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의 김봉진 대표, 패션 디자이너 계한희, 광고회사 오리콤의 박서원 부사장. 언뜻 교집합이 잘 그려지지 않는 이들 세 명이 바짝 날이 선 패션 아이디어를 가지고 서울 패션위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름하여 ‘배민의류’ 프로젝트. 처음에는 ‘뭐지?’싶었는데 듣다 보니 이상하게 솔깃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배달의 민족 패션 프로젝트의 출발이 궁금하다. 김봉진 대표와 박서원 부사장이 먼저 의기투합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김봉진(이하 K.B.J.) ‘배달의민족’ 광고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박서원 부사장이 경쟁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했다. 당시에는 ‘빅앤트’라는 광고회사 대표였다. 인터뷰 기사나 책에서 봤던 사진이랑 똑같았다! 얘기 나누면서 첫인상처럼 실제로도 크리에이티브하다고 느꼈다. 의외의 면도 있었는데 외모에 비해 조곤조곤 말하는 게 그랬다.
박서원 부사장은 김봉진 대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박서원(이하 P.S.W.) 인상은 아티스트 같은데 알면 알수록 굉장히 놀라운 사업가 DNA를 가지고 있더라.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 같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전략적 포인트가 단단히 잡혀 있다. 단지 그걸 창의적으로 표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김봉진 대표를 열정 넘치고 아티스틱한 스타터로 느끼는 거다.
배달의민족에서 ‘배민의류’라는 이름으로 컬렉션을 열계획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김봉진 대표는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K.B.J. 보시다시피 맨날 이렇게 입고 다닌다(인터뷰 당시 김봉진 대표는 담백한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어제 홍콩 출장을 갔다가 밤 비행기를 타고 곧장 이곳으로 왔다. 놀라운 건 아무도 내가 어제 입은 옷차림 그대로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옷을 여러 벌 사서 계속 입는 스타일이다. 그게 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패션보다는 아이덴티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누군가 김봉진이구나 하고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말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같은 걸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이런 패션을 추구한 지는 얼마나 오래 됐나?
K.B.J. 한 10년? 나이가 어릴 때 광고회사에서 디자인 팀장을 맡았다. 20대 후반에 팀장 직함을 달고 대기업 임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면 무시당하기 쉽다. 그때 고민을 하다가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은 어떤가 자세히 관찰해봤는데 보통 털에 문제가 많더라. 머리를 아예 밀어 버리거나 길러서 파마를 하거나 수염을 기르거나…. 그래서 나는 머리를 밀고 수염을 길렀는데 그 다음 프레젠테이션 때 ‘김 팀장. 디자인 잘하게 생겼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실제로 잘하게 된다.
그런데 배달의민족이 패션에 진출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나? 사업의 성격은 연관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P.S.W. 작년 말, 김봉진 대표와 식사하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시작되었다. 당시 김봉진 대표가 유럽 어느 길거리에서 한글이 쓰여진 티셔츠를 입은 멋진 청년을 보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내가 ‘배달의민족 고유의 서체도 있으니 한번 해보시죠’라고 제안했다. 어떤 디자이너가 가장 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니 계한희 실장이 바로 떠올랐다. 요즘 서울 패션위크가 ‘핫’하니까 컬렉션을 하는 것까지 이야기가 진전되었다.
배달의민족 고유의 서체를 가지고 디자인하는 게 기본 틀이었다. 한글을 모티프로 컬렉션을 기획하는 건 기존에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가독성 있게 디자인하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컬렉션은 심각하고 진지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재미있을 것이다. 외국인이 보면 그래픽적인 문양으로 보일 수도 있게 신경써서 디자인하고 있다.
많은 디자이너 중 특별히 계한희 실장과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가 있나?
P.S.W. 너무 잘하니까! 김봉진 대표와 이야기하는 순간 계한희 실장이 바로 떠올랐다. 매년 카이 컬렉션에도 참석했다.
배달의민족 패션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어땠나?
계한희(K.H.H) 쉽게 이해되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패션 브랜드가 아닌 다양한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했고 나름대로 독특한 경험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이 다시 최고를 갱신한 것 같다. 처음에 전화로 제안 받았을 때는 언뜻 라이더 유니폼 제작을 의뢰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더라. 굉장히 진지하게 컬렉션을 생각하고 있었고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었다. 얘기를 들을수록 재미있을 것 같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카이 브랜드도 어둡고 심각한 메시지를 쉽고 위트 있게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면에서 비슷한 맥락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 역시 서울을 근거로 활동하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외국에 한국을 긍정적으로 알리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가 더 매력적이었고.
컬렉션을 구상할 때 어떤 영감을 가지고, 어떤 분위기를 그렸나?
K.H.H. 배달의민족 고유의 서체를 가지고 디자인하는게 기본 틀이었다. 한글을 모티프로 컬렉션을 기획하는 건 기존에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가독성 있게 디자인하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컬렉션은 심각하고 진지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재미있을 것이다. 외국인이 보면 그래픽적인 문양으로 보일 수도 있게 신경 써서 디자인하고 있다.
한글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것이 글로벌한 시각으로 봤을 때 어떤 특장점이 있을까?
K.B.J. 우리 셋 다 디자인을 전공했다. 모든 디자이너들은 학생일 때부터 ‘한국적인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오한 고민에 빠진다. 맨날 소주 마시면서 한 학기 내내 토론한다. 한옥 처마 밑의 선, 한복의 선, 붓글씨의 라인, 태극 문양…. 특히 태극 문양을 가지고 해보려는 시도가 많다. 여전히 비슷한 고민이긴 하지만, 한글은 기본적으로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나고 여러 음절이 붙어서 말이 되었을 땐 언어적인 유희까지 창출된다. 그렇게 생겨난 말랑하면서도 재미있는 감성은 한국적 디자인이 가진 여러 가능성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패션을 통해 어떤 즐거움을 배달하고 싶은가?
K.B.J. 디자이너들은 욕심이 많다. 결국엔 건축도 해보고 싶고, 패션도 해보고 싶다. 나도 욕심 많은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우리다운 실험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중이다. 이게 다 모여 재미있고 즐거운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받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보고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이런 실험도 가능하구나 생각했으면 한다. 우리는 늘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보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고,무엇보다 과정이 즐겁기 때문에 결국에는 잘될 것 같다는 예감이다.
P.S.W. 결과물이 기대 이상으로 잘 나오고 있기 때문에, 배민의류 컬렉션 이후에 파장이 클 것 같다. 다른 컬렉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유럽 어떤 골목의 멋진 남녀가 한글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면 우리가 작년 말 식사하면서 이야기했던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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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그래퍼
- Cheon Young Sang
- 글
- 명수진