현대적인 사람은 시간과 함께 발맞추어 걷는 사람도,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는 사람도 아니다. 즉, 언제나 현대에만 존재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와 동떨어져 있고 시대착오적인 이들은 그 누구보다 스스로의 시간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미켈레 쇼의 메인 액세서리인 안경을 예로 들면, 1980년대 영국 팝가수 모리세이(Morrissey)와 90년대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가 즐겨 쓰던 두툼한 뿔테 안경이 지금 봐도 세련된 느낌을 주듯 현대적 감성이란 과거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알레산드로가 이끄는 구찌 컬렉션의 전반적인 무드에는 그가 유물이라고 표현하는 오래된 요소- 콜팩스 앤 파울러(Colefax & Fowler) 벽지 스타일의 꽃무늬, 조지 왕조 시대의 새 모티프 같은-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는 선조로부터 이어 받은 유물을 비롯해 옛 물건 수집을 즐깁니다. 과거 조지 왕조 시대 남성들은 연인이 남기고 간 머리카락을 머리에 다는 등 유물을 소중히 간직했어요. 아름다운 관습이죠. 이런 유물이란 신발이 될 수도, 안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 이런 유물들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주목할 점 역시 구찌의 심벌과 웹, GG 로고 같은 아이콘을 새롭게 재탄생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1950년대 처음 선보인 이후 구찌 하우스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 웹은 승마에서 말 안장을 고정시키는 데 쓰이는 캔버스 띠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으로 초록색과 빨간색 줄무늬의 조합으로 완성되었는데, 웹 아이콘은 레이스 이브닝 가운과 벨트, 크리스털로 된 곤충 장식의 모피 코트, 크로셰 드레스 등에 다채롭게 활용됐다.
쇼가 끝난 후에는 쇼장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백스테이지에 칵테일이 마련되어 편안하게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담소를 나눌 수 있었고, 크루즈 컬렉션을 착용한 모델들과 함께 패션쇼에서 선보인 의상 및 액세서리 라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어 저녁에는 뉴욕 이스트 스트리트에 위치한 바우어리 바&그릴(The Bowery Bar and Grill)에서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직접 호스트로 나선 프라이빗 파티가 열렸다. MGMT 출신의 DJ 아이데스 (Ideath)와 뉴욕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DJ 킴 안 폭스만의 공연과 함께 슈퍼모델 출신 카렌 엘슨은 잭슨 스미스와 라이브 공연을 펼쳐 그날의 파티 분위기를 한층 돋웠다.
- 에디터
- 정진아
- PHOTOS
- COURTESY OF GUC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